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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가을호)신작시/박윤배/봉정사 국화차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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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2,746회 작성일 13-03-1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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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배

봉정사 국화차 외 1편

 

 

칠월인데, 서릿발을 이불로 덮던 국화의 뿌리에 슬그머니 발 들이밀던 봉정사 북소리가 들려요. 극락전이 내려다보는 앞들이 움찔움찔 싹이었을 당신의 만개滿開는 서리가 오기 전이라야 만나겠지요

 

오늘 첫눈이 온들 어떻겠습니까. 갓 핀 꽃들 따느라 스쳤을 무릎께는 이미 꽃물 든 시간, 아홉 번을 구워낸 소금과 발효에 첨가된 산수유 구기자 맛도 부비동염에 비좁아진 허욕의 코로는 쉽게 읽어내지 못했는데

 

당신이 보낸 국화차 아리고 쓴 맛은 어디에도 없군요. 늙은 사타구니 흘러든 물똥, 치매든 칠순의 시아버님을 씻기던 손, 발기의 부끄러운 눈빛을 읽고서야 고스란히 안아 눕혔다는 당신의 향기에 코가 저려요

 

저녁 북소리에 귀 오므리던 꽃을 따서 내게 보낸 봉정사 국화차, 첫눈 밟은 당신의 발소리가 따뜻한 물에 넣은 찻잎에서 들리네요. 빗소리가 되밟고 있네요 

 

 

 

 

 

거머리

 

 

건드리면 동그랗게 움츠리다가

표적 향한 몸짓은 연신 접영이어서

뼈도 없는 것이 소문 없이 살 속에 스며

피 빠는 기술 하나는 최상이다

 

물 차오른 장화 틈으로 스며든 뭉클거림

비 오는 날 낚시하던 내 종아리에서

포식으로 굵어지다가

결국에는 비대해져서 나자빠지는 몸

 

아직도 너의 식성에 내 피가 도움이 되다니

통증도 없이 구멍을 뚫던 거머리 데리고

오늘은 달아오른 아스팔트에 가서

흡족했느냐고 다정하게 물어보고 싶다

 

너무 많은 피를 빨아 나뒹구는 살덩이

자본주의 얼굴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염하듯 아스팔트에 뒹구는 모습은

왠지 비참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고기 유혹하는 찌의 흔들림을

생이 저무는 줄도 모르고 바라보던 나

지느러미 흔들고 사라지는 빈 손짓

늘 너의 움츠림과 펴는 몸동작에

아침은 언제나 피 흘리는 시간이었다

 

물속에 발을 담그는 순간

나는 너의 밥이 되는 것이다

 

박윤배∙1989년 <대구매일> 신춘문예 당선. 1996년 ≪시와시학≫ 신인상. 시집 <쑥의 비밀>, <얼룩>, <붉은 도마>.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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