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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가을호)신작시/박해미/지게차가 풍경을 보여주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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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미
지게차가 풍경을 보여주다 외 1편
월요일 아침 출근길 안개 자욱하다 꿈결처럼 안개가 자욱하다 앞서 가던 빈 지게차 뒤따라가는데 지게차가 신호를 보내온다. 느리게 이동하는 게 미안했을까 깜빡이를 자꾸 켜준다. 속도를 내어 앞질러 내려오는 순간, 바로 앞으로 꿩 한 마리 종종 걸음을 치며 지나간다. 그렇구나, 지게차는 내게 길을 내어주기 위한 게 아니라 아침산책을 즐기는 꿩의 풍경을 저만 보기 아까워 신호를 보낸 거였구나. 꿩이 풀숲으로 날아간 자리에 안개꽃이 피어나고 백미러 가득 빈 지게차 여전히 저 만치서 산책하듯 길을 내려오고 있다.
나무들의 인사
산길을 오르는데 길을 사이에 두고
이 쪽 나무가 흔들리면 곧이어
저 쪽 나무가 온몸을 흔들어댄다
나는 단순히
바람이 부는 까닭이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한 숨 돌리려고 풀숲에 앉아
다시 바라본 순간
바람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 쪽 소나무가 손 흔들어
저 쪽 산오리나무를 부르면
산오리나무는 신바람이 난 듯
산비둘기까지 불러내어 대답하는 것이다.
저 쪽 산오리나무가 다시 손 흔들어
이 쪽 소나무를 부르자
이번에는 내가 앉은 둘레
뱀딸기꽃이며 무더기로 피어난
키 작은 봄맞이꽃들까지도 일제히
안녕, 안녕 인사를 하는 것이다.
너와 나도 그처럼
손 흔들어 부르면
언제든지 손 흔들며
안녕, 안녕 대답하는 거리였으면 좋겠다
박해미∙1993년 ≪예술세계≫로 등단. 시집 <꽃등을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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