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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가을호)신작시/박무웅/2초 우박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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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웅
2초 우박 외 1편
아주 잠시 너는 완벽했다
너는
한순간
얼어서
서늘한 눈빛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연두색 대지 위에
슬픔의 지형도를 그린다
너는 포탄이다
이라크 수도에 투하하는,
내 어린 날, 육이오 피난의 기억까지 흔들어댄다
수천의 새처럼 자지러지는 소리, 소리들
2만 볼트로 송전된 슬픔들
사방으로 슬픔의 소문이 번졌다
가로수 연두 잎들이 떨고 있다
우박이 떨어지는 2초간,
그렇게 너를 보았다
내 사랑이 떠나는 걸 보았다
잡초처럼 산다?
아무 땅에나
푹, 꽂으면 사는 것이 잡초다
‘지질이도 못생긴 저 놈은 먹을 복이 있어서 어디에 내 놓아도 살 거야’
이모가 엄마에게 하는 말을 잠결에 들었다
서울은 만유의 땅
고추 모종을 하듯 15년생 나를 심었다
세상 아무데나 푹, 꽂으면 산다고?
세상은 이전투구의 아수라장
길들은 어둠에 지워지고
번뜩이는 눈들이 빛을 발한다
말라가는 이파리를 감싸 안고 바닥을 짚으며
물을 당기지 않으면 뿌리가 마른다
벼랑으로 밀린다
북한산 하산길
마른 땅에서 고개를 세우는 잡초
문득 떠오르는, 내 가슴에 남아 있는,
이모의 말이 바람으로 나를 밀어준다
박무웅∙1995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소나무는 바위에 뿌리를 박는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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