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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가을호)신작시/김혜숙/다초점 렌즈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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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숙
다초점 렌즈 외 1편
마을버스 옆구리 흉터처럼 붙어가는 안경점 광고
이수역 1번 출구, 다섯 걸음 앞
해질녘 다섯 걸음을 걷기 전
보도블럭에 걸려 넘어지는 가로수의 그림자
벌써 한쪽 눈에 벌레가 날아다녔고
날실과 씨실이 뒤엉키거나
몇 가닥 튀어 오르기도 한다
올림픽공원을 걷다 장끼 울음소리에 눈이 밝아진다
벤치에 눅눅한 몸의 그늘을 얹는다
더 이상 몸으로 눈으로 마름질이 필요한 날은 갔다
진즉 묵언의 서늘함이 네 눈 속에 잠들었으니
다초점의 시야를 열고 어긋난 무덤 속을 미리 걷는다
빗방울의 결을 다듬는 우산을 접으면
뾰족하게 닫히는 초점
낮달은 동쪽 하늘에 희미한 자국을 남기고
갸울어진 어깨 침묵으로 굴절되는 빛
터져버린 벤치 위 물 한 방울
다시 태어나 몸의 그늘로 사라진다
스카프가 날아가는 교차로
바람이 둥글어지는 오후
날리는 스카프를 두르고 폰을 꾹꾹 눌러봐요
날짜 잃은 석간의 사진 한 컷
몰라도 돼 습기 없는 은행나무숲은
젖은 이끼도 없이 그냥 떠난 숲은
지나간 바퀴를 먹어치우는 교차로
도로는 식사 전에 쓰여진 인연
누워서 손을 흔들어요
체온 가신 스카프가 날아가요
햇살이 빠져나가는 은행나무
발효되지 않은 반죽으로 숲을 빚어요
눈꺼플을 들추려 애쓰는 망막
맨홀 위를 걸어요
박쥐같은 하이힐이
부드러운 바퀴자국을 밟고 가요
허기를 넘어오지 마라
발목마다 경고음이 울려요
가볍고 가까워 무거워지는 은행나무숲
숲은 숲이 아니야 하나로 빚을 때마다
떨어져 나가는
흘려보낼 수분도 없는 숲은
김혜숙∙2002년 ≪시현실≫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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