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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가을호)신작시/박시하/생활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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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하
생활 외 1편
젓가락/접시/소시지/오렌지주스/달걀/……
그런 탄력들이 두려울 때면
너에게 간다
모든 방향으로
집요한 사물이 되어도
달그락거림을 부인할 수 없다는 걸
물에 빠지면 가라앉는다는 걸
가끔 부인하면서
사랑은 항상 숨겨지지
수평선이 어둠을 끌어올리고
어둠에서부터 파도가 밀려오듯
지금 울음을 멈추고 밥을 먹는다면
물새 떼처럼 알 수 없고
구름처럼 멀리에서만 나타나는 것들 때문이야
수영은 하기 싫어
규칙적으로 팔을 휘젓고 고개를 내밀다니
차라리
가라앉아서 숨 쉬겠어
검은 물을 삼키고
불투명한 대기를 마시겠어
불가능하게 살겠어
슬픔도 없이
검은 길
오후에는 산보를 한다
길들이 물었다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오래 전의 기차를 탄다
뒤로 달려가는
아주 느린 속도로
아주 캄캄한 방을 향해
모랭市에 도착하자 누군가 물었다
가진 돈이 좀 있습니까?
아니, 아무 말도 남지 않았어요
얼굴이 지워져가는
그들과 같은 방에 묵어야 한다
등을 쓸어드릴까요?
아니, 남은 등이 없는 데요
그들이 있을 뿐이다
맨발에 검은 신을 신고
손톱 끝이 갈라진
수많은 우리
역방향 기차는 未知로 갑니까?
아니, 그림자를 향해 가는 중입니다
지워진 그림자가 모인
그 캄캄한 방으로 들어가서
비로소 서로의 등을 쓸어주고
긴 한숨을 쉬어요
좋은가요?
아니, 그때 이미 서로의 입에 토할 겁니다
다물 수 없게 꽉
우리는 부드러운 철로에 눕고
검거나 더 검게*
기차는 다시 뒤로/앞으로 떠나야 한다
미쳐가는 그들이 물었다
닿았습니까?
네, 이번에는 기어코
좀 더 야위거나 몇 번 더 죽겠지만
결국 산보에 대해서라면
여전히
검고 긴 길이 놓여 있으니
* 혹은 스물두 번의 죽음만큼.
박시하∙2008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눈사람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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