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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고전읽기/권순긍/사랑과 그리움의 노래 몇 편-한시漢詩 읽기의 신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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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159회 작성일 20-01-2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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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고전읽기/권순긍/사랑과 그리움의 노래 몇 편-한시漢詩 읽기의 신선함


권순긍


사랑과 그리움의 노래 몇 편-한시漢詩 읽기의 신선함



흔히 사람들은 ‘고전古典’을 케케묵은 유물 정도로 여긴다. 그래서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의 삶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껏 중, 고등학교 시절 국어시간에 밑줄 치며 외웠던 난해한 어구와 복잡한 고사성어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고전문학의 전부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예전 사람들의 삶도 본질적으로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면서 사랑하고, 괴로워하고, 눈물 흘리지 않았던가.
고전을 생활문화로 보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중에서 특히 한시는 고도의 압축과 비유를 특징으로 하기에 오히려 현대시에 비해 참신할 수가 있다. 성당盛唐의 한시를 생각해보면 그 답은 분명해진다. 단어를 고르고 다듬는 과정이 고도의 숙련성을 요구하기에 거기서 ‘천 년의 절창絶唱’이 가능해진다. 이를테면 이백李白의 「산중답속인山中答俗人」에 “웃으며 답하지 않으니 마음이 절로 한가롭구나笑而不答心自閑”라는 구절은 자신의 자족한 심정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언어다. 여기서 어떻게 더 이상 표현할 수 있겠는가. 모더니즘의 현대시가 도달할 수 없는 인간 내면의 절실한 목소리가 오히려 참신하게 들린다.
여기서는 우리의 한시 여러 편을 그리움과 절망으로 나누어 감상해 본다. 어쩌면 필자의 설명이 무리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떠랴. 시는 어차피 독자들을 향해 열린 텍스트이니 말이다. 창의적으로 우리 한시를 해석해 보며 자유롭게 상상해 본다.


가슴 아린 이별의 정서-「님을 보내며送人」


고려 전기에 활약했던 정지상鄭知常(?~1135)은 정말 천부적인 시인이다. 서정이 무엇인지를 가장 정확하게 파악했던 사람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이란 존재의 본질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그리고 그 지지고 볶으며 사는 세상살이의 정서를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수준으로 형상화시켰다. 우리 한시에서 천년을 두고 가장 뛰어난 절창이라는 「님을 보내며送人」를 보자.


비 갠 긴 둑에 풀빛만 짙은데                 雨歇長堤草色多
남포로 님 보내니 슬픈 노래 북받치누나.  送君南浦動悲歌
대동강물이 언제 마를 것인가                             大洞江水何時盡
해마다 이별 눈물, 푸른 물결 보태네.                別淚年年添綠波
 
이별의 아픔을 이만큼 표현한 시인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비雨는 슬픔의 이미지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히는 건 이별의 순간에 세상은 온통 환희로 빛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 슬프다. 서정주의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의 정서와 일치한다. 이별이나 그리움은 아련한 것이다. 색깔로 치자면 푸른 빛이 도는 암회색이다. 그런데 세상은 온통 눈부신 원색이다. 그러기에 원색과 대비되어 이별이나 그리움의 감정은 더욱 극대화 된다. 당연히 슬픈 노래가 북받칠 수밖에 없다. 세상은 이토록 찬란한 데 어찌해서 우리는 헤어질 수밖에 없는가 하고.
그리곤 갑자기 대동강을 얘기하며 능청을 떤다. 이별의 화면이 확대되는 것이다. 이제 시선은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는 남녀의 모습에서 대동강 넓은 장면으로 확대된다. 덧없이 흘러가는 대동강. 사소한 인간사는 아랑곳 하지 않는 듯 무심한 시간처럼 대동강은 흘러간다. 에밀 쿠스트리차Emir Kusturica 감독의 <집시의 시간>에 등장하는 성조지 축제일의 강상제江上祭 장면이 떠오른다. 불타는 나무 밑으로 무심한 강물이 흐르는데, 뿌리 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며 타버리는 집시의 삶과 대비되어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나타낸 기막힌 장면이다. 그렇다, 강물은 덧없는 세월의 이미지다. 잡지 못하고 막을 수도 없는 우리의 덧없는 인생사! 이게 강물이다. 그런데 정말 기막힌 건 그 강물에 이별의 눈물이 보태져 마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숱한 『시화詩話』에서 가장 기막힌 표현이라는 구절이 바로 여기다. 이제 대동강은 단순한 흐름이 아니라, 이별의 눈물로 흐느끼며 흐르는 처절함으로 바뀐다. 대동강이 비로소 살아나 생명력을 부여받는 것이다. 애절한 이별의 아픔을 어떻게 이렇게 표현 할 수 있는가!
슬픔에 북받쳐 흐느끼면서, 그 울음소리를 밖으로 내지 않고 극도로 절제하며 울기에 슬픔은 더욱 강하게 전달된다. 그 시가 바로 정지상의 「님을 보내며」다. 


자유분방한 낭만주의자의 사랑 노래-「이별의 말도 못하고無語別」


39세로 생을 마감한 백호白湖 임제林悌(1549~1587)는 ‘방외인方外人’, 곧 아웃사이더의 계보를 이었지만 김시습처럼 처절한 고독 속에서 살지는 않았다. 허균은 임제를 일러 “성정이 넓고 기개가 있어 남에게 얽매이길 싫어하여 세상과 어울리지 못해 불우했다.”고 했지만 그는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인해 세상을 조롱하며 살았다. 그가 죽을 때 내가 육조六朝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응당 돌림천자 쯤은 했을 거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당당했다.
죽은 황진이의 무덤에 가서 술을 부으며 “청초 우거진 골에”라는 시조를 읊은 것은 세상의 격식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그의 낭만적 기질을 잘 보여준다. 이런 자유분방한 기질 때문에 늘 구설수에 올랐지만 개의치 않고 자유롭게 살았다.
백호의 시에 등장하는 두드러진 상징은 ‘칼’과 ‘거문고’다. 자신을 일러 “중도 아닌 속도 아닌 소치라 일컫는 놈/거문고에 칼 하나가 살림살이 모두라네遣興”라거나 “칼 한 자루 거문고 하나 천리 나그네高唐道中”라고 일컫기도 했다. 늘 행장에 같이 지니고 다녔는데, 칼이 현실과 대결하려는 그의 호협한 기상을 드러낸다면, 거문고는 인간의 따사로운 정감을 어루만지는 상징일 것이다. 그의 작품은 이렇게 넓은 편폭을 지니고 있다. 사랑을 노래한 그의 시, 「이별의 말도 못하고無語別」를 보자.


열다섯의 아리따운 아가씨가    十五越溪女
사람들이 부끄러워 이별의 말도 못하고                羞人無語別
집에 돌아와 문을 굳게 닫아걸고는   歸來掩重門
배꽃에 걸린 달을 보고 눈물 흘리네.   泣向梨花月


파스텔톤으로 그린 한 폭의 수채화다. 짧은 시지만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깨끗하다. 젊은 처자가 낭군(혹은 정인)을 헤어지는데 아직 익숙하지 못해 머뭇거리며 작별의 말도 못한다. 무슨 말인가를 하며 님을 보내야 하는데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해 주저하다가 어떨 결에 님을 보낸 것이다. 이 주저함과 머뭇거림이 오히려 눈물을 뿌리는 것보다 더 애절하다.
그런데 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님을 이별하고 생각하니 안타깝기도 하고 서러움이 북받쳐 오른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문을 굳게 닫아걸고는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하필이면 배꽃에 휘영청 달이 걸린 아름다운 봄날 밤인 것을! 눈물짓는 젊은 여자와 배꽃에 부서지는 달빛은 그대로 정지된 한 폭의 풍경이다. 이별의 슬픔조차도 아름다운 풍경 속에 하나가 된다.
시는 이런 것이다. 이별의 슬픔이 어쩌구, 그리움이 어쩌구 설명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몇 마디 말로 모든 걸 압축해야 한다. 활을 쏘기 위해 팽팽히 활시위를 당긴 그 상태가 바로 시다. 바로 ‘서정적 긴장’이 그것이 아닌가. 화살이 목표를 향해 날아가면 이미 시가 아니다.  
술과 칼과 거문고를 좋아했던 가객. 자타가 그를 중국의 풍류시인 두목지杜牧之로 불렀던 풍류남아가 바로 백호 임제다. 답답한 현실에 맞서 칼을 휘둘렀던 기상과 인간의 정감을 어루만질 줄 아는 따뜻함은 일견 서로 모순되는 것 같지만 인간을 긍정하는 낭만주의자의 속성에 모두 포함된다. 독일의 낭만파 시인인 하이네Heinrich Heine(1797~1856)가 자신의 무덤에 칼을 넣어 달라고 유언을 했던 것처럼 백호 역시 항상 칼과 거문고를 지니고 다니며 부당한 현실과 맞서고, 상처받은 인간의 마음을 보듬어 주었던 것이다.


길고 긴 불면의 밤-기녀들의 시조와 한시


돌아올 기약 없는 님을 기다리는 상사相思의 긴 시간은 대개 불면의 밤으로 이어진다. 님이 나를 생각하는가? 혹은 님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이른바 ‘전전불매輾轉不寐’가 그것이다. 한시로 이름이 높은 부안 기생 매창梅窓의 「규중의 원망閨中怨」과 「가을밤秋夜」을 보자.


배꽃 눈부시게 피고 두견새 우는 밤   瓊苑梨花杜宇帝
뜰에 가득 달빛 어려 더욱 서러워라   滿庭蟾影更淒淒
님 그리워 꿈에서나 만나려도 잠은 오지 않고  相思欲夢還無寐
일어나 매화 핀 창에 기대니 새벽 닭 울음 들리네  起倚梅窓聽五鷄

이슬 내리고 푸른 하늘엔 별들이 성긴데              露濕靑空星散天
외마디 소리 내며 기러기 구름가를 날으네 一聲叫鷹塞雲邊
매화가지 걸린 달이 난간까지 오도록  梅梢淡月移欄欖
거문고 뜯지만 잠은 오지 않네   彈罷瑤箏眠不眠


첫 수는 서럽도록 배꽃이 하얗게 핀 봄날 밤에 잠 못 이루는 정경을 노래한 것이고, 둘째 수는 기러기 울며 날아가는 가을밤에 잠을 못 이루는 정황을 그린 것이다. 첫 수에 나오는 배꽃, 달빛, 두견새 울음소리, 매화 등이 서럽도록 아름다운 봄날 밤을 수식하고 있다. 그렇다. 너무도 아름다운 봄날 밤에 같이 있어야 할, 님이 없기 때문에 더욱 서글픈 것이다. 보색대비처럼 아름답기에 님의 부재는 한층 더 두드러져 보인다.
봄날 밤의 정경이 화사하다면 가을밤은 한층 쓸쓸하리라. 그래서 님이 더 그리운 것이다. 찬이슬, 하늘에 성긴 별, 구름가를 나는 기러기는 그대로 허전하고 쓸쓸한 심정을 대변한다. 이 쓸쓸한 밤, 님은 갔던 것이다. 그래서 매화가지에 걸린 달이 난간에 이르도록 잠을 못 이루는 것이다. 거문고를 뜯으며 마음을 달래지만 님이 아니면 어떤 것도 위로가 될 수 없으리라. 이 허전하고 쓸쓸한 가을 밤 잠 못 이루는 여인의 모습은 그대로 가을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그 일부가 된다.
님 그리워 잠 못 이루는 순간에도 님에게 자신의 이런 모습을 전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님이 자신을 가련하게 여겨 다시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진주 기녀 매화梅花의 시조를 보자.


야심오경夜深五更토록 잠 못 이뤄 전전輾轉할 제
구즌 비 문령성聞鈴聲이 상사로 단장斷腸이라
뉘라셔 이 행색行色 그려다가 님의 압헤


자신의 잠 못 이루는 심정을 누군가가 님에게 전해주길 바라는 심정 간절하다. 님 그리워하는 고통이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절절하다. 그래서 홍랑의 시조처럼 자신의 모습을 님에게 각인시키기도 한다.


묏버들 갈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
자시는 창窓 밧긔 심거두고 보쇼셔
밤비예 새닙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서


홍랑은 1673년 가을, 함경도 경성에 북도평사로 온, 삼당시인三唐詩人의 한 사람인 최경창崔慶昌(1539~1583)을 만나 군막에서 겨울을 함께 보냈다. 이듬해 봄 서울로 부임하는 최경창을 함경도 영흥까지 따라가 배웅한 뒤 함관령에 이르러 날은 어두워지는데 비까지 내리자 애닲은 사랑의 감정을 이기지 못해 이 노래와 함께 버들을 꺾어 최경창에게 보냈다고 한다.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풍습은 버드나무의 강인한 생명력과 잡귀를 쫓아내는 힘을 빌려 무사히 여행하기를 기원하는 액막이 주술에서 비롯되었다. 이 풍습이 보편화되면서 원래의 의미는 퇴색되고 그 대신 이별의 비애를 상징하는 것으로 때로는 버드나무에 상대를 묶어서 머무르게 하려는 소망을 담은 것으로 변했다. 홍랑이 바라는 바는 바로 그것이리라. 님을 묶어 자신의 곁에 두려는 바람이다. 그러기에 버드나무 가지를 선물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보아달라고 부탁한다. 새로 난 버들잎이 되어 님과 함께 있고자 하는 강렬한 주문呪文을 걸고 있는 것이다.


황진이가 노래한 그리움과 원망-반달을 노래하다詠半月


남녀가 만나서 사랑하다가 헤어지는 일은 예전 여염집 여자들로서는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규중에 갇혀있어 집 밖을 나서서 돌아다니는 여자들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연애’라는 말도 근대에 생긴 것이다. 근대적 시공간이 확장된 뒤에야 그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기녀들은 수많은 남성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정을 주고 헤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만났던 남성중에는 특별히 정을 줬던 사람도 있을 것이기에 기녀들의 노래에는 이별의 한과 그리움의 정서가 유난히 많이 드러난다. 조선중기에 문학으로 이름 높은 명기名妓 황진이黃眞伊(?~?)의 시조와 한시를 보자.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라 더면 가랴마 제 구야
보내고 그리 情은 나도 몰라 노라


  당당하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황진이였지만 사랑하는 정인情人도 있을 것이다. 짐짓 마음에 없는 척 하며 이별을 주도했지만 그리워하는 마음을 속일 수 없나보다. 있으라고 했으면 가지 않았겠지만, 구태여 보내고 나서 가슴앓이를 한다. 그래서 보내고 그리는 정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님을 보내고 나니 후회와 그리움이 뒤섞여 나타나 있다. 아직 시간이 경과한 것이 아니기에 그리움의 농도는 그리 진하지 않다. 잔잔한 호수에 파문이 일듯이 그리움이 서서히 피어나는 것이리라. 하지만 「반달을 노래하다詠半月」에 이르러는 그 그리움이 더 절실해진다.


누가 곤륜산의 옥을 잘라서  誰斷崑崙玉
직녀의 빗을 만들었는가  裁成織女梳
견우가 한 번 떠난 후에  牽牛一去後
수심겨워 벽공에 던져 버렸네               愁擲碧空虛


푸른 하늘에 떠 있는 반달을 보고 이를 직녀의 빗으로 환치시킨 다음 왜 직녀의 빗이 그곳에 있을까를 노래한 것이다. 1년에 한 번 밖에 만날 수 없는 견우와 직녀의 만남, 짧은 만남 뒤에 긴 이별의 시간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직녀가 머리를 빗다가 문득 견우도 떠나고 없는데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단장을 하는가 하며 수심 겨워 저 푸른 허무의 공간으로 머리 빗던 빗을 던져버린 것이리라. 그것이 벽공에 떠 있는 반달인 것이다. 긴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는 작중화자의 모습이 보인다. 이 긴 기다림의 끝에 꿈속에라도 님을 만나고픈 애절한 심정이 자리하게 된다.
송강 정철의 「속미인곡續美人曲」에 나오는 “정성精誠이 지극하야 꿈의 님을 보니/옥 같은 얼굴이 반半이나마 늘거셰라/마음에 먹은 말씀 실컷 사뢰고자 하니/눈물이 바라나니 말씀인들 어이 하며/정情을 못다하여 목이 조차 메여오니”의 경우가 그러할 것이다. 꿈에 님을 보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뭔가 자꾸 어긋나며 아쉽게 꿈이 깨는 것이다. 그래서 “오뎐된 계성鷄聲의 잠은 어찌 깨듯던고/어와 허사로다 이 님이 어디 간고”라고 한탄하며 아쉬워하게 된다. 이런 꿈속에서 님을 만나는 심정을 노래한 한시가 바로 「상사몽相思夢」이다.


꿈길 밖에 길 없는 우리의 신세             相思想見只憑夢
님 만나러가니 님은 날 찾아갔구나            儂訪歡時歡訪儂
원컨대 아득하게 어긋나는 꿈으로 하여금           願使遙遙他夜夢
동시에 길 가운데서 서로 만나게 했으면            一時同作路中逢


얼마나 꿈길에서 서로 어긋났으면 동시에 길 가운데서 만나보자고 노래했을까? 그리움의 긴 시간 속에 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은 오직 꿈속에 있지만 그마저도 서로 어긋난다. 그래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리라. 여기에 이르게 되면 그리움의 농도가 더욱 진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오죽했으면 꿈속에서도 님과 어긋남을 한탄했을까? 그리움에 지친 영혼의 원망과 탄식을 들을 수 가 있다. 그것도 앞의 시 「반달을 노래하다」에서 “수심 겨워 벽공에 던져버렸네”와 상통한다. 긴 기다림 끝에 이어지는 절망감, 바로 그것이다.


풍화風化된 기다림의 긴 시간-자술自述


왕가위 영화 『동사서독東邪西毒』을 자주 보곤 했다. 황량한 사막 위에서 모래바람처럼 풍화된, 그래서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저주 받은 운명과 싸우는 무사들의 몸짓은 바로 절망의 검무劍舞다.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할 것인가. 어긋난 시간과 저주받은 운명 때문인 것을.
인간에게 가장 무기력한 것은 이 사간의 흐름 혹은 세월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날을 후회하고 다시 시작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바위처럼 굳었던 맹세는 시간의 풍화 작용 속에서 바람에 날리는 모래로 변했다. 풍화된 시간! 이 이미지를 잘 포착해 낸 시가 바로 이옥봉李玉峰의 「자술自述」이다.


근래 안부를 묻노니 어떠하신지요   近來安否問如何
달빛 비친 창가에서 첩의 한은 많습니다.  月到紗窓妾恨多
만약 꿈속에 내 영혼이 자취를 남긴다면   若使夢魂行有跡
문 앞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됐을 겁니다.  門前石路半成砂


첫 행은 오지 않는 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그리움은 이내 원망으로 바뀐다. 애초 동전의 양면처럼 그리움의 반대편엔 원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오지 않을, 아니 올 가망이 전혀 없기에 그 원망은 점점 깊어진다. 잠 못 이뤄 몸을 뒤척인다는 표현보다 “첩의 한은 많습니다.”는 표현은 얼마나 간결한가! 그 속에는 작중화자가 하고 싶은 모든 말이 압축돼 있다. 여기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만약 꿈속에 내 영혼이 자취를 남긴다면/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됐을 겁니다.”에 이르면 그 절망의 긴 터널 속에서 지르는 외마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쉽게 생각하면 그리움의 간절한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밤마다 그리움에 사무친 영혼이 집 밖을 배회하는 애절한 장면을 상상해 보게 된다. 하지만 집 앞의 돌길이 반은 모래로 변할 정도로 영혼의 배회가 반복 됐음을 상기해보자. 얼마나 간절했으면 그 영혼이 돌길을 모래로 만들 정도로 배회했겠는가. 그 긴 시간 동안 님은 오지 않았다. 이제는 모래로 풍화된 긴 기다림의 시간은 단순히 그리움에 사무친다는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돌길이 모래로 변했다는 표현은 절망의 세월 속에 지르는 외마디 비명이다.
허균許筠의 『학산초담鶴山樵談』에 의하면 이옥봉은 승지 벼슬을 하는 조원趙瑗의 첩이라 하며 “시가 매우 맑고도 굳세어서, 얼굴 단장이나 하는 부인들의 말투가 아니라.”한다. 외유내강이라고나 할까 한 없이 여린 듯하면서도 내어지르는 강함이 「자술」에 들어 있다. 하소연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절규다. 옥봉의 다른 작품 「염정시閨情詩」를 보더라도 그렇다.


약속을 해놓고 님은 왜 이리 늦나           有約郞何晩
뜰에 핀 매화는 떨어지려 하는데           庭梅欲謝時
갑자기 가지 위의 까치 울음소리 듣고는           忽聞枝上鵲
거울 쳐다보며 헛되이 눈썹만 그리네           虛畵鏡中眉


부질없이 님과 약속을 했지만 그것이 이루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까치소리에 혹시나 하여 님이 오지 않을까 ‘헛되이’ 눈썹을 다듬는 것이다. 님이 오지 않을 것을 알지만 마음은 그렇게 쉽게 정리되지 않는 것이다. 하염없는 긴 기다림! 옥봉의 시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그 긴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내어지르는 처절한 절규다.





*권순긍 세명대학교 미디어문화학부 교수. 저서 『활자본 고소설의 편폭과 지향』, 『고전소설의 풍자와 미학』,『고전소설의 교육과 매체』, 『고전, 그 새로운 이야기』, 『살아있는 고전문학 교과서』(2011, 공저), 『한국문학과 로컬리티』등. 평론집 『역사와 문학적 진실』. 고전소설 『홍길동전』, 『장화홍련전』, 『배비장전』, 『채봉감별곡』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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