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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집중조명/서정문/신작시/물꿈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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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집중조명/서정문/신작시/물꿈 외 4편
물꿈 외 4편
서정문
아침에 왔다가 저녁이면 희디흰 이를 드러낸 채
등을 보이며 흐르는 사람을 보았어요
검은 바위에 이마를 얼마나 부딪쳤으면
끝이 하얗게 탈색되었을까요
건너지 못하는 강도 있었는지요
너무 깊어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잃어버린 기억으로 발이 얼얼할 때까지
이리저리 강변을 걸었는지요
갈대는 저물어가고
이편과 저편의 집 없는 사람들은 점점
스스로 강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는지요
온몸은 눅눅해지기 시작하고
아침까지는 아무래도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밤
첨벙거리는 소리의 그 끝을 서성이며
잡았던 손의 느낌을 잊지나 않았는지요
너무 오래거나 빠르다고 여겨지지는 않았는지요
손가락 끝에서 좁은 여울 소리 들립니다.
서귀포 까마귀
―변시지* 화백 풍으로
길 없는 허공을 가로질러 까마귀 한 마리 날아간다
황톳빛 화면에 까맣게 서 있는 먼나무 한 그루
그 위에 깃털을 꿈꾼다
붉은 열매 가득한 가지가 출렁이고
남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그 공간을 메운다
까마귀 부리에 붉은 노을이 물들 때
나무 아래쪽으로 접힌 날갯죽지
퍼덕거릴수록 화면은 노오랗게 물든다
마른 잎들이 푸르르 말소리처럼 울부짖어
오래된 능선을 남겨둔 채
꽃등을 켠다
붉은 반점들이 검은 날개에 박힌다
빗장을 벗기고 문을 들어서는
저녁 만장
먼나무 초록의 잎들
검은 날개를 지나 우르르 떨어진다
* 변시지(邊時志, 1926 ~ 2013) 서양화가, 2007년부터 10년간 한국인 최초로 미국 국립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작품 2점을 전시함.
나이테
헤아릴 수 없이 촘촘하게, 아니
허리가 잘리고 나서야 숨을 토하는 나이, 아니
허리가 잘려도 이야기하지는 않는 나이, 아니
잘 보이게 허연 이를 드러내고 웃다가, 아니
알고 있지만 내색하지 않고 살아가다가, 아니
빨리 자라고 그래서 빨리 베어지는 삼나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빨리 돋아나는 건 저렇게 가슴이 말갛다
보란 듯이 창자를 드러내고 가지런히 줄을 맞추고
며칠 전 TV에서 들었던 아프리카 이야기처럼
낙타를 타는 남자들이 나이를 모른다는 것에 대해
개울가에서 멀리멀리 조약돌을 던진다
날아간 돌과 나 사이에 장마가 지면
내 나이를 잊는다
삼나무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도 젊게 보이는 남자도
꼭 나이를 알고 있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괜히 눈물이 난다
개울에서 멀리 던져버린 조약돌
다시 돌아와 강 아래 어딘가 자릴 잡는다
소금을 위하여
그래서 덜 헐거워지고 빈틈없이 촘촘히 엮은
그물이다 망태기다
김장철 노랗고 단단히 박힌 배추 옆에
높이 솟아올라 더 힘센 파도는 다시 바다로 떠나
더 단단하고 알찬 소금이 된다
바다 가까운 사람들은 옷에서도 소금기가 배어 나온다
다시 바람이 소금이 되는 날
쏟아진 파도는 바위에 소금기를 잔뜩 부려놓고
수북한 인심도 덤으로 얹힌다
씻어내고 닦아서 가장 낮은 곳을 점령한
이 시대의 밑바닥이다
저 파도를 다시 불러 들여보리라
파도는 소금이다
소금이 파도다
흰 것이 졸아서 낮을 대로 낮아지면 소금이 된다
겨울 수선화
겨울이 반이나 흘렀다, 흘렀나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이
막다른 길을 돌아 나온다
아득한 것들이야 어디에도 흔하지만
양지에 수선화가 피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길로 들어서
이름 모를 덩굴이 촘촘하게 외벽에 드리운 귤창고처럼
겨울은 왜 이리 어수선한지
좁은 골목길 돌아 나오면 제멋대로 꽃을 피우는
헛헛한 바람만 가슴을 훑고 지난다
홀로 걷는 그 오르막은 여전히 낯설다
겨울이 반이나 흘렀나, 흘렀나
시론
오래 버무려 토우 하나를 만들다
서귀포 동네 주민센터에서 하는 도자기 강좌반에 들어갔다. 처음 만져본 찰흙의 느낌은 어린 날 뒷산에서 파내 방학 숙제로 만들던 붉은 황토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거칠한 돌 알갱이도 없었고, 질척한 물 냄새도 나지 않았다.
주민센터 비닐하우스에서 여러 아낙과 접시를 빚고, 컵을 만들었다. 미끈한 감촉을 이리저리 주무르다 보면 내 것은 이상한 형태의 컵도 되고, 못생긴 그릇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오래 주물럭거리다가 수업 종료 시간이 되면, 그 형태 그대로 선반에 올려두었다. 도자기 선생님은 그것에 색을 칠해서 그다음 주에 가면 비취색 혹은 진한 청색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을 건네주었다.
내 시는 그렇게 방학 숙제로 제출한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조대’로 만든 진한 황토 인형이 되면서 시작이 되었다. 고향 동네가 출중한 문인이 여럿 있던 곳이라 어린 날부터 백일장이 자주 열렸다. 고등학교 등굣길 30여 리 도중에 ‘육사 시비’를 매번 지나쳐 갔다. 광야는 자전거 길 옆에 펼쳐져 있었으며, 까마득한 날은 그 두 개나 건너야 하는 인도교 너머에 있었다.
지역에 있던 군부대에서 자주 훈련을 위해 행군을 하고, 낡은 트럭을 타고 가는 병사들을 만났다. 그것을 보며, 몇 자 글을 지어보곤 했다. ‘향수’라는 제목이었던가. ‘덜그럭거리는 트럭 위에 짐짝처럼 실린 몸’ 그렇게 시는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나 나의 갈래는 산문. 시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장교가 되기로 한 날부터 혹독한 육체적 훈련이 시작되었다. 몇 줄의 글들이 떠나있는 날의 위안이 되었다. 긴 호흡으로 감당하기 버거운 날들. 간혹 몇 줄의 글만 메모장에 남겼다. 걷다가 보면 단편적인 생각들이 버무려졌다. 버무려져서 안으로 웅얼거리다가 다시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육체적으로 몰려오는 고통 속에서 무언가 하얗게 남을 ‘뼈’를 골라내고 싶었다. 파김치처럼 된 몸속에서 도톰하고 작은 구슬을 빼내고 싶었다. 그래서 늘 노트 한 쪽을 단어들로 채워보았다.
오래 그 산을 보고 또 보았지만, 무언가를 얻기엔 한계로 가득했다. 술 한잔을 앞에 두고도 대작할 사람이 없었다. 그저 혼자 끄적거리고 혼자 중얼거리기만 오래 했다. 눈에 보이는 산의 모습에 가끔 안개가 몰려와 운치를 더해줘서 시란 이런 맛도 있다고 하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어찌 보면 긴 세월 동안 흙을 주무르다가 결국은 무엇을 만들 흙은 조금씩 부스러기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손바닥에 묻은 흙이 말라가면서 절로 땅으로 떨어져 가버리기도 했다.
그러면 다시 고향 뒷산으로 가서 황토 흙 몇 줌을 캐 왔다. 푸석하고 말라 있었지만, 향수처럼 마음 한 켠에서 위안의 소리를 전해주었다. 외로울 때 함께 멀거니 저 편에 서 있어주었다. 마주보면 등을 내밀고 돌아 앉기도 했다. 옆 모습만 보여주고 멀어져 가기도 했다. 그러나 시는 나를 한 번도 밀쳐 내지 않고 내치지 않았다.
내가 시 한 줄을 말해주었을 때, 공감해주고 박수를 쳐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저 그 뒷면의 말하지 않는 그늘엔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한 줄이라도 함께 느껴주는 사람이 있다면 하고 바램을 주문했다. 번번히 실패하고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주 등을 돌리지는 않았다. 오래 버무리란 주문을 스스로 몇 번 되뇌었다. 시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박수를 친 적이 몇 번 있었다. 어쩌면 그런 것이 내 시의 자양분이 되지 않았을까.
고향 마을 뒷산에는 아직도 향나무가 살아있다. 그 나무 아래 황토 흙도 여전히 남아있고. 결이 고운 도자기용 점토가 지천이어도 내 시의 고향은 그 허리 잘린 향나무 아래 황토 흙 임에 틀림이 없다. 거칠고 점성이 약해서 푸석거리지만, 여전히 손에 오래 뭉치면 작은 토우라도 만들 수 있으리라. 토우에 이름도 붙여주고, 생각도 깃들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가만히 오래 마주보면서 그 토우를 바라보노라면, 조그맣고 하얀 입자 몇 이 언뜻언뜻 보인다. 작고 볼품 없지만 눈빛이라도 간절한 토우였으면 한다.
*서정문 1990년 《우리문학》으로 등단. 시집 『화랑대』, 『푸른 날개』, 『지도에도 없는 길』 등. 국제펜이사, 전쟁문학상 수상, 다층문학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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