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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소시집/강우식/실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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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1
댓글 0건 조회 335회 작성일 22-12-2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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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소시집/강우식/실크로드 


강우식


실크로드



1. 

실크로드에는 사막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멀고 먼 길고 긴 길을 가다보면

삭막하고 막막한 사막을 만나는 것은 필연이다.


사막 앞에 서면 그저 아득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누구나 첫발을 내딛기가 망설여진다.

끝없는 절망과 거대한 허무 앞에서 

걸어가며 싸워 극복할 자신이 있는가.

한 번 가면 끝까지 가야할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오늘도 사막을 간다.

눈물 젖은 빵을 누군가 먹어보았느냐고 묻지만

그 눈물 젖은 빵을 먹기 위하여

소금이 필요한 사막을 걸어간다.


사막을 건너거나 건너온 자가 아니면 

인생을 말하지 말아야 하는 실크로드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 사람을 배우는 길이다.


사람이 사람을 아는 길이다.

나와 다른 음식을 맛보고 다른 말을 더듬거리고

다른 기후에 적응하며

사람과 사람이 이해하고 하나가 되는 길이다.


나는 실크로드의 한 왕국이었던 이찬칼라 성에서

그 옛날 대상들처럼 남아메리카에서

아프리카에서 유럽에서 온 수많은 인종들과 걸으며

그들 모두가 사막을 건너온 다른 사람들이자

하나가 되고자 하는 사람임을 체험한다.


2. 

머리는 불타 온통 머리카락들이

불길로 치솟는 듯한

사막의 끝이자 시작인 히바에서는


정오가 너무나 막막하다.

무조건 두문불출이다.

초복 중복 말복으로 더위를 나눌 수도 없다.


지역텔레비전의 글로벌 날씨예보는

신기하게도 대한민국 서울로부터 시작한다.

왜 우리나라 서울일까.


예부터 사막을 건너가고 오는 길은

밤하늘의 별을 보고 찾아 헤매던 저들에게는

해 뜨자 풀잎이슬이 영롱한

동방의 해 돋는 나라가 그리워서일까.


60년대 트랜지스터라디오 한 대 없던

아버지는 명태, 오징어, 양미리 등속을 말리면서

눈만 뜨면 태백산마루의 구름부터 살피었듯이


나는 내일이면 히바에서 누쿠스를 거쳐

물을 찾아 아랄 해가 있는 곳으로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침을 뱉어 손바닥 점이라도 치며

죽든 살든 떠나야 하지만


더위를 점쳐 볼 재주가 없는 나에겐

유숙하는 호텔의 데스크는

가까운 우르겐지 가는 정보도

택시 아니고는 다른 수단이 없다고 주지 않는다.


나그네가 맞긴 한데 隊商이 아니어서 그런가.

인심 또한 사막처럼 까칠하다.

다는 그렇지 않을 텐데 다 그렇다.

길만이 아니라 천지사방 내가 아는 거라고는

황사, 가슴이 팍팍 막혀오는 모래바람뿐이니까.


그래도 나는 사막의 길을 갈 것이다.

3.

나는 떠난다. 늘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떠났다.

내가 떠돌고 떠돌다 죽어 고국에 돌아오면

비명횡사한 줄 알았다고 입을 모을

텃밭주인 행세가 고작인 친구들로부터 떠난다.


우즈베키스탄 우르겐지에서 부하라로 가는

침대 열차 아래간에서 프랑스계의 마리라는 여자의 가족과

차를 같이 나눠 마시고  

신기해하는 접이식 내 돋보기를 써보게 내어주고

나침반 대신 휴대폰 구글 지도로 

미지의 세계로 가는 길을 보여주며 떠난다.


내가 가진 이 평범한 일상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신기하다는 것이

얼마나 이제껏 못 느껴본 다른 체험이냐.


가령 내가 타슈켄트의 초르스 시장에서

우리나라만 있는 줄 알았던 순대국을 먹어보고

식탁의자의 방석을 사서 

집에 와 중앙아시아 스타일로 꾸미는 

신선한 새로움을 너희는 아느냐.


다른 고장에서 같은 음식을 맛보며

우리 것과 다른 미묘한 맛의 차이를 음미하거나

다른 것을 가져와 낯선 땅의 느낌을 갖는

이 혼자만의 즐거움을 너희는 아느냐.


부딪쳐보고 어림짐작으로 찾아가 봐서

무슨 보물찾기처럼 맞닥뜨린 적중  

한 나라의 유적 앞에서 읽는 역사여.


가는 길에서 만난 사람이 

나를 속이고 더러 바가지도 쓰고

여기와 저기와 늘 다른 여행의 준비처럼

미비한 나를 보며 나를 알기 위해 오늘도 나는 떠난다.

이 세상 속아 살지 않는 자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도 나에게는 아스피린이 있다.

부하라로 가는 침대열차의 상비약에도 없는 

아스피린이 있어 

목구멍이 아프고 열이 오른 옆의 청년에게 주기도 한다.


4.

쿠바 헤밍웨이 문학박물관에서 기념으로

바다빛 모자 하나를 사서 좋아라고 쓰고 다니다가

집에 와 우연히 라벨을 보니 중국 제품이었다.

미국 동부인가 서부에서는

작은 기념품을 고르다 생산지를 보니

놀랍게도 조악하다는 말은 않겠지만 중국제품들이

그들의 인구만큼이나 물밀듯이 와 판을 치고 있어

메이딩  유에스에이를 찾아 헤매다

결국 목욕용 타월을 하나 사서 온 적도 있다.


타월 한 장에도 미제를 찾다니

이건 분유 등속을 받아먹거나

구호품으로 바다 건너온 옷가지들을 얻어 입은

내 유년의 슬픈 성장사와도 연관이 있다.


오스트리아 쉔부른 궁전 옆 세일 옷 판매대에서는

국제전시장처럼 만국의 옷이 널려 있었는데

거기에는 당연히 한국 제품도 자리 잡고 있었다.

참 모두들 먹고 살겠다고 

멀리도 와 문전성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또 아주 마음먹고 작정하고 간

인도네시아 반둥의 한 백화점에서는

원산지에서 모모한 유명브랜드 한 가지 구입비로

이렇다 할 명품들을 이것저것

무슨 큰 횡재나 한 것처럼 한보따리 메고 온 적도 있다.

하지만 당연히 그 나라 제품인 거 같아

손에 잡으면 아닌 적이 너무 많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상점의 의자깔개가

터키산이었듯이


체리며 살구 자두 등속이 지천인 초르스 과일시장에

바나나가 떠억 자리 잡은 것을 보며

아 여기가 동서양 실크로드의 길목이 아니었던가를

새삼 실감한다.


이제 세계가 실크로드 없는 실크로드가 되었다.

우리의 삼성은 실핏줄 같이

세계 어떤 나라 구석진 오지마을에도 간판이 우뚝하다.


처음에는 딴 나라 제품을 구입하고 속았다며

여행객이니까 하며 웃어넘겼는데 그럴 것 없다.

굳이 어느 나라 제품 따질 거 없이

눈에 띄고 사고 싶으면 사는 것이

사막 같은 세상 실크로드의 실크로드가 되었다.





*강우식 196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사행시초』, 『사행시초·2』, 『마추픽추』, 『바이칼』. 성균관대학교 시학교수 정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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