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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신작시/신동옥/미래의 시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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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1
댓글 0건 조회 295회 작성일 22-12-2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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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신작시/신동옥/미래의 시 외 1편 


신동옥


미래의 시 외 1편



주방 딸린 작은방 너머 큰방 하나 

모과나무 장미를 심은 마당가에 돌가루 쏟아지는 

낮은 옥외 화장실이 엎드린 귀퉁이 빛바랜

타일 벽 아래로 마당을 파내 지하실을 마련하고

지붕은 반나마 걷어낸 자리에 옥탑을 올린

해고 달이고 별이고 흐릿하니 

지워진 채 차고 이울기를 거듭했을 

처마 아래로

철봉을 박아 걸어둔 빨랫줄


언젠가 옷가지를 널다가

마주 건네던 수줍은 인사말처럼 예사로

스며오는 생소리를 엮어 꾸린 세간살이

나는 아직 내 이웃을 모두 알지 못한다

지나치게 시적이고

지나치게 비시적인 나의 이웃들

동물이건 사람이건 담을 쌓고 살면서도

지어 쓴 거짓말

거짓말 속에서


원망마저 말끔히 지운 글은 어떤 모양새일까?

원망만으로 써내려간 글은 또 어떤 모양새일까?

내가 살아가는 

이토록 안온하고 어리석은 

반쪽 세계 타들어가는 

불꽃과 망상과 신음 속에는

아름다움이 없을까? 죽어봐야 떠나봐야 

달아날 수도 숨을 수도 없다는 자각이

일으켜 세운 사방 벽

벽돌 하나하나마다 혀가 돋아나는


나는 내 이웃을 모른다

영영 그네들을 모르면서도

남김없이 당신들의 이야기를 받아 적었노라고

바로 그 모든 어긋남이 내가 꿈꾸는

시에 마침표를 찍을 마지막

단 한 줄의 문장을 

매듭짓는 방점일 거라고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열쇠로 삼아

도달할 수 있는 저 문턱 너머에 도사린다면

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 모든 

우연과 불가능은

마침내 전회轉回였고 도약이었노라고

빌어서 꾸는 꿈이

지어서 사는 삶이





종이 인형



까끌까끌한 새 슈트에서 풍기는 시너 내음

머리카락은 조금 더 부풀려

바짓단은 조이고 전투화에 별 가루 한 줌

나의 영웅들은 기댈 벽이 필요하다


벽에 뚫린 못 자국을 오래 들여다보듯

종이는 앞면 뒷면 뒷면 앞면

천연색으로 표정을 짓고 

써걱써걱 무쇠가위가 전진한다


오늘의 룰은 동틀 녘의 시가전

나의 영웅들은 붉게 달아오른 뺨을 내민다

위장크림도 수류탄도 대검도

두려움도 증오도 모두 모두 종잇장


각을 잡아 접은 면을 따라 길은 내면서

무쇠가위는 다음 스테이지를 향해 전진한다


팔락이며 닳아가는 몸뚱이 하나쯤이야

가뿐이 안아 올릴 가윗날을 믿어

미처 그려 넣지 않는 눈동자 가득

어둠이 들어 있어, 가라앉았다 떠오르며

스스로 잠들기 위해 자장가를 부르는 나날

써걱써걱 무쇠가위가 전진한다

바람에 떠밀려 팔락이는 순간에도

젖어 곤죽이 되어 

이름마저 녹아 사라진다 해도

종이는 앞면 뒷면 뒷면 앞면


나의 영웅들은 기댈 벽이 필요해

절취선을 따라 일렬로 늘어서서

어두워가는 종이 벽에 

얼굴을 그려 넣는다





*신동옥 2001년 《시와 반시》로 등단. 시집 『밤이 계속될 거야』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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