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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신작시/김소원/생일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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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신작시/김소원/생일 외 1편
김소원
생일 외 1편
놀이터 하늘을 검정색으로 칠한 나에게
밤에 나가 놀았니? 선생님이 물었다
겨울 창가 집안 깊숙이 찾아온 빛의 마림바를 쳐 보네
언니 등짝에 매미같이 붙어 자고 깨며
엄마 보고 싶다 어리광 부려본다
카라 열두 단 고속버스 수화물로 보냈습니다
네 젖병을 삶던 냄비에 고구마를 쪘어
너도 지금 네 아가의 젖병을 삶고 있지?
시험 끝나는 일요일에 갈게요
이제 담배라도 피워야 할까 봐요
딸의 딸을 안으면 말랐던 유선이 핑그르르
당신 선물을 샀는데 주문 폭주로 배달이 지연된대
머리가 하얘져도 호기심과 유머와 품위를 지녔으면 좋겠어
창작성가곡 초연에 우리 합창단이 출연해, 마침 오늘
시어버터로 손과 입술 촉촉하게 지키세요
기프티콘 고마워 잘 먹을게 내년에도 보내야 돼 알았지?
시간의 하중을 견딘 어깨뼈 위에
뻐근한 기쁨이 내려앉고
인터미션
끝나는 징이 울렸다
박수소리가 잦아들고
그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객석등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두 번 숨을 크게 내쉴 때
나도 따라 숨을 내쉬었다
윗옷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연주 전에 꼭 손을 씻는다는 그가
손수건으로 손가락 사이사이를 꼼꼼히 닦았다
그 손수건으로 이번엔
여든여덟 개 건반을 닦기 시작했다
생의 무대 한가운데로 걸어나오는 사이
피아니스트도
피아노도
손에 땀을 쥐었다
*김소원 2002년 《문학과 경계》로 등단. 편운문학상 신인상 수상. 시집 『시집 속의 칼』, 『그리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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