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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여름호)신작시/임재춘/갠지스강변의 개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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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강변의 개 외 1편
잔디밭에 편한 자세로 누운 그 개는
말라 붙어버린 창자가 삐져나와 있네
복부를 갈라놓은 상처가
창자를 내놓고 아물어 버렸네
아픔의 안과 밖이 붙은 걸 잊은 채
눈만 껌뻑거리며 바라보는 석양
들여놓음과 내놓음이 바뀐
오래 전 아픔은 잊은 듯,
눈동자는 우리를 향해
유유히 뱃살을 출렁이며 일어서네
풀밭에 앉았던 비둘기 제 갈 길로 날아가고
바라나시 화장터의 붉어진 눈시울
기도 올린 꽃등들이 강물 속에 띄워지네
석양에 눈물 떨구는 불빛들 강물을 태우네
스칸디나비안 클럽 옆
스칸디나비안 클럽 옆에서 우리는 헤어졌지
거기서 식사를, 술을 마신 것도 아니었지만
다만 그 옆에서 헤어졌을 뿐
오래된 벽돌과
푸른 울타리가 둘러친
건물 속으로 사라진 너
꽃잎 몇 개 남은 창문가 풍경이
눈이 아프도록 흔들리네
스칸디나비안 클럽 옆
어두워진 국립의료원
초록지붕과 흰 벽의 등줄기에
가까이 스치며 지나는 바람의 울음소리
빙 둘러선 빌딩들의 높이가 가려버린 하늘
고개 숙인 달빛은 창문을 닫으며 사라졌지
벽 깊숙한 곳에서 약에 취한 불빛들,
늘 아프게 기다리는 날들
밤중에 깨어나 서성거리는 복도의
시계추는 째깍대며 남은 밤을 새겠지
핀셋이며 해머, 각도기들
낯선 말들이 귓가에 익숙해질 무렵
붕대에 묶여버린 생애 한 순간
아득히 멀리 느껴지는,
스칸디나비안 클럽
같이 앉아 밥 먹을 수 있겠지
유리창 불빛에 비치는 내 모습
전생 같은
운명의 모퉁이를 서성이네
임재춘∙200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오래된 소금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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