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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여름호)신작시)/이근일/침잠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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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잠 외 1편
흰 빛이 올라간다
곧 사방으로 흘어진 그것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이,
영원히 오지 않을 영원처럼
봄날은 간다
무한한 하늘로의 침잠
차라리 땅속 깊은 잠이 안락한 것임을
봄의 흐트러짐을 겪은 뒤에야
멍청히 깨닫는다
언젠가 내게서
버려진 낡은 찬장 같은 침묵이
실내에 들어차 있다
도끼날 같지 않은 내 여린 숨, 뭉클한 기억으로
그 오래된 침묵을 어떻게 바술 것인가
한 줄기 빛에 얽매이고픈
열망이 생긴 건 요즘 내가
너무 많은 꿈을 꾸기 때문이지
그 꿈들로부터
수많은 내가 범람하는 사이,
올라가는 또 다른 흰빛에
매달린 손그림자 하나
물끄러미 그것을 응시하던
유리창 안 실가지들이 헝클어진다
폭염
물이 되지 못한 시간들이
뜨거운 빛으로 광장에 고이고 있었다
끝내 나를 만나지 못한 나는,
보이지 않는 분수의 물을 마시다
길 잃은 개와 눈이 마주쳤다
잠깐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데
가슴속이 온통 지난 기억들로 들끓었다
잃어버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개가 짖기 시작했다
한나절 그 목소리의 그림자를 따라다녔다
이근일∙200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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