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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여름호)신작시/문정/지구온난화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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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 외 1편
동짓달 초순인데도
겨울이 굼뜬 가을을 재촉하지 아니하여
은행나무는 황금의 추억을 나눠주는 일도 잊고
산맥은 잃어가던 빛깔 대신 먼 길 가는
바람을 잡아 뭉게구름을 만들어 들고 서 있습니다
이국의 메타스퀘어는 빨갛게 물드는 일도 멈추고
긴 팔 뻗어 푸른 하늘을 퍼내려오고
땅바닥에 낮게 엎드린 회양목과 사철나무는
푸르른 윤기 어제만큼이나 카랑카랑합니다
퇴근하는 사람들 발걸음과 낯빛도
산비탈에 매달려 사는 가난들도
넉넉하고 따뜻한 만찬에 초대받은 듯 가벼워서
하늘의 신 외눈박이 초승달도 눈꺼풀을 지그시 감고
쉬었다가 넘어가자며,
느린 지상을 흡족하니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흐린 날
다른 것은 아니고
땅과 하늘의 앙금이 풀리는 것
서로 얼굴 모르고 살아오던
사내와 여자가
세상의 온갖 물감들을
받아와 두 손으로 눈마다 짜 넣고
눈이 멀어버리는 것
내내 서로 안고 살아가다가
세월이 마른 손바닥을 뻗고 보채면
세필 갈필 모필
다 갖춘, 산줄기가 되고
지류가 되고
나뭇가지가 되고 풀포기가 되는 것
그러하다가 금방
서툰 사랑을 거덜내버리고
해와 달도 모르게
다시 남남으로 살아가는 것
문정∙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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