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46호(여름호)신작시/한해미/도시의 하루 외 1편
페이지 정보

본문
도시의 하루 외 1편
나는 먼지이다
헐렁한 시계는 두 팔이 늘어져 침대에 걸쳐있고
베고니아 화분은 천정을 뚫고 뻗어나간다
전등은 우주선이 되어 화성을 떠다니고
냉장고에서 노래하지 않는 새들이 튀어 나온다
고독을 블라인드로 가리고
나는 물고기처럼 빌딩숲을 유영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파닥이는 꼬리를 흔들면 도시가 출렁이고
빌딩은 두 발이 달린 버스가 되어 걸어다닌다
햇살이 떨어지면
가슴에 화살이 꽂힌 도시인으로
거리는 살의가 넘친다
창문을 통해 바람이 불어오면
집안을 부유하는 나는
하루를 휘어잡아보지만
휘어잡은 주먹을 펴보면
그대로 남아있는 먼지이다
아스팔트 위 성자聖者
역 광장 한 편 구석에
신문지 두 장으로 기워 만든 햇살을 덮고
맨바닥에 옆으로 날을 세워 누운
노숙자
신문지 모서리가 홑이불처럼 펄럭인다
얼굴과 상체만 가려진
날 선 칼날은 누구든지 범접하면 단칼에
날려버릴 기세다
유폐된 지난 기억은 날 선 칼날 밑에 깔려있고
신문지 두 장 크기의 집 한 채가
습한 시간을 햇살에 말린다
난들 이러고 살고 싶겠어?
라고 말하듯 머리맡에 놓여있는 빈 소주병
꼬인 생각을 쏟아낸 빈속이 쓰리다
광장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치우려고 환경미화원이
조심스레 그 남자를 비껴가며 청소한다
Miserere(미제레레)*
당신과 나
우리는 잠재적 노숙자가 아니던가?
Miserere(미제레레)
* ‘불쌍하게 여기소서’.
한해미∙2010년 ≪시와사상≫으로 등단.
추천0
- 이전글46호(여름호)신작시/박천순/꾀꼬리버섯 외 1편 13.03.01
- 다음글46호(여름호)신작시/이명/달마낙지 외 1편 13.03.0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