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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여름호)신작시/박천순/꾀꼬리버섯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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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3,162회 작성일 13-03-0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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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꼬리버섯 외 1편

 

 

썩고 있는 내 복숭아뼈를 깨고 꾀꼬리 새끼들이 한 마리씩 태어난다 그 때마다 축축한 허밍 소리, 꾀꼬리들은 노래가 흘러오는 쪽으로 앞 다투어 주둥이를 내밀고 있다 벌린 입속에 여러 종류의 음표를 떠 넣어준다 노래를 받아먹을 때마다 목소리가 커지고 날개에 빛이 오르는 꾀꼬리들이 점점 발목을 덮는다

 

손으로 쥐면 구멍 뚫린 뼈처럼 푹신한 습기가 안개를 만드는 새벽, 아버지는 노란 꾀꼬리버섯을 따오곤 하셨다 버섯 속에는 달작지근하게 삭은 복숭아 냄새가 스며있고 아버지 몸에선 축축한 나무 냄새가 났다 안개와 오래된 낙엽과 새벽이 버무려진 맛은 향기로웠다

 

아버지, 낮게 노래를 흥얼거리신다 목에서 버섯이 툭툭 튀어나와 일제히 나팔을 분다 아버지는 요단강을 건너고 나는 검은 나무로 변해간다 발목에서 솟아나 복숭아뼈 근처를 맴돌 뿐 날지 못하던 꾀꼬리들, 한꺼번에 입을 벌려 아버지 노래를 따라 부른다 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려 숲속으로 노랗게 번져간다

 

 

 

 

하혈

 

 

옥상의 물이 출렁거린다

먹먹하게 막혀버린 배수구 때문에

빗물은 자꾸만 두꺼워진다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집

채워놓은 지퍼가 터진다

벌어진 자리에 테이프를 붙여주지만

얇은 위장술로는 봉합되지 않는 상처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줄기가

끝없이 이어지고

부풀어 오른 부분을 메스로 잘라내자

빗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다

창문에 엉켜 붙는 둥근 눈들도

틈을 찾아 번들거리고

캄캄한 벽으로 스며든 물들은

스멀스멀 기어다니며

집에 살던 사람들 벌레들의

곰팡이 낀 호흡을 발라 먹는다

거울 속 사람까지 흥건히 젖은 집안에서

쭈글쭈글 늘어진 벽지를 떼어내며

나는 자꾸자꾸 물을 마신다

 

박천순∙2011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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