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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여름호)시깊이읽기/이혜정/세상이 아름다우면 무엇하리, 임이 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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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4,255회 작성일 13-03-02 11:26

본문

이혜정

세상이 아름다우면 무엇하리, 임이 없는 것을……

 

 

들국

김용택

산마다 단풍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뭐헌다요. 산 아래

물빛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산 너머, 저 산 너머로

산그늘도 다 도망가불고

산 아래 집 뒤안

하얀 억새꽃 하얀 손짓도

당신 안 오는데 뭔 헛짓이다요

저런 것들이 다 뭔 소용이다요

뭔 소용이다요. 어둔 산머리

 

초생달만 그대 얼굴같이 걸리면 뭐헌다요

마른 지푸라기 같은 내 마음에

허연 서리만 끼어 가고

저 달 금방 져불면

세상 길 다 막혀 막막한 어둠 천지일 턴디

병신같이, 바보 천치같이

이 가을 다 가도록

서리밭에 하얀 들국으로 피어 있으면

뭐헌다요, 뭔 소용이다요.

 

무심코 읽어 본 시 한 편에서, 가슴 깊숙이 옹송그리고 숨어 있던, 그리하여 그 존재조차 망각했던 옛 그리움의 조각들을 생생히 맞닥뜨려 보는 시적 경험이 현대인들에게는 낯선 일이 되어버린 요즈음, 2003년 발간된 김용택 시인의 시집 <참 좋은 당신>에 실린 「들국」이란 작품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감동을 일으키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감동의 파장이 주는 깊이와 의미는 독자 각자의 몫으로 남는 것일 수도 있을 터이나 필자는 「들국」을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보편적이라 할 만한 가슴울림을 느낄 것이라고 예견하곤 한다. 만용이 될지도 모를 이러한 예견은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이 글은 부족하나마 이에 대한 답이 되어 줄 것이다.

먼저 다음 작품을 한 번 읽어보자.

 

正月 上元日에 달과노 少年들은 踏橋고 노니는데 우리任은 어가고 踏橋할쥴 모로고

二月 淸明日에 나무마다 春氣들고 잔디잔듸 쇽입나니 萬物이 化樂듸 우리任은 어듸가고 春氣든쥴 모로고

三月 三日날의 江南셔 나온졔비 왓노라 現身고 瀟湘江 기러기 가노라 下直다 梨花桃花 萬發고 杏花芳草 훗날닌다 우리任은 어듸가고 花遊쥴 모로고

四月 初八日에 觀燈려 臨高臺니高低의 夕陽은 빗겻 魚龍燈 鳳鶴燈과 두루미 南星이며 鐘磬燈 仙燈 북燈이며 수박燈 마늘燈과 蓮속에 仙童이며 鸞鳳우희 천녀로다 燈 집燈 듸燈과 影燈 알燈 甁燈 壁欌燈 가마燈 欄干燈과 獅子탄 쳬괄이며 虎狼니탄 오랑라 발노 구을燈에 日月燈 아닛고 七星燈 버러듸 東嶺의 月上고 곳고지 불을현다 우리任은 어듸가고 觀燈쥴 모로고

五月 端午日의 남의집 少年들은 놉고놉게 긔늬고 번굴너 압히놉고 두번굴너 뒤히놉하 鞦韆며 노니 우리任은 어듸가고 鞦韆쥴 모로고

―「觀燈歌」

 

위 작품은 조선후기 육당본 <청구영언>에 수록되어 있는 가창가사 「관등가觀燈歌」이다. 육당본 <청구영언>에는 총 999수의 시조작품이 존재하는데, 시조작품 이후 맨 뒤쪽에는 작자미상의 가창가사가 다수 부기附記되어 있다. 이 가창가사 작품들은 시조를 즐기고 연행하던 현장에서 노래되었던 가사 작품들로, 작자가 밝혀지지 않고 기록되어 전해지는 만큼 개성적인 작자 층의 창작의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조선후기에는 다양한 시가들이 혼재하고 있었다. 조선전기나 중기에서는 작품 전체를 조율하는 작자의식을 기본으로 창작된 작품이 많아 작품마다 작자를 연구하고 작자 층의 세계관 등을 분석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만 다양한 연행현장에서 유행하는 노래를 즐겼던 조선후기 작자미상의 작품 해석을 위해서는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관등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시조집에 실려 있다고 할지라도 작자미상인 데다가 달거리 형식을 바탕으로 “우리任은 어가고 □□쥴 모로고”로 마무리 하는 사설은 그 당시 유행하던 사설 형식이었던 바, 이러한 형식과 사설은 이 작품 외에도 1930년대 고대본高大本 <악부樂府>에 수록되어 있는 「월령상사가」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는 당대인들에게 관통하는 보편적인 공감의 정서가 흐르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정월에 아름다운 달이 떴다. 소년들은 달과 노닐며 답교를 하는데, 우리 임은 어디 가고 답교할 줄도 모르느냐고 화자는 안타까워한다. 이월에는 나무마다 봄기운이 들고 잔디마다 푸른 속잎이 나와 온 세상 즐거움으로 가득한데, 우리 임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제비는 강남에서 날아오고 기러기는 북쪽으로 떠나는 삼월, 흰 눈보다 고운 배꽃과 수줍은 듯 붉디 붉은 복숭아꽃이 만발하고 향기 나는 꽃과 풀이 흩날리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 임은 어디 가서 꽃놀이도 못 하는가.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을 기리는 아름다운 등으로 원근 고저 온 세상이 가득한 밤, 흰 달까지 뜨니 더더욱 환상적인 불빛이 펼쳐지는데, 우리 임은 어디 가서 관등할 줄도 모르는지. 오월 단오일을 맞아 남의 집 소년들은 그네 타며 노니는데 우리 임은 어디 가서 그네놀이조차 못 하는가.

1월부터 5월까지 즐거운 세시풍속과 아름다운 자연의 변화로 화자의 마음은 들뜨기만 한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즐기기 위해서는 우리 임의 존재가 더더욱 절실한데, 우리 임은 어디에 가서 나와 함께 즐기지 못 하는가 탄식하는 목소리에 이 작품을 시로서 읽는 현대의 독자든 연행 현장에서 노래로서 향유하던 당대의 사람들이든 누구나 “그렇지!” 하는 공감의 탄성을 내지를 만하다 하겠다.

삶은 부재와 결핍 속에 상처를 입는다.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아름다운 자연은 영원한 생명력으로 소생하지만 이와 반대로 사람이 산다는 것은 다양한 층위의 결핍감을 알게 되고 아파하고 나아가서는 그 결핍감에 익숙해져 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 부재와 결핍의 대상이 이상향이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조국이든 종교적 대상이든 삶이란 왜 그다지도 내가 원하는 그 순간 그 소망의 대상을 내 곁에 두지 않는 것일까. 외로움과 결핍감을 꼭꼭 씹어가며 때로는 굳은살로 메워가며 막연한 ‘그’를 향해 타오르는 ‘나’의 그리움을 일부러 모른 척 해보기도 하지만, 잊었다고 스스로를 속이기도 하지만, 밝은 달이 온 세상을 비추고 화려한 듯 ‘나’의 그리움을 닮은 붉은 등이 수도 없이 반짝이는 밤, 굳은살을 뚫고 치솟아 오르는 ‘임’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어찌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탄식할 뿐이다. 우리 임은 어디 가고 관등할 줄 모르는가······.

한편 「관등가」는 고전 시가의 다양한 장르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달거리 형식으로 매 달 매 달의 세시풍속과 자연풍경을 짧게나마 노랫말로 구성하는, 즉 임에 대한 화자의 그리움을 시간적으로 확장하는 형태이다. 그러다 보니 독특하게도 매 달 매 달 작품이 진행될수록 임의 부재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한편 다양한 세시풍속과 아름다운 자연풍경으로 묘하게 흥겨워진다. 흥겨움과 안타까움, 충족감과 결핍감의 묘한 대비가 삶의 아이러니를 반영하며 또다시 살아나갈 힘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관등가」의 노랫말이 사설시조 및 가창가사, 규방가사 등 여러 장르에서 발견될 만큼 당대 유행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이러한 삶의 비의를 그려냄으로써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보편적 생명력을 확보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김용택 시인의 「들국」을 처음 읽고 필자는 자연스럽게 조선후기 가창가사 「관등가」를 떠올렸다. 임의 부재가 주는 안타까움을 나를 둘러싼 아름다운 자연과 대비시키는 발상이 동일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산마다 단풍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뭐헌다요.” 로 시작되는 「들국」은 “당신 안 오는데 뭔 헛짓이다요/저런 것들이 다 뭔 소용이다요/뭔 소용이다요.”라는 구절을 통해 오지 않는 임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가을이 되어 온 산에 단풍이 저리 곱고 물빛도 저리 곱고 하얀 억새꽃의 손짓에도 가슴 설레는데, 당신은 오지 않으니 이게 다 뭔 헛짓이고 뭔 소용이겠는가. 초생달만 그대 얼굴같이 걸리면 뭐하겠는가. 내 마음은 마른 지푸라기처럼 버석거리고 허연 서리만 낀 듯 차갑고 아프기만 한데, 이제 저 달만 지고 말면 세상은 내 마음처럼 막막한 어둠으로 가득 찰 텐데, 나 혼자 바보 같이 병신같이 서리밭에 하얀 들국으로 피어 있으면 그대가 와서 알아줄까. 나의 마음을 알아줄까. 그러나 당신은 오지 않으니 내가 “서리밭에 하얀 들국으로 피어 있으면/뭐헌다요, 뭔 소용이다요.”

단풍으로 물빛으로 하얀 억새꽃으로 아름다운 이 가을도 당신이 없다면 아무 소용도 없다고 낮게 탄식하는 화자를 통해 필자는 조선후기 가창가사 「관등가」에서 “우리任은 어가고 □□쥴 모로고”라고 노래하던 바로 그 사람을 만난다. 작고 사소한 변화에도 그대를 떠올리며 그의 부재를 실감하며 가슴 아파하는 것은 떠나버린 임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못 하는 자에게 내려진 숙명 같은 형벌일 터, 어쩌지 못 하는 화자의 공통적인 안타까움에 고전작품과 현대작품이라는 시간적 층위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같은 결의 공감을 공히 표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김용택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 때로는 민요처럼 때로는 동요처럼 시어를 엮어가는 그의 방식에 마음 따뜻함을 느끼곤 한다. 우리 전통시가에서부터 면면히 내려오는 공통의 정서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인간 삶의 비의로 이해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김용택 시가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시는 고전작품이 줄 수 없는 현대시만의 맛 또한 갖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현대시가 고전시가의 답습이 되어서는 아니 될 터, 김용택 시인은 「들국」이란 작품에서 현대시가 가질 수 있는 미덕을 충분히 구현하고 있다.

우선 「들국」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가을이란 계절을 배경으로 한다. 작자미상의 작품이 유행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노랫말이 필수적이다. 이에 「관등가」는 쉬운 노랫말을 기반으로 매 달의 사설을 열거하는 형태, 즉 정서의 심층화보다는 시간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 반면 현대시인 「들국」은 매 달 매 달 동일한 정서를 열거하는 방식 대신 ‘가을’이란 한 계절에 집중함으로써 정서의 심층화를 추구한다. 따라서 「관등가」처럼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을 나열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의식을 토대로 김용택 시인은 가을의 소재를 자유자재로 이미지화하고 있다. 단풍과 물빛, 억새꽃은 그대와 함께 하지 못 하는 화자와 대비되는 아름다운 자연으로, 마른 지푸라기와 허연 서리는 당신이 없어 버석거릴 수밖에 없는 상처로 가득한 화자의 마음을 구체화하는 소재로 형상화하였다. 주지하다시피 가을은 양면적인 계절이다. 봄꽃이 주는 화사한 설렘에 절대 뒤지지 않는 단풍이 주는 화려한 색채 미학을 기억해보라. 반면 계절이 깊어갈 수록 모든 잎과 열매가 지고 난 뒤 마른 지푸라기와 허연 서리만 남은 가을은 또 얼마나 쓸쓸하고 외롭던가. 김용택 시인은 이와 같은 가을의 양면적 의미를 놓치지 않고 한편으로는 화자를 절망시키는 아름다운 자연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당신이 없는 화자의 상처 입은 마음으로 활용한 것이다. 그뿐인가. 결국 외로이 쓸쓸히 남은 화자 자신을 서리밭에 핀 하얀 들국으로 이미지화하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아름답지만 쓸쓸한 계절 가을은 당신의 부재를 괴로워하는 시의 주제를 구축하는 데에 가장 알맞은 배경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으로 “뭐헌다요”, “뭔 헛짓이다요”, “뭔 소용이다요” 등의 사투리 어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구수한 사투리가 주는 가슴울림을 무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사투리의 어조에 맞춰 낮게 시를 읊조리다 보면 화자의 탄식을 자연스레 재연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시는 낭독했을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나타난다. 눈으로 읽기만 했을 때와 달리 입을 벌려 낭독했을 때 더 큰 울림을 받을 수 있다. 그 비밀의 열쇠는 구수한 사투리 어조와 더불어 적절한 쉼표, 마침표의 사용 및 탁월한 시행 배열의 호흡조절에서 찾을 수 있다. 작품을 면밀히 살펴보면, 1행 끝에 “뭐헌다요”를 쓴 다음 2행에서 “뭐헌다요”를 다시 반복한 뒤 비로소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행을 바꾸지 않고 “산 아래” 구절을 연이어 배열함으로써 호흡을 조절하는데, 마침표가 있는 “뭐헌다요”에서 한 번 숨을 쉬게 된 독자는 3행과 의미상 연결되지만 형식상 독립된 “산 아래” 구절을 탄식하듯 낮게 읽게 되고 그 안타까운 마음을 간직한 채 다음 행으로 자연스럽게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9행과 10행 사이에서도 볼 수 있다. 9행의 “뭔 소용이다요”가 10행에서 한 번 더 반복된 다음 비로소 마침표가 찍힌다. 10행의 “뭔 소용이다요”를 읽으며 탄식의 공감을 갖게 된 독자는 잠시 휴지를 가진 다음 같은 행의 다른 구절 “어둔 산머리”를 낮은 장탄식과 함께 읽게 된다. 그리고 다시 시는 의미를 확장해 간다. 이와 달리 시의 마무리 부분에서는 “뭐헌다요, 뭔 소용이다요”가 같은 행에 쓰여 있다. 시상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는 마침내 마지막 마침표에 맞춰 굵고 깊은 탄식을 하게 된다. 작품이 주는 깊은 여운과 함께······.

이렇듯 김용택 시인은 현대시가 가질 수 있는 미덕을 십분 활용하여 당신이 없는 쓸쓸한 가을을 아름답게 창작하였다. 그 아름다움은, 고전시가 「관등가」와 현대의 독자를 만나게 한다. 전통이란 이런 것이다. 우리 가슴 저 깊은 곳 무의식적으로 존재하다 불현듯 훌륭한 현대 작가를 통해 새롭게 발견되고 재창조된다. 다시 한 번 「들국」을 낭독해본다. 가슴이 운다.

 

이혜정∙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국문과 박사 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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