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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여름호)산문연재|윤의섭의 포에티카⑥/표현의 技術·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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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연재|윤의섭의 포에티카⑥/표현의 技術·2
좋은 표현은 단순한 글재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철 스님의 유명한 말 중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심오한 뜻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물론 돈오돈수를 일갈한 성철 스님의 깊은 깨달음이 없었다면 이 표현에는 그렇게 깊은 의미가 깃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곧 해탈이요 깨달음이라는 전언이 이 말에 포함되어 있다면 우선 그러한 세계의 본질을 간파한 혜안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산’과 ‘물’을 반복하며 중첩적 문장으로 표현함으로써 단순하면서도 의미의 점층적 효과를 획득하고 있다. 즉, 앞의 ‘산’ ‘물’은 각각 뒤의 ‘산’과 ‘물’에 이르러 더 많은 의미를 함유하며 그 성질이 변전한다. 그런데 만약 이 말 대신 ‘세계는 있는 그대로 봐야 하므로, 무욕의 마음으로 물아일체가 되어야 한다’라는 식으로 표현했다면 그렇게 큰 감흥은 일지 않을 것이다. 좋은 의미는 이렇게 그 의미에 적확하게 맞아떨어지는 표현의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이다.
1. 개인적 문체로서의 표현
한 시인이 갖고 있는 개인적 문체는 그 시인의 세계를 적확하게 드러내는 표현을 통해 나타난다. 그러나 어떤 경우 이러한 개인적 문체는 여러 편의 시에서 자주 쓰일 경우 자칫 상투적인 표현, 또는 식상한 표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적당한 선에서 자신의 표현에 대한 자기 모방을 멈춰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하더라도 남들이 갖지 못한 자신만의 표현에 의한 문체를 획득한다는 것은 시인으로서 얼마나 간절한 일인가. 최근, 언어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변화되면서 개성 있는 표현을 보여주는 시인들이 늘고 있다. 다시 말해 일반적이라면 그렇게 표현하지 않을 텐데 같은 말이라도 시에서 독창적으로 표현을 하는 시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발음은 발설의 유약한 전조라고 기록하기로 한다.//…(중략)…뜬눈으로 퀭한 새벽이 오길 두 손 모으고 기다리며 나는 홀로 당신을 건넜다고 기록하기로 한다.//…(중략)…오래전의 밤이었다고 기록하기로 한다.
―김산, 「哭」 부분
위에 인용한 세 문장은 각 연의 끝에 배치되어 있다. 즉, 의도적인 배치인 것이다. 이 문장들의 특징은 ‘기록하기로 한다’라는 ‘의도를 나타내는 서술어’로 끝맺고 있다는 데 있다. 흔한 표현으로라면(물론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기록한다’라고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하기로 한다’라고 함으로써 ‘기록’이라는 행위를 유보시켜 놓고 있다. 결심만 한 상태이지 아직 ‘기록’한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시에서는 이미 ‘발음은 발설의 유약한 전조’, ‘나는 홀로 당신을 건넜다’, ‘오래 전의 밤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모순으로 위 세 문장은 묘한 심정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기록이 되어 있으면서 기록이 아직 되지 않은 상태, 이러한 모순성은 서술어를 한 번 더 뒤틀어놓는 표현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표현의 묘를 알고 있는 시인의 시적 의도가 성공할 수 있는 지점은 그것이 진부해지기 전에 적절한 때에 접을 줄 알아야 한다는 데 있다. 만약 위와 같은 표현이 같은 시인의 시에서 자주 산견된다면 오히려 각 시들이 갖고 있는 의미들이 비슷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한 떼의 위악한 살들이 겨울의 빛을 망쳤다고 쓰겠다./담배 연기가 죽은 구름을 위로하고 무딘 낫이 때때로/공중을 살들을 헤집었다고 쓰겠다./…(중략)…그리하여 영영 침묵으로 말하겠다고 쓰겠다.
―김산, 「겨울의 내계」 부분
위 시에서는 ‘…고 쓰겠다’가 반복되고 있는데, 앞의 시와 마찬가지로 ‘쓴다’가 아니라 ‘의도형 서술어’를 활용하고 있다. 그래서 그 내용 역시 이미 써 놓은 문장과는 다르게 표현상으로는 아직 쓰지 않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흔한 표현법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앞의 시와 비교할 때 그 구조나 의도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개성적 문체인 것은 확실하나 자신의 시 내에서는 개성적인 것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 기술은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시인의 사유와 감성을 전달하는 데 있어 적확한 표현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독창적 표현은 시인의 계발 의지가 없으면 발견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귀감이 되어야 할 것이다.
2. 한자 표현
문장의 새롭고도 독특한 배치 외에, 평이한 시어를 습관적으로 끌어오지 않고 한자를 선택하여 쓰는 경우가 있다. 물론 한자는 예전부터 쓰여 왔고 우리말의 60퍼센트 이상이 한자어라고 하니, 그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의 시에서는 신조어로서 한자를 쓰기도 하고, 일상어가 아니라 꽤 어렵거나 잘 안 쓰이는 한자를 쓰는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더구나 굳이 이 부분에 한자를 써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도 생길 만큼 한자가 다충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자는 그것이 시의 내용을 표현하는 데 있어 적합하기만 하다면 그만큼 훌륭한 효과를 이끌어내는 표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울리지 않는 배치, 시와 동떨어져 있는 듯한 한자의 사용은 오히려 시 전체를 독자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한자는 그 자체가 다양한 의미를 함유하고 있으며, 동음이의어를 통한 이중 의미 형성에도 유용하다.
아무리 흔들려도 저 木家의 밖은/멀리 떠나지 않고/흔들리는 푸른 것들은 바람의 고삐에 묶여 있다/…(중략)…/나무 밑 亂廛이 시고 푸르다.
―박해람, 「독설-지나간 다정함이란 곁의 어린 쓸쓸함만도 못하다/나는 내 독설에 기대어 견디는 중이다」 부분
위 시에서 ‘木家’는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는 말로, 문맥상 ‘나무’라고 볼 수 있다. 시인이 굳이 ‘나무’라고 하지 않고 ‘木家’라고 쓴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이 한자 자체가 가져다주는 이미지에 있을 것이다. 또한 ‘나무’를 다른 설명이나 장치 없이 의인화하는 효과도 있다. 한자는 언어의 경제적 운용을 가능케 한다. 시인은 또한 ‘허가 없이 길에 함부로 벌여 놓은 가게’라는 의미의 ‘난전’을 한글로 표기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은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가져온다고 보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시에서 한자 표현은 그것이 아니었다면 밋밋한 ‘나무’ 얘기로 전개될 수 있는 것을 좀 더 무게 있고 고풍스럽게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
나무의 自殺은/그 木管 속에 미세한 길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고/音은 미세한 고통이고/날개에 분가루가 있는 것들에게는 소리가 없듯/자살한 나무로 만든 악기에는/죽은 것들의 후렴을 잡아둘 수 있는 木의 棺이 있다
―박해람, 「자살하는 악기」 부분
이 시는 ‘목관’을 의도적으로 한자로 표기함으로써, 뒤에 ‘木의 棺’과 동음이의어로 연계되도록 장치해 놓고 있다. 또한 ‘소리’가 아니라 ‘音’이라고 표현하여 그것이 ‘악기의 소리’라는 의미가 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한자 표현은 다양한 의미를 동시적으로 유발할 수 있는 표현 기술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것은 평이하게 표현된 시보다 좀 더 함축적이면서 독자를 몰입하게 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너무 많은 한자의 남발은 분명 피해야 할 것이다.
표현의 기술에 대한 논의로 서술어의 남 다른 표현 방식과 한자 표현에 대해 살펴보았다. 많은 시를 예로 들지는 못했으나 이러한 표현 기술이 다른 시들과의 차이성을 일구어내며 어떤 면에서는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우리의 시에서 이러한 표현에 대한 고찰과 노력이 곁들어지지 않는다면, 시의 변화, 혹은 진화는 일어나기 힘들 것이다. 이는 표현의 기술을 앞으로 더 논의해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윤의섭∙1968년 경기도 시흥 생, 1994년 ≪문학과 사회≫로 시 등단, 21세기 전망 동인. 시집 <말괄량이 삐삐의 죽음>, <천국의 난민>,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 <마계>. 대전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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