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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여름호)독자시감상/이재민|내 마음에서 자라나는 갈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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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3,014회 작성일 13-03-0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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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내 마음에서 자라나는 갈매나무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샅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그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봄이 왔다. 오랜 기간 사람들을 괴롭혀 왔던 추운 날씨가 끝을 고하며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 새로운 시작을 즐겁게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정말로 오랜만에 즐거운 기분으로 이 새로운 시작의 계절을 맞이할 수 있었다. 지난 몇 년간 나는 이 새로운 시작의 봄을 즐겁게 맞이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2009년부터 2011년까지의 3년간의 겨울은 나에게 너무나 매서웠고, 그 매서운 겨울은 나에게서 새로운 시작의 봄을 앗아갔다. 3년이란 시간은 참 길었다. 남들은 한 번에 완주하는 수능이란 이름의 레이스를 나는 남들보다 두 번을 더 달려서야 완주할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레이스 트랙을 떠나 캠퍼스로 떠나가는데 나는 또 다시 그 곳에 남아있어야 했다. 특히 2번째 수능에서마저 좌절하고 3번째 수능에 또 다시 도전할 때는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쳐 잔인한 겨울을 보내고 위로받지 못한 채 봄을 보내야 했다.

사실 나는 시 감상을 쓸 수 있을 만큼 많은 시를 읽어 본 것도 아니고 글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 뜻 시 감상문을 써보자 라고 한 것은 작년 이맘 때, 새로운 시작의 봄을 빼앗겨 버렸을 때, 나의 뇌리에 박혀 지금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시가 있기 때문이다. 수험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언어영역에 출제된 문학 작품은 감상의 대상이라기 보단 비문학을 읽을 때와 같이 정보를 찾아야할 대상으로 변해 있었다. 내가 느낀 점은 중요하지 않았다. 5개의 선택지 중에서 출제자의 감상을 찾아야 했고, 내 느낌에 근거한 감상이 아닌 주어진 자료에 근거한 감상을 찾아야 했다. 문학작품 그 자체를 느끼기 보단 짧은 시간 안에 수사법과 시간의 흐름 등을 파악하는 것이 수능에 ‘맞는’ 감상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에는 코웃음 쳤었던 ‘언어영역 지문 속문학 작품은 비문학 지문 읽듯이 읽어야 한다.’는 모 인터넷 강사의 말이 나중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3번째 수능을 준비하며 나는 이런 정보 찾기 식의 감상에 익숙해져 있었다. 더군다나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많은 악재들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겹쳐서 언어영역 문제를 보면 마음속 깊이 감상하기보다 빠른 시간 내에 문제를 풀고 채점을 했었다. 그러던 중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라는 시가 나왔다. 기출 문제였기에 이전에 분명히 봤던 시였을 터였다. 그리고 그 때에는 아무런 느낌 없이 문제를 풀고 채점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날만은 그 시가 있던 책장을 넘기지 못하였다. 읽고 또 읽고 계속해서 읽었다. 자습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 시가 있는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아니 넘기지 않았다. 그리고 문제도 풀지 않았다. 백석이 그 해 수능에 출제가 예상되는 아주 중요한 시인이라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 시의 어구들이 내 가슴에 박힌 채 떠나지 않았었다.

시는 화자의 절망적인 상황 묘사로 시작한다. 아내와 집을 잃고 가족들과도 떨어져 혼자 외로이 거리를 헤매는 화자. 싸늘한 겨울바람은 그의 절망을 더더욱 깊게 만든다. 수능을 망친 수험생에게 겨울은 잔인했다. 차디찬 겨울바람이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그 찢어진 마음을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2번째 수능을 보고난 겨울은 유난히도 춥고 괴로웠다. 2번째 시도에서마저 실패했다는 자괴감에서 벗어나기 힘들었고 성적표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셨다. 아버지는 중장비 운전기사인데 새해 바로 전날 일을 하시다 큰 사고를 당하셨다. 아버지는 크게 다치시지 않으셨지만 아버지의 차는 반파 되었다. 아버지는 사고 후유증으로 불면증에 실어증 증세까지 보이시고 시작했고 어머니는 그 소식과 동시에 날아든 나의 삼수소식이 겹쳐 우울증이 오셨었다. 비록 이때 내가 느낀 슬픔과 절망이 아내를 잃은 화자의 슬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 당시 내가 느꼈던 절망감과 슬픔은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느낀 가장 깊은 절망감이었다. 그렇기에 겨울이라는 계절이 이 시에서 화자가 느끼는 그 감정들을 얼마나 매섭게 파고들어 심화시켰을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깊은 절망감과 슬픔 속에서 겨울이 만들어 낸 차디찬 바람과 메마른 세상을 보고 있다가 문득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는 생각을 했었다. 끝없는 절망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처럼 보였다. 그러나 삶을 쉽게 멈출 수는 없었다. 정말로 밥 한 끼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도 이틀이 지나면 나도 모르게 식탁에서 수저를 들고 있었고, 가슴이 답답해 잠을 이룰 수 없을 것만 같았지만 눈을 감았다 뜨면 어느새 아침이 되어 있었다. 화자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깊은 슬픔과 절망감 속에서도 화자는 추위를 피하기 위하여 한 목수의 집으로 들어간다. 내가 삶을 멈출 수 없었던 것처럼 삶에 대한 무의식적 의지가 그를 목수네 집으로 이끌었으리라. 한 동안 그 목수의 집에서 묵으면서 화자는 자신의 절망 속으로 깊이 침전한다. 의미 없는 행동을 하며 자신의 슬픔을 반추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반복한다. 정말로 깊은 슬픔과 절망을 느끼면 타인의 위로를 받고 싶은 생각이 들기보단 타인을 피하게 된다. 나 역시 학원을 들어가기 전까지 화자처럼 시간을 보냈다. 방에 박혀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핸드폰은 아버지의 사고 이후로 꺼진지 오래였고 컴퓨터 앞에 앉아 무의미하게 마우스를 끼적였다.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지만 머릿속엔 슬픔이 가득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불에 머리를 박고 울다 지치곤 했다. 화자가 슬픔을 반추하고 절망감에 침전하며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듯이 나 역시 그렇게 죽음을 생각하곤 했다.

한 동안 깊은 절망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다 보니 문득 자신의 삶이 자신의 의지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어떠한 거대한 것에 의하여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2번째 수능을 3주 정도 앞두고 나는 신종 플루에 걸렸다. 그 뒤 타미플루를 복용하다보니 몸이 전체적으로 약해졌고 결국 수능 전날 밥을 먹다 체해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하고 시험을 보았다. 그 때 당시에는 이런 것 역시 이겨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더 기운을 내보려고 노력했지만,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아버지의 사고가 겹치자 무언가 내 노력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내 인생을 이끌어가는 느낌이 들었었다. 화자 역시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슬픔을 계속해서 되새김질 하다가 자신의 뜻으로 자신을 이끌어 가기는 힘든 일인 것을 깨닫고, 자신의 인생을 굴려가는 더 크고 높은 존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화자는 그러한 생각을 딛고 일어나 더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그 거대한 무언가를 원망하며 더 깊은 절망으로 빠져들었다. 그 존재가 무엇이기에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고 괴롭히는 것일까? 라는 원망을 마음에 품고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봤었다. 그러나 화자는 그것을 견뎌낼 것을 다짐한다. 내가 이 시에서 가장 좋아하고 또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는 가장 마지막 행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에 화자의 그 의지가 드러난다. 굳고 정한 갈매나무,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겨울의 잔인한 눈과 바람을 맞으면서도 굳세게, 변하지 않은 채로 겨울을 난다. 정말로 그러한 나무가 먼 뒷산 바위 옆에서 겨울을 견디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화자는 다짐하는 것이다. 자신은 한 그루의 갈매나무가 될 수 있다고. 자신이 한 그루의 갈매나무 그 자체라고. 화자는 자신의 의지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자신의 인생을 고달프게 만들려고 노력하건 말건 그것을 굳건한 자세로 버텨내고 고단한 계절이 지나가고 언젠간 다가올 새 출발의 봄을 기다려 다시 자신의 의지를 펴보겠다는 의지를 다짐하고 있다. 그렇게 내 의지를 짓밟는 세상에 대한 원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에게 따끔한 충고를 던지고 있었다. 몇 시간 동안 이 시를 펴놓고 있었던 나는 집에 가는 길에 내 마음속에 한 그루의 갈매나무의 씨앗을 심었다. 그것이 자라서 화자가 꿈꿨던 그리고 내가 꿈꾸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가 되기를 바라며.

그리고 다시 봄이 왔다. 그 날의 봄에 심었던 내 마음속의 갈매나무는 지금쯤 내가 바라는 대로 자랐을까? 그 당시만큼 큰 고통과 절망을 다시 나에게 다가오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지만 그 이후의 몇 번의 시련들을 나는 싹을 틔웠을 그 나무를 생각하며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여유가 생기면서 ‘그 때 부모님들은 각자의 갈매나무를 자신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으셨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 당시는 나의 슬픔과 절망도 수습하지 못해 가족들의 슬픔과 절망을 헤아리지 못했었다. 그러나 다시 돌이켜 보면 아버지는 고통 속에서도 차가 수리되자마자 일을 시작하셨고 어머니는 우울증이 치료중인 상태에서도 가족들의 밥과 집안 청소를 거르신 적이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미 굳고 정하게 자란 갈매나무를 마음속에 한 그루 씩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그렇기에 나보다 빠르게 절망과 슬픔 속에서 빠져나와 다시 새로운 도약을 할 준비를 하고 계셨었다. 지난 3년간의 경험은 내게 엄청난 절망과 슬픔을 주었지만 그 경험이 내 마음속에 갈매나무의 씨앗을 심을 계기를 주었다. 그리고 이제 막 싹을 틔운 나의 갈매나무도 언젠가는 부모님들 것만큼 굳고 정하게 자라서 앞으로 내게 닥칠 절망과 슬픔을 꿋꿋이 견뎌 내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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