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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가을호)오늘의시인/신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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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3,363회 작성일 13-03-18 19:30

본문

오늘릐 시인

 

 

신달자 대표시

가정백반 외 4편

 

 

집 앞 상가에서 가정백반을 먹는다

가정백반은 내 집에 없고

상가건물 지하 남원집에 있는데

집 밥 같은 가정백반은 집 아닌 남원집에 있는데

집에는 가정이 없나

밥이 없으니 가정이 없나?

혼자 먹는 가정백반

남원집 옆 24시간 편의점에서도 파나?

꾸역꾸역 가정백반을 넘기고

기웃기웃 가정으로 돌아가는데

대모산이 엄마처럼 콧물을 훌쩍이는 저녁.

 

 

 

 

대표시

아버지의 빛

 

 

아버지를 땅에 묻었다.

하늘이던 아버지가 땅이 되었다

 

땅은 나의 아버지

 

하산하는 길에

발이 오그라들었다

 

신발을 신고 땅을 밟는 일

발톱 저리게 황망하다

 

자갈에 부딪쳐도 피가 당긴다.

 

 

 

 

 

대표시

 

 

내가 건너온 강이 손등 위에 다 모여 있다

무겁다는 말도 없이 손은 잘 받아 주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꽤나 수척해 있다

툭툭 튀어나온 강줄기가 순조롭지 않았는지

억세게 고단하게 보인다

허겁지겁 건너오느라 강의 성도 이름도 몰라

우두커니 쳐다보기만 하는데

뭐 이름을 아아 무엇 하냐며 손사래를 치는 것인지

퍼런 심줄 줄기가 거칠게 겉늙어 보인다

그 강의 이름을 그냥 끈이라 하자

날 놓지 못하고 기어이 내 손등까지 따라와

소리 없이 내가 건넌 세월의 줄을 홀쳐매고 있으니

자잘한 잔물결이 손등 전체에 퍼져

내가 아무리 떨쳐 버리려 해도 세월의 주름은 더 깊게

내 손을 부여잡고 있다

그 세월 손아귀 힘이 장난 아니어서 아예

잠 못 드는 밤 팔베개를 하고 그 강줄기들과 함께 흐르려 한다.

 

 

 

 

 

대표시

저 거리의 암자

 

 

어둠 깊어 가는 수서역 부근에는

트럭 한 대분의 하루 노동을 벗기 위해

포장마차에 몸을 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인과 손님이 함께

야간 여행을 떠납니다

밤에서 밤까지 주황색 마차는

잡다한 번뇌를 싣고 내리고

구슬픈 노래를 잔마다 채우고

빗된 농담도 잔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속 풀이 국물이 짜글짜글 냄비에서 끓고 있습니다

거리의 어둠이 짙을수록

진탕으로 울화가 짙은 사내들이

해고된 직장을 마시고 단칸방의 갈증을 마십니다

젓가락으로 집던 산 낙지가 꿈틀 상 위에 떨어져

온몸으로 문자를 쓰지만 아무도 읽어 내지 못합니다

답답한 것이 산 낙지뿐입니까

어쩌다 생의 절반을 속임수에 팔아 버린 여자도

서울을 통째로 마시다가 속이 뒤집혀 욕을 게워 냅니다

비워진 소주병이 놓인 플라스틱 작은 상이 휘청거립니다

마음도 다리도 휘청거리는 밤거리에서

조금씩 비워지는

잘 익은 감빛 포장마차는 한 채의 묵묵한 암자입니다

새벽이 오면

포장마차 주인은 밤새 지은 암자를 거둬 냅니다

손님이나 주인 모두 하룻밤의 수행이 끝났습니다

잠을 설치며 속을 졸이던 대모산의 조바심도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거리의 암자를 가슴으로 옮기는 데

속을 쓸어내리는 하룻밤이 걸렸습니다

금강경 한 페이지가 겨우 넘어갑니다.

 

 

 

 

 

대표시

저 산의 녹음

 

무슨 저런 짐승이 있을까

초록의 몸이 무거워

뒤뚱거리며 누운 저 여름짐승

숨 쉴 때마다 온 산이 들썩들썩하다

몸의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끈거리는 기운

삼천 여자를 데리고 놀고 있는가

씩씩거리며 숨을 헐떡이는

발작 광기를

절정으로 뿜어내는

저 사내

알몸인데도 자꾸 벗고 싶어서

사내는 검푸른 근육을 출렁거리고 있다

이상하다

뜨겁게 달아오른 천지 녹음

그런 광란의 현장을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

나 갑자기 수태할 것 같다

그 푸른 동굴 속에서

나 알몸으로 누워 산을 받아들이면

산 하나 품어 나오리

바다와 강이 하늘이 땅이 산이 모여

초록의 물결로 넘실거리다가

불끈 일어서는 저 거인

누가 엉덩이를 치받는지 다시 꿈틀한다

바람 불 때마다 푸른 불이 번져 나간다

 

 

 

 

 

신작시

국물 외 4편

 

 

메루치와 다시마와 무와 양파를 달인 국물로 국수를 만듭니다

바다의 쓰라린 소식과 들판의 뼈저린 대결이 서로 몸 섞으며

사람의 혀를 간질이는 맛을 내고 있습니다

 

바다는 흐르기만 해서 다리가 없고

들판은 뿌리로 버티다가 허리를 다치기도 하지만

피가 졸고 졸고 애가 잦아지고

서로 뒤틀거나 배배 꼬여 증오의 끝을 다 삭인 뒤에야

고요의 맛에 다가옵니다

 

내 남편이란 인간도 내가 만든 이 국수를 좋아하다가 죽었지요

바다가 되었다가 들판이 되었다가

들판이다가 바다이다가

다 속은 넓었지만 서로 포개지 못하고

포개지 못하는 절망으로 홀로 입술이 짓물러 눈 감았지요

 

상징적으로 메루치와 양파를 섞어 우려낸 국물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바다만큼 들판만큼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몸을 우리고 마음을 끓여서 겨우 섞어진 국물을 마주보고 마시는

그는 내 생의 국물이고 나는 그의 국물이었습니다

 

 

 

 

 

신작시

돌이 날아왔다

 

 

돌이 날아왔다

이 말은 어느 생의 요약된 한 줄

 

뒤통수가 부어있었다

이 말은 어느 생의 변함없는 형상

 

바람도 몸에 닿으면 돌이 되었다

뒤통수를 치는 세월의 주먹.

 

 

 

 

 

신작시

키스

 

 

경기도 파주시 문발리에서 내 집 수서동까지 시집 하나가 걸어 왔네

 

시집 든 집이 다 헤어져 절뚝거렸네

 

우표딱지며 너와집 같은 글씨체가 시집을 지키고 왔을까

 

가끔은 파주바람을 만나 소식도 듣고 자유대로나 행주대교에서

 

봄을 업고 놀기도 하면서 한강물에 시 암송 하나를 간드러지게 선물하고

 

올림픽도로에서 먼 발치의 도봉산을 기웃거리면서

 

그렇게 꼭 나에게 와야 한다고 그래야 한다고

 

문발리 시집 하나가 비 오시는 날 반쯤 너와집이 찢긴 채 내 집에 도착해서는

 

반갑게 웃는 내 얼굴에 맨 몸으로 안기면서

 

내 입술에 몸을 던졌네

 

시집 키스.

 

 

 

 

 

신작시

혼의 빛깔이 있다면

 

 

동이 트려는 그 직전쯤의 여백

산 나무들도 눈을 뜨기 직전의 그 한기 느껴지는 어둠의 빛깔

그 어스름 청색의 그 빛깔

무릎 꿇고 바라보고 싶은 그 혼의 빛깔과

함께 그 빛깔 속으로 들고 싶다

석달 열흘을 가도 그 자리인 듯 먼 곳인지 깊은 곳인지도 모를

이슥하고 영험한 그 새벽혼의 빛깔 속에서

눈 뜨는 듯 입 열려는 듯 미소 지으려는 듯 손을 들어 날 부르려는 듯

날 안으려는 듯 은근슬쩍 시 한 줄 알려주려는 듯 멈춘 듯 침묵하려는 듯

그 나비 날개 같은 엷은 청색의 새벽혼의 빛깔

묵 같은 빛 같은 거울 같은 갓물 들인 청색 종이 같은

새벽이 엷은 청색의 아물아물 깃발을 들고

성모님 발현인 듯

날 오라 하는지 날 가라 하는지

잠에서 깨어나라 하는지……

이 무한 황홀.

 

 

 

 

 

신작시

문인수 적막소리를 받다

 

적막소리를 배달받았다

 

진한 비릿내 등창

코를 막고 은근하게 소리 속으로 들어갔다

 

10페이지 20페이지로 들어가다가 두 어깨가 콱 눌렸다

적막소리는 쇠 파이프 속으로 오는가

대구에서 서울로 뚫어 온 파이프는 무겁지만 막힘 없이 무엇인가 수혈이된다

 

대구에서 서울이 아니라 날 서울에서 바닷가로 뻘로 조개 잡는 여자들 속곳 속으로

하관하는 산 중턱으로 공동 묘지 속으로 변산반도로 모량역으로 김천 직지사로 베틀소리 속으로 여기로 저기로 끌고간다

 

적막소리 한 번 베어 먹기 참 힘들다

온몸이 녹작지근하다

기진해서 누운 내 머리 위로 만금의 낭자한 문인수 발자국들이 크게 만져진다.

 

 

 

 

 

산문

시도 새처럼 가슴속을 떠나지 않아

 

사진을 정리했다. 내 사진을 보면 저 멀리, 위로 보는 사진이 많다. 사진을 찍으니까가 아니고 저 먼 세계에 대한 동경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현실 보다는 이상에다 무게를 두었다고 말해도 건방진 표현은 아닐 것이다.

뭘로 보나 현실적인 것은 아니었으니까. 오래 전의 일이지만 “버드워킹”이라는 “새보기”를 했던 적이 있다. 땅에 나는 식물도 나를 유혹했지만 허공을 날아다니고 그 작은 날개로 먼 먼 나라를 이어 나르는 생존이 놀라워 나는 새에 한때 빠져있었다. 조류도감을 들고 이름을 외우느라 고생을 사서 하면서 잠깐이기는 해도 작은 것들의 큰 세계에 참 감탄도 많이 하면서 가슴속에 새를 키우며 살았다.

시도 그런 새처럼 늘 가슴을 떠나지 않는다. 붙잡지도 매어 놓지도 않는 시가 떠나지 않아서 다시 시를 생각한다.

 

신달자∙1943년 경남 거창 출생. 1964년 ≪여상≫ 신인 여류문학상. 1972년 ≪현대문학≫에 박목월 추천으로 재등단. 시집 <봉헌문자>, <겨울축제>, <고향의 물>, <모순의 방>, <새를 보면서>, <시간과의 동행>, <아버지의 빛>, <어머니 그 삐뚤삐뚤한 글씨>, <오래 말하는 사이>, <열애>. 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 수필집 <다시 부는 바람>, <백치 애인>,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대한민국문학상, 시와시학상, 한국시인협회상, 현대불교문학상, 숙명문학상 , 영랑문학상 수상. 한국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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