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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여름호)신작시/이사라/훗날 훗사람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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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훗사람 외 1편
떠나온 골목에서
피는 목련을 두고 왔다는 먼 소리가 들린다
밤에는 얼고 낮에는 녹던 많은 기억들이
묵묵히 걸어 왔는데
이제 기억이 터트린 말들이
골목을 향해 간다
소리의 끝에 매달린
속말들이 문을 열고
그 끝에서
자신의 제단을 오른다
골목은 그곳에서 떠난 사람이
훗날 훗사람이 되어 오리라는 것을
기다렸던 것일까
제단 위에 벌써
바람이 불고 허공이 차려진다
목련이 지면
피는 목련을 두고 왔다는
그 소리도
제단 위에서
구름빛으로 사라지겠지
훗날 훗사람이 또 태어나길 기약하겠지
분홍 모자
집을 떠나 몇 해를 떠돌며 점점
긴 복도의 그림자가 되어가는 모자
오늘 분홍 모자가 살고 싶어한다
여기를 벗어나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긴 복도 밖의
사람들은 모른다
너무도 고요한 모자
중력도 속도감도 고도도 없는
솜털 같은 모자
흐르는 날들을 링거 속에 잠재우고
기록하는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숫자 같은 모자
어제는 하얀 모자가 살고 싶어했다
그제는 파랑 모자가 살고 싶어했다
날마다 모자가 꽃잎처럼 떨어지는 봄날을
두 손으로 받아내어
담장 밖으로 날리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 속으로
훨~훨~
이사라
1981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히브리인의 마을 앞에서>, <미학적 슬픔>, <숲속에서 묻는다>, <시간이 지나간 시간>, <가족박물관>. 대한민국문학상 수상.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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