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46호(여름호)신작시/김백겸/어느 날 낯선 순간 외 1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3,216회 작성일 13-01-10 19:29

본문

어느 날 낯선 순간 외 1편

 

 

더운 날 혀를 빼물고 소나무 그늘 아래 누워있는 진돗개는 제가 해석한 세계의 한가운데 죄수처럼 누워있다

갈비탕 집에서 점심을 먹은 주인이 오늘도 뼈를 챙겨다 주는 순간을 기대하면서,

 

야외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주문한 나는 감각의 세계를 부수고 인식의 세계를 부수고 상상의 세계마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순간을 추론하면서 진돗개 한 마리처럼 앉아있다

이 세계의 주인인 일자一者가 ‘아무것도 이름 할 수 없음’의 시공간에서 진실의 뼈 한 조각을

나에게 던져주는 순간을 기대하면서,

 

개의 배고픈 검은 눈과 내 목마른 검은 눈이 서로를 쳐다보는 낯선 순간

마음의 검은 하늘에 번개가 도끼 자국을 남기고 침묵의 벼락소리가 얼굴을 드러내는 낯선 순간

 

 

 

 

 

몽유병

 

 

연못가의 능수버들이 수사자의 갈기처럼 생명력으로 불탔습니다

공기는 수국꽃잎처럼 은백색으로 향기로웠습니다

구름 아래 바람의 입술이 흰 날개의 새들을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대낮에 감추어진 별들이 밝은 세상의 파수꾼처럼 떠 있었습니다

아스팔트길이 태양 아래 껍질을 벗은 뱀처럼 몸이 빛났습니다

이태리포플라는 사지를 거둔 거북이처럼 깊은 잠과 침묵에 잠겼습니다

 

플라타나스가 피운 연초록 불길로 여름이 환해졌습니디

코스모스가 피운 연분홍 안개로 길들이 환해졌습니다

구름을 태운 아침노을로 하늘이 환해졌습니다

여름이 플라타나스를 붙들고 있는

길들이 코스모스를 붙들고 있는

하늘이 구름을 붙들고 있는

비눗방울처럼 가벼운

공기처럼 가벼운

기쁜 인생

 

당신이 검은 눈을 들어 나에게 말씀했습니다

너는 내 꿈의 벽옥碧玉같은 집에 살면서 내 이름도 모르는구나

나는 봄에 개구리들이 얼음 아래서 깨어나게 하였으며

가을에 기러기들이 찬 구름 위로 날아가게 하였느니라

나는 생명의 불꽃들이 피어오르는 대낮의 태양이며

나는 생명의 연기들이 빠져나가는 밤의 굴뚝이자 검은 달이다

 

개망초가 나를 지나 피어나는 꿈 세상의 벌판이고자 합니다

기러기가 나를 지나 날아가는 꿈 세상의 구름이고자 합니다

소나무가 나를 지나 강 건너 숲으로 가는 꿈 세상의 징검다리이고자 합니다

나는 몽유병환자처럼 문명사회에서 국제공항의 기둥이 되거나

다리의 철교가 되는 쇠파이프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언어와 기억의 철창 사이를 빠져나가는 깨달음과 같이

문명의 이해관계와 제도를 빠져나가는 유령과 같이

나는 삼족오三足烏처럼 태양의 밝은 눈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김백겸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비를 주제로 한 서정별곡>, <가슴에 앉힌 山 하나>, <북소리>, <비밀방>, <비밀정원>. 시론집 <시적 환상과 표현의 불꽃에 갇힌 시와 시인들>, <시를 읽는 천개의 스펙트럼>. 계간 ≪시와표현≫ 주간, 웹진 ≪시인광장≫ 주간.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