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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여름호)신작시/조연호/소훼燒燬의 잠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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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훼燒燬의 잠 외 1편
낮게 쌓은 꿈을 들추고
쌓은 날엔 긴 한 쌍의 발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세미로 밀어 타일러달라고 친자식처럼 부탁하고도
더 많은 자릿수의 음력을 잡계雜界에 쌓는 나날
그것을 정돈이라고 부르는 건 흑암이 무당벌레 위에 놓여 있으니까요
그리운 사람은 새로운 사상을 익혔기에 화단의 페츄니아에 더 많은 가혹을 선물했다
―영영 닫히지 않는 꽃부리의 밤이여 너희는 정말 알 수 없는 여인이구려
당신은 왼쪽으로부터 쓰이고 오른쪽으로부터 주장되는 글의 죄악을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기울이시는구려
촛불을 들고 그림자와 기수旗手싸움을 한다
아버지여 너의 자위 숫자는 정확히 확인하고 있으니까
뒤척이는 강물 소리 달의 귀에 무심하여라
구변口辯에 의지하는 자가 색동 누더기 옷을 입고 개력改曆할 때
나 역시 몇 마리의 이와 함께 살을 길게 펼쳐 나눴다
미채迷彩를 잃은 다음날의 처녀로 병탄倂呑치 않기를 바라며
교활히 칫솔질을 하고 십 층 아래 낮아지고 싶다 안 될 것이 되고 싶은 아침들이여
수증기는 핥을 때마다 검고, 일가족의 행복처럼
한두 송이 내리는 허공의 기관장치는 희고 사소하게
어느 즐거운 저녁에 투구를 빌려 쓰고 쇠를 치리
표본가족
사소한 것을 코에 달고
오랜만에 조금 덜 가난한 엄마를 만난다
조금 덜 가난한 이파리 뒤
예배와 예배 사이 고철을 주웠다
숙제를 못하는 자식을 벌할 권위를 얻기 위해
고철의 무법함이 썩 빛난다
뒤늦게 나팔꽃이 된 엄마는 곤충침에 꽂히고 나서
그 땅에 피난소를 지었으니 날개를 떼어달라고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나는 당신과 새벽까지 고아가 되어 얘기 나눴으니까
자신이 한 행동의 모든 주인을 잃을 나이에
줄곧 내게 흔들던 거머리 숲을 내려놓고 엄마는
조금 덜 거덜났다
조금 덜 거덜난 봄―여름 이웃
그이가 길 틔우는 일은 명사십리 소금밭에도 이르지 못하네
벌레 모자母子는 빛과 소금에 대해 조금 얘기하고
내 은혜가 자녀의 평탄을 지휘하는 자의 것이게 하소서
지옥에 안 가는 노래를 불렀다
조연호∙199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농경시>, <천문>, <저녁의 기원>, <죽음에 이르는 계절>. 산문집 <행복한 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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