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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봄호)미니서사/김혜정/헴스터를 맡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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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4,119회 작성일 12-11-0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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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헴스터를 맡기러

 

 

오늘도 햄스터를 맡길 사람을 찾지 못했다. 구둣방 털보 할아버지는 ‘나 먹고 살기도 바쁘다.’며 고개를 저었다. 사철 반팔 티셔츠만 입는 만화방 아저씨는 ‘동물은 싫다.’고 딱 잘랐다. 뚱뚱이 분식집 아줌마는 ‘쥐새끼는 질색이야.’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가슴이 큰 꽃집 누나는 ‘털 알레르기 있어.’하면서 울상을 지었고, 중국집 배달부 노랑머리 형은 ‘에이, 귀찮아.’라며 침을 뱉었다.

하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 우리 선생님! 선생님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착한 사람이다. 우리에게 늘 착한 어린이가 되라고 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옆집 순주네 연탄창고에 햄스터를 감춰 두었다. 똘망똘망한 눈과 분홍색 코는 언제 봐도 귀엽다. 낮 동안 잠을 잔 햄스터는 밤이 되면 바쁘게 움직였다. 내가 놓아준 터널을 뚫고 사다리를 기어올랐다. 이렇게 귀여운 햄스터를 사람들은 왜 싫어할까.

엄마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엄마는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아기를 목욕시킨 후 아기 옆에서 잠들 것이다. 아기 때문에 나는 우리 집에서 찬밥이 되었다. 찬밥은 늘 냉장고에 한구석에 있다가 곰팡이가 피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나도 곧 그렇게 버려질 게 뻔하다. 그러기 전에 나는 죽어버릴 것이다. 햄스터를 맡길 수만 있다면.

‘선생님, 저는 곧 죽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죽으면 햄스터를 키울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꼭 키워주세요.’

나는 어젯밤에 쓴 유서를 들고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책상 위에는 책 말고도 서류 뭉치가 잔뜩 쌓여 있었다. 나는 유서를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홍성빈, 무슨 일 있니?”

“햄스터 때문예요.”

“난 또 뭐라고. 지금은 좀 바쁘니까 나중에 얘기하자.”

“선생님, 햄스터를…….”

“종 쳤으니까 빨리 교실로 들어가.”

선생님은 오늘도 바쁘다. 어제도 바빴고 내일도 바쁠 것이다. 책상 위에 쌓인 서류 뭉치가 다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바빠서 햄스터를 키울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언제쯤 죽을 수 있을까.

나는 교실로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나와 담벼락에 기대어 쪼그리고 앉았다. 유서는 아직 손에 있다. 화단에 핀 민들레가 말을 걸어왔다.

“넌 아무한테도 햄스터를 맡길 수 없을 거야.”

“그럼 나는 죽을 수가 없는데.”

산들, 바람이 불어오자 민들레가 꽃몸을 흔들었다. 팔랑팔랑 날아온 민들레 홀씨가 코를 간질였다. 보드라운 햇살이 이마에 내려앉았다. 스멀스멀 잠이 몰려왔다. 햄스터를 맡기러 가야 하는데…….

 

 

김혜정∙여수 출생. 199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장편소설 >달의 문>으로 서라벌문학상 신인상 수상. 소설집 >복어가 배를 부풀리는 까닭은>, >바람의 집>, >수상한 이웃>. 장편소설 >독립명랑소녀>로 ‘2010 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청소년 저작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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