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45호(봄호)독자시감상/윤은숙|봄을 찾는 고요한 수런거림-곽재구의 「아침」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3,509회 작성일 12-11-02 16:02

본문

45호(봄호)독자시감상/윤은숙|봄을 찾는 고요한 수런거림-곽재구의 「아침」

 

 

아침

곽재구

1.

고구마 시렁에 고구마들이 추워 서로 팔 껴안는 소리 들릴까 제일 아래층에 눌린 약한 고구마들 창밑 겨울햇살 쪼일 수 있게 힘센 고구마들 길 비켜주는 소리 후둑후둑 햇살의 칼과 맞부딪치며 마음 속의 죄도 풀려 봄바람 이는 소리.

2.

녹슨 못 일렬 종대 대롱대롱 햇살 속에 그네 타는 청국장 메주 밤새 물든 곰팡 서로 부벼주고 털어주며 왁자지껄 쉿 너무 소리가 커

조용히 마음 속의 소리 더욱 조용히 흰수염 입술 위 손가락 세우는 노인 메주 그리고 제일 늙은 메주와 제일 어린 메주부터 다시 순서대로 햇살 속에 그네타기 툭툭 겨울공기 차올리며 추운 햇살 속 푸른 봄바람 찾기.

춥다. 대학 졸업을 앞둔 나는 온몸을 바닥에 붙인 채 올 겨울을 지냈다. 겨울의 추위는 연일 영하를 찍어대면서 내 몸까지 밑으로 눌러대었고, 나는 동면중인 짐승처럼 한껏 웅크리기 일쑤였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을 도리가 없을 때엔, 내복이며 목도리, 장갑으로 친친 몸을 동여매고서야 겨우 바깥 공기를 마주할 만하다. 딱딱하게 언 길을 걸으며,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길을 걷는 내 몸은 이내 힘이 잔뜩 들어가고, 발걸음이 빨라진다. 추위를 가능한 빨리 통과해 가 버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번화가 쪽으로는 죄인처럼 웅크린 노숙인들이 보인다. 찬바람이 옷을 뚫고 어떻게든 몸 안으로 들어와 버리듯 그들은 어떻게든 눈에 들어온다. 겨울은 그런 계절이다.

아르바이트 후에는 주로 도서관에서 잉여의 시간을 보내는데, 나는 가장 먼저 시집을 가방에서 꺼낸다. 치열하게 토익 공부하는 이들 옆에서 좀, 눈치가 보이지만, 밀린 빨래처럼 쌓여있는 마음의 짐들을 정리할 힘이 필요하다. 미적 인식에서 오는 희열의 힘이 문학을 비롯한 예술의 경험에서 우러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날씨 때문인지, 나는 수능공부를 하던 때 만났던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가 생각나던 터였다.

오지 않는 막차, 밤새 내린 송이 눈, 오래 앓은 감기, 쓴 약 같은 입술담배 등이 그리고 있던 이미지는, 사춘기를 지나고 있던 내게, 사람들 사는 생의 서늘함이 뭔지를 보여줬었다. 아니, 그 서늘함이 내 몸에 아예 깃들어 버린 것 같다. 그래서 몇 장 안 남은 잎을 달고 있는 단풍나무를 볼 때나, 기침을 쿨럭이는 노인을 볼 때, 남루한 인생들을 바라볼 때, 그리고 나의 무기력을 발견할 때, 나는 가보지도 않은 사평역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럴 때 마다 날카롭게 체감되는 날씨가 살을 뚫고 마음에까지 파고들어와 깊은 흔적을 내었던 것 같다. 서글픈 문장들이 마음에 흔적을 내듯이. 이것을 단순히 소녀적인 감수성이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오래된 곽재구 시인의 첫 시집을 들추다가, 「아침」이라는 시가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사평역에서」의 남루하고 슬픈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였을까. 「아침」은 산뜻하고 아기자기해서 신기하게 느껴진다. 신선한 동시에 시인의 따뜻하고 바르고, 연민에 찬 시선도 여전히 공존한다. 「아침」은 1982년에 발표된 시이므로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되었고, 내게 있는 그의 책은 세월에 노랗게, 오랫동안 병을 앓은 것처럼 바래버렸다. 그럼에도 그의 감각은 신선한 이야기를 새롭게, 빛처럼 선사해 주고 있었다.

고구마도 사랑을 할까. 「아침」의 1을 보면, 시렁 위의 고구마들이 추워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단지 껴안고 있는 모습 뿐 아니라, 그 껴안은 소리까지 상상해본다. 덜그렁거리는 고구마들이 헤헤거리면서 시렁 위에 쌓여 있다가, 밤이 되자 춥다고 서로 보이지 않는 팔들 내밀어 함께 보듬고서 아침을 맞았을 것이다.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포근하고 따뜻할 것 같다. 고요하고 추운 밤을 토방이나 창고 방 한 켠에서, 고구마들은 살과 살을 맞대었기에 그렇게 따뜻하게 날 수 있었는가 보다. 고구마들이 쌓여있는 풍경의 고요함은 이러한 이야기 때문에 오히려 역동적이며, 전설처럼 신비롭게 다가온다. 얼마 전 뉴스에서 본, 생후 2개월 된 강아지가 설산에서 정신을 잃은 치매노인과 몸을 맞대고서, 노인의 체온을 지켜내 살렸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시인의 시선은, 시렁의 ‘제일 아래층’으로 향한다. 그 곳에는 ‘약한’고구마가 눌려있다. 자그마한 것들이 큰 것들 밑으로 깔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당연하다. 그러한 고구마 쌓인 시렁의 그림이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고 말하면 지나친 상상일까. 약하고 작은 자들은 밑으로만 깔리고, 커다랗고 힘 좋은 자들은 위에서 밑을 누르면서 도드라지는 모습. 그것은 우리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 고맙게도 이 시에서는, 약한 고구마들이 ‘겨울햇살’ 쪼일 수 있게 ‘힘센 고구마’들이 길을 비켜준다고 했다. 이는 매우 헌신적인 그림이다. 사실 아침에 배고픈 누군가의 식사거리로 맨 위의 고구마가 큰 것부터 밖으로 나가는 모양을 시적으로 가지고 온 것일 텐데, 그것이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고구마들은 이제, 아침을 맞으면서 햇살을 골고루 쪼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칼’이 등장한다. 겨울임에도, 햇살은 햇살이기에 따뜻하고 좋은 것인데, 이 시에서 그 햇살은 ‘칼’이라는 은유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햇살의 칼’로 자를 게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마음속의 죄’를 잘라낸다. 햇살로 인해 날씨만 풀리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풀려, 어떤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나 보다. ‘햇살의 칼’은 위협과 짓누름의 칼이 아닌, 용납과 자유의 칼인 셈이다. 이렇게 날씨와 마음이 풀리고, 결국 봄이 오고 있단 것을 시인은 알아챈다. 봄의 도래는, 약한 자들이 빛을 보게 되고,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그 때 이다.

2에서 묘사되는 이미지는 모아놓은 메주들의 왁자한 모습이다. 고구마를 쌓아둔 시렁 옆에 메주들이 줄맞춰 걸려있는 시골의 풍경이 정겹다. 새끼줄에 엮이고 벽 위 녹슨 못에 걸린 메주들은 할 말이 많아 보인다. 흰 수염이 난 ‘노인 메주’가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는 장면이 동화처럼 천진하다. ‘밤새 물든 곰팡’을 서로 부벼주고 털어주는 메주들의 모습이 1의 고구마들과 마찬가지로 서로에게 헌신적인 모습이다. 메주의 몸에 물든 곰팡이는 아마도 각자의 불거진 허물들이 아닐까.

메주에 대해서도 시인의 연약한 이들에 대한 주목이 드러난다. 햇살 속에서 그네를 타는 것에는 ‘순서’가 있는데, 바로 연약한 이들 부터다. ‘제일 늙은 메주’와 ‘제일어린 메주’는 분명 약한 존재들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가장 늙고, 가장 어린 메주들이 먼저 햇살을 누리는 모습에는 따뜻함과 아름다움이 있다. 그 아름다움은 바로 약한 자들을 위해주는 정의로움에서 나오는 것이다.

메주들은 각자 고유의 인격을 부여받는 것을 넘어, 심지어 ‘겨울공기’를 차올리는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바람에 흔들리는 메주들은 그 겨울의 공기에 압도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옹기종기 줄지어 모여서 차가운 공기를 걷어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추운 햇살 속 푸른 봄바람’을 찾고 있다. 그것도 ‘그네’ 타듯 자유롭게 놀이를 하면서 말이다. 내려오는 햇살을 즐기면서 말이다.

매년 일기예보에서는 올 겨울이 예년보다 더 따뜻하단다. 겨울이 따뜻해지는 게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닌데도, 추우니 자연 싫은 소리가 나온다. 어릴 적엔 지구가 더 빨리 따뜻해져서 아예 추위가 없는 세상이 왔으면 싶었다. 이 시 안에서 미물들의 수런거림에 동참해 있다 보면, 겨울은 견딜 만 한 계절이 된다. 그들과 함께 한다면, 봄이 오는 소리를 실제로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추운 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그마한 것들을 눈여겨 볼 일이다. 그들 틈으로 봄이 올 테니까 말이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노숙인 식사제공 단체와 협력하는 봉사활동 프로그램이 있다. 사실 밥 퍼주며 ‘교회 다니세요’라 말하는, ‘불신지옥’을 외치는 폭력적 느낌과도 다르지 않은 그 이미지가 싫어서 프로그램 참여를 은근히 거부하고 있다. 참여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마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최근에는 너무 추워 자원봉사자의 발길도 잦아들고 있다 했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얘기해보고자 함이 아니다. 내 내면의 일들을 말하고 있다. 날씨가 저절로 풀리기를 마냥 기다리는 게 아닌, 약한 것들에 시선을 두는 편을 택하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사는 것보다, 타성을 떨치고 나가서 희망의 편에 서는 단 하나의 작은 일을 해보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곽재구 시인의 첫 시집 <사평역에서>를 읽어서일까. 그가 그리는 풍경들은 시렸지만, 읽는 마음은 따뜻해진다. 시인이 목격한 「아침」처럼, 봄이 조만간 역동할 것 같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