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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여름호)특집/아랍 젊은 여성 3인의 소설/마리암 알 사에디|노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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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3,523회 작성일 12-11-0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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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여름호)특집/아랍 젊은 여성 3인의 소설

 

마리암 알 사에디

 

노인네

 

 

자식들과 다른 사람들 모두 다 그녀를 ‘노인네’라고 부른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늙은 여자였다. 그녀의 옷에서는 물건들을 넣어놓는 낡은 트렁크의 녹슨 냄새와 그녀가 치는 양 냄새가 난다. 그녀는 왜 ‘경우에 맞게 옷을 입어야’ 한다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경우에 맞지 않게 옷을 입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실은 자신의 외모에 신경을 써본 적도 없다. 그녀는, 얼굴은 신체 중 수치스러운 부분이라고 믿기 때문에 남편에게 얼굴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채, 수도 없이 많은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그런 여인이었다. 이런 여인들은 남편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그저 ‘그 사람’이라고만 했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그녀는 단 한 순간도 자신이 아무개의 부인이고, 아무개의 어머니이며, 이러이러한 품종의 양을 키우는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멀리 떨어져 사는 베두인족 삶에 익숙했다. 사막, 모래, 그리고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에 대한 갈망. 어린 자식들은 천막에 있었고, 밤이 오기 전에 암양의 젖을 짜야했다. 불쏘시개 재로 범벅이 된 딱딱한 빵 한 조각이 열기와 고생이 끝이 없어 보이던 하루를 끝낸 후 먹는 가장 맛난 식사였다. 아니, 고생 같은 건 없다. 그래, 그저 하루였을 뿐이다. 끝이 없는 것도 없다. 그렇지, 그저 하루였을 뿐이지. 단지 그 하루하루가 그 날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 키우고 있는 암양이 딸이었고, 숫양이 아들이었다. 그 놈들 이름, 색깔, 모양도 다 알았다. 자기 배로 낳은 아들보다도 그 양들이 더 소중했다. 그 시절, 그녀는 ‘노인네’였고, 그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자식들조차도 사망증명서를 뗄 때에야 비로소 그녀에게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과의 관계는 다들 받아들이며 사는 그런 관계였다. 그녀가 치는 양과 남편이 치는 양 때문에 싸움이 잦았지만, 결국 그는 남자고 그녀는 여자였다. 매양 그런 관계였다.

어린 자식들이 자라자 그녀는 ‘노인네’로 통했다. ‘늙은 영감’은 오래 전에 죽었다. 그래서 자식들은 그녀에게 아들네로 오셔서 사시라고 애원을 했다. 아들들이 다 나이를 먹어 장성했으니 그 아들들을 친숙히 알며 지낸다는 것은 노인네로서는 버거운 일이었다.

장남은 군에서 고위급 장교였다. 둘째는 경찰에서 장남보다 더 높은 지위라고 했다. 셋째는 정부기관에서 촉망받는 관리이고, 넷째는 대학 교수라고 했다. 막둥이는 유학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딸들도 중요한 역할들을 하고 있었다. 노인네는 자기 천막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늙은 어머니를 방치해 두었다고 아들들을 나무랐고, 그래서 아들들은 자기 어머니 얘기가 나올 때마다 자존심이 상했다. 어떻게 해야 노인네와 관련된 비난과 자신들이 느끼는 수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어머니에게 오셔서 함께 살자고 졸랐다. 냉수가 있고, 냉방이 되는 방과 폭신한 침대, 궁핍하게 살아온 세월을 갚아줄 아들들과 그녀를 돌봐 줄 손주들이 있다고 설득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양을 보러 모시고 가겠다고 약속을 하고나서야 그녀가 간청을 받아들였다.

장남네 집은 방이 추웠다. 침대도 차갑고 집도 추웠다. 그녀는 자기에게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지냈다. 말을 걸 양들이 이제는 없기 때문이다. 손주들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지 못했다. 다들 학교에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하녀를 며느리인 줄로 착각하고 어떻게 아랍어를 못 알아듣는지 의아해했다.

너무 추워지자 다른 아들네로 옮기고 싶어 했다. 그리고 나선 또 다른 아들네, 또 다른 아들네로. 그리고는 딸네, 다른 딸네, 또 다른 딸네로. 자식들네를 다 돌다가 집들이 한결같이 너무 춥다는 것을 알고 자기 양들에게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런데 양들이 한 마리씩 다 죽어갔다. 이제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은커녕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한 번도 양을 보지 못했다. 그녀를 잠시 방문했던 다른 노인네가 양들이 다 죽었다고 말해 줬다. 당연히 그녀는 그 노인네 말을 믿지 않았고, 자기 양을 훔쳐간 것이 아니냐고 욕을 했다. 자기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천막과 소중한 양에게로 돌아가고 싶어서 그녀는 거리로 나왔다. 붉은 암양은 새끼가 나올 때가 얼마 안 남았었지. 암컷을 낳았는지 수컷을 낳았는지 알고 싶었다. 쌍둥이를 낳았을 수도 있을 테지. 붉은 놈일까, 까만 놈일까? 아니면 흰 놈을 낳았을까? 아니면 색깔이 섞여서 나왔을까? 그 녀석들을 봐야 했다. 어린 양들은 툭하면 위험에 빠질 수 있고 다 자란 놈들도 보살펴 줘야했다. 너무 오랫동안 그녀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양들에게로 돌아가고 싶어서 낡고 얇은 아바(아랍의 무슬림 여자들이 옷 위에 입는 소매가 없고 헐렁한 검은색 덧옷)를 입었다.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의 한 복판에서 딸네 이웃에 사는 사람이 그녀를 알아보고서는 딸네로 모시고 왔다.

“길 한 복판에 마치 바람에 불려가는 깃털처럼 서 계셨어요.”

이웃의 사내아이들이 서로 킬킬거렸다.

“빗자루를 탄 마귀할멈 같다. 무시무시하다.”

누덕누덕 기운 옷과 실밥이 다 드러난 낡은 아바를 보자 종교심이 강한 한 며느리가 말했다.

“신이시여, 용서하소서. 어머니 살이 다 보이겠어요. 수치심도 없는 노인네 같으니라고.”

다들 같은 생각을 했다.

“사람들한테 저희 망신을 주셨어요, 이 노인네, 신의 인도하심이 있으시길.”

노인네는 아들네 집 뒤켠에 있는 추운 방으로 돌아갔다. 며느리가 새 옷을 가져다 줬고, 아들은 새 신발을, 딸은 새 아바와 숄을, 다른 며느리가 향수와 새 베일을 가져다 줬다. 자식들은 뜨거운 음식을 갖다드리고, 침상을 깨끗이 닦고 방을 훈증소독하라고 하인들에게 일렀다. 마실 꿀을 가져다 줬고 전담해서 그녀를 돌볼 하녀도 하나 붙여서 잘 살펴보게 했다. 노인네는 새것들을 모두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누덕누덕 기운 옷과 닳아빠진 신을 가져와 바느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녹 냄새와 양 냄새, 늙은이 냄새, 오래된 천막 냄새가 진동하는 낡은 상자 안에 그녀가 입던 아바를 넣어 두었다.

사람들은 장성한 아들들이 노인네를 방치해 두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게, 노인네가 힘들게 구는 거였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아들들의 양심은 좀 편해졌다. 노인네는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방에만 박혀 있었다. 아들네가 먹는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를 위해 매번 똑같이 만든 음식 쟁반을 들고 하녀가 들어오는 것 외엔, 아무도 혼자 있는 그녀의 방을 찾지 않았다.

“노인네가 골치 덩어리야. 신께서 자식들에게 인내심을 주시길,”

하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노인네는 뭘 드시지?”

점심을 먹다 정신이 들어 아들은 이렇게 물었다.

“상자 안에 두고 드시는 요구르트와 빵이요.”

아들은 놀라서 머리를 흔들더니 점심을 먹었다. 그의 아내는 조용히 읊조리면서 자신이 늙었을 때 자식들을 힘들게 하고 사람들 앞에서 자식 망신을 주는 까탈스러운 노인네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하녀는 노인네와 같은 방에서 자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노인네가 종일 중얼거리기 때문이었다. 잠이 든 후에도 온갖 얘기를 한단다. 양을 부르기도 하고, 남편과 싸우고, 어린 자식들에게 어둡기 전에 천막 안으로 들어오라고 소리도 지른단다.

노인네가 죽었다. 노인네의 죽음을 위한 준비는 이미 다 해 놨었다. 애도식을 위해 큼지막한 천막이 쳐졌다. 많이들 참석했다. 다들 고위직에 있는 자식들의 친구, 이웃, 직장 동료, 손녀딸들의 이웃 여자들과 친구, 그리고 여자 친구들, 마침내 학교에서 돌아온 손자의 친구들. 유학 갔던 아들마저도 형들과 같이 조문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돌아왔다.

“막내가 어머니 장례에 참석하러 돌아오지 않았다면 낯을 들고 사람들을 볼 수 없었을 거야.”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모두들 낯을 들고 사람들을 대할 수 있었고 모든 예식에 맞춰서 노인네는 땅속에 안치되었다.

 

마리암 알 사에디∙아랍에미리이트 소설가. 1974년 알 아인에서 태어났다. 아랍에미리트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아메리카대학교에서 도시계획도 공부하였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아베르딘대학에서도 공부하였다. 현재 아부다비 교통부에 근무하면서 창작을 하고 있다. 두 권의 단편집을 낸 바 있으며 많은 단편들이 영어와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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