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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여름호)특집/아랍 젊은 여성 3인의 소설/후자마 하바이에브|내 인생 최고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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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여름호)특집/아랍 젊은 여성 3인의 소설
후자마 하바이에브|
내 인생 최고의 밤
쇼카트 씨는(이야기의 노골적인 성격상 은밀함이 필요로 한) 재밌는 이야기를 하다가 멈췄다. 그가 몸을 뒤로 빼고 물러앉자 머리들이 한 곳에 모여들어 원이 만들어졌던 곳에 틈이 생겼다. 그가 말을 멈추자 커피숍에 모인 노인들의 궁금증도 약간 사그라지는 듯했지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고 싶은 애간장이 타는 그들의 강렬한 욕망은 여전했다.*
파라즈 씨는 긴장한 듯 담배 한 모금을 쭉 빨아 당기더니 신발 뒤꿈치로 담뱃불을 밟아서 껐다. 리야드 씨는 초조한 듯 테이블에 대고 두드리던 그의 손가락을 점점 더 세게 움직였다. 하페즈 씨는 한 손으로는 테이블 밑의 불알을 긁적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무렇게나 자라난 콧수염을 긁어댔다. 샤디 씨는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커피숍 보이가 주문한 것들을 담은 쟁반을 가지고 테이블로 다가왔으므로 둘러앉은 노인들은 머릿속에 가득 찬 외설스런 생각들을 마지못해 떨쳐내야 했지만 소년이 빨리 떠나고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바랐다. 소년은 침착하고 천천히 쟁반에서 잔들을 옮겼다.
“하피즈 씨, 설탕을 적당히 넣은 커피가 언제나 그렇지만 특히 오늘은 더 맛있을 겁니다. 호두와 아몬드를 넣은 최고의 계피차는 하즈 씨에게 최고구요. 그리고 이건 리야드 씨가 주문하신 겁니다.”
부풀어 오른 욕망과는 달리 인내심이 바닥난 리야드 씨는 찻잔들을 직접 집어서 자신과 샤디 씨, 쇼카트 씨에게 돌리며 짓궂게 웃고 있던 소녀에게 어서 꺼지라고 했다.
쇼카트 씨는 소리를 내며 차를 홀짝거리다가 커피숍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또 다시 봄이 오네’라는 노래의 리듬에 맞추어 몸을 흔들었다. 노인들은 애원하듯이 그를 바라보며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영리한 이야기꾼이 그러하듯이 그는 청취자들의 소망에 부합하여 이제 그들이 기다리는 마지막 장면을 밝힐 때가 왔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커피숍의 노인들은 오로지 한 가지만을 알고 싶었다.
“쇼카트, 그 다음에 어떻게 됐어?”
*
사실 쇼카트 씨는 노인들이 모이는 그 낡은 커피숍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라스미 씨의 위에 암이 퍼지기 시작한 후로 60대, 70대 노인들의 대화는 오로지 평생지기의 건강에 집중됐다. 세 차례의 수술로 위와 내장 일부를 절제한 그는 유아에게 어울리는 음식만을 먹을 수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야주즈의 채석장에서 힘깨나 쓰던 그는 수술 후 9개월 만에 무려 몸무게가 40킬로그램 이상 빠졌다. 마침내 그가 죽고 나자 커피숍에서는 불안하고 퉁명스런 대화만 흘렀다.
우울한 대화가 극에 달하면 관절염을 앓고 있던 파라즈 씨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면 고혈압이 있던 샤디 씨가 즉시 그 뒤를 따라 떠났다. 리야드 씨는 최근에 눈에 백내장이 생겨서 더 이상 백가몬 주사위 놀이의 숫자를 구별할 수 없게 됐다고 다시 한 번 말했다. 하페즈 씨 또한 배은망덕한 자식들을 욕하면서 자리를 떴다. 이전에도 6백 번이나 넘게 다짐했던 것처럼 그는 복수를 하기 위해서 땅과 집을 팔아서 자식들의 눈앞에서 그 돈을 불사라 버리겠다고 했다. 지난 이 년간 홀아비 신세였던 그가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서 마흔 살의 친척인 타마디르와 결혼하겠다고 밝히자 자식들이 야단법석을 벌였다고 한다.
“제 정신이세요?”
“그 나이에 재혼이라니요?”
“누구요? 20살이나 어린 타마디르요!?”
쇼카트 씨와 가장 친했던 그는 자식들의 반대가 그의 재혼으로 인해 땅과 집을 두고 유산을 나눠야 할 몫이 줄어들게 될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다들 떠나고 나면 쇼카트 씨는 커피숍에 홀로 남아 있곤 했다. 그래서 그는 차라리 집에 혼자 있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랬다. 고독, 우울, 권태, 은둔을 느끼면서 집에 홀로 있는 편이 친구들의 우울함이 공매에 붙여지듯 쏟아지는 버겁고 재미없는 커피숍의 저녁 시간보다 차라리 훨씬 나았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누가 더 불쌍하고 아프며 노쇠한지를 두고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듯했다.
쇼카트 씨는 알-루세이파 언덕에 있는 그의 집 작은 정원의 나무 벤치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석양이 지고 밤이 되자 크고 밝은 보름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몬드, 녹색 자두, 복숭아, 자두, 무화과, 오디, 구아바 나무들, 야생 재스민 관목, 그리고 라벤더 꽃들이 사방으로 빚어내는 오팔빛이 달빛으로 물든 나무들과 겹쳐지면서 초록빛, 자줏빛 빛깔들로 대기를 물들였다.
며칠 전 의사는 그에게 다행히도 신의 가호로 그의 몸이 시계태엽처럼 잘 작동하고 있다고 전하며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골동품 시계처럼 유리는 긁히고 희미하고 손목밴드는 낡았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시간에 맞게 잘 가니까 시계는 시계지요.”
의사는 자신의 말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쇼카트 선생님은 말처럼 튼튼하십니다.”
젊은 의사가 싸구려 소독약 냄새가 나는 젖은 손으로 그의 어깨를 두드리자 그는 자신이 허구한 날 인력이 바뀌고 전문 기술과 특수 장비가 턱없이 부족한 공립 병원에 와 있음을 깨달았다.
그날 저녁 이웃집들의 희미한 네온 불빛을 바라보며 앉아 있던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자신이 내뿜는 연기를 바라보았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는 노동자 계급 이웃들의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끝나고 연속 기획물에서 무시나 테우피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배경 음악으로 들리는 선명한 바이올린 소리는 매우 슬픈 분위기를 연출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뿐이니까요. 이제 일흔이십니다. 그 나이에 다른 사람들은 집에 앉아서 거동조차 하기 힘듭니다.”
그 말은 자신의 치아의 절반을 철로 씌운 의사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쇼카트 씨는 사실 건강이 좋지 않았다. 저녁에 커피숍에 모인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는 누가 더 병약한지 경쟁하는 일에 결코 참가하고 싶지 않았다. 또한 당뇨, 고혈압, 심장 질환을 앓고 있어서 침대에 늘 누워 있다시피 하는 그의 늙고 지친 부인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암만에 새로 생긴 외국 이름의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더 이상 알-루세이파 집에 살고 있지 않는 자식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출세에 눈먼 자식들은 가족들과 함께 깨끗하고 정돈된 수도의 서쪽으로 이사를 갔으므로 그들의 얼굴을 보거나 손자들과 놀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몇 달 만에 한 번이었다. 그럴 때면 그는 아이들을 무릎에 앉혀놓았다. 비록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아이들이 언제고 문을 두드리며 찾아올 경우를 대비해서 그의 주머니는 늘 캔디로 가득했다. 점점 잊혀 가는 그의 집에 온 가족이 모일 때면 쇼카트 부인은 손자들이 곳곳에서 벌이는 난장판을 히스테리컬한 목소리로 즐겁게 투덜댔고 며느리들이(쇼카트 씨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내뱉던 단어인) ‘공처가’ 남편들 앞에서 태연히 담배를 피우는 것을 너그러이 용서했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는 건강이 어떤지 등에 관한 안부 인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쇼카트 부부는 늘 건강에 관해서 하던 말들을 후렴처럼 반복했다. 대도시에 사는 아들들은 늘 미처 못 다한 일이 있는 것처럼 뭔가에 쫓기듯이 바빴다. 며느리들은 초조한 듯이 시계를 들여다봤고 신경질적으로 꼬고 앉은 다리를 흔들어대면서 이따금 아이들의 귀를 꼬집거나 뺨을 때려서 손자들이 맞는 것을 참지 못하는 쇼카트 부인을 화나게 만들었다.
여름밤은 잔인한 낮보다 견디기 쉬웠다. 쇼카트 부인은 일찍 잠이 들었고 이웃들은 텔레비전 앞에서 집단 무의식에 빠져 들었다. 거리의 고요함을 즐기던 쇼카트 씨의 얼굴과 목에는 재스민과 라벤더 향이 뒤섞인 시원한 산들바람이 위로를 전했다.
안으로 들어가려고 벤치에서 일어서던 그는 담이 쳐진 옆집의 바쌈 부인이 정원에서 닭 우리를 살피는 것을 발견했다. 달빛과 가로등이 함께 비친 그녀의 얼굴은 환했다. 그는 처음으로 쉰 살인 이웃 여자의 맨 얼굴을 보았다. 스카프를 두르지 않은 그녀의 흰 머리는 짧게 땋아져 있었다. 머리카락 뿌리는 오렌지색 헤너로 물들여져 있었다. 그녀가 잠옷을 입은 모습도 처음이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고정된 변함없는 모습으로 각인된 드문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웃들과 늘 싸움을 벌이고 택시 기사들과 저속한 언쟁을 벌이며, 먼 친척들과도 싸우고 이유가 있든 없든 간에 사람들에게 불쑥 찾아가며, 이웃 아이들이 자신의 정원으로 차 넣은 축구공을 압수해서 아이들의 간청과 울부짖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못된 행동을 응징하겠노라며 축구공을 칼로 찢어버리는 사람이 바로 바쌈 부인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짙은 파란색의 갈라비야 옷과 하늘색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그날 밤 유쾌하게 밝은 보름달 아래에 비록 점잖기는 했지만 하얀 면 잠옷만 입은 그녀는 쇼카트 씨가 알고 있던 이웃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녀는 그를 정면으로 보고 서 있었다. 담 뒤의 벤치에 앉아 있던 그는 그녀의 모습을 허리부터 위로만 볼 수 있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던 그녀의 얼굴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달빛과 가로등빛이 쏟아져 독특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했다. 그녀의 이름만 들으면 떠오르던 고정된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녀는 그를 전혀 볼 수 없었다. 만약 그랬더라면 어떻게 스카프도 두르지 않고 잠옷만 입고 그곳에 서 있을 수 있겠는가?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하루만 지나면’이라는 노래도 나지막이 부르고 있었다. 노래 가사가 떠오르지 않으면 다른 단어를 집어넣거나 리듬에 맞는 말을 개발하거나 다른 멜로디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어두운 나무 그림자에 몸을 숨기며 그는 담에 바짝 다가갔다. 그리고 담 어딘 가에 나 있던 어린 아이 머리 크기만 한 구멍을 찾았다. 담 옆에 붙어 앉은 그는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그러자 바쌈 부인의 모습이 완전히 다 보였다. 닭과 놀고 있던 그녀의 하얀 팔에 걸린 금팔찌에서 딸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정원의 화단에 떨어진 나뭇잎들과 덜 익은 과일을 쓸어냈다. 계속 노래를 흥얼거리던 그녀의 목소리는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박자를 맞추기보다는 만족감과 평온함을 위해서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그에게 등을 지고 선 그녀는 민트 화단 끝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잠옷을 올리고 속옷을 내리며 오줌을 누는 자세를 취했다. 깜짝 놀란 그는 하마터면 소리를 내뱉어 그의 존재를 알릴 뻔했다. 담에 난 구멍에 그는 머리를 더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는 놀란 눈으로 살이 쪄서 크고 넓으며 매우 둥근 그녀의 궁둥이를 보았다. 양 볼기짝에 붙은 살이 자유롭고 가볍게 이리저리 마구 움직이는 듯했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궁둥이는 매우 하얬다. 쪼그리고 앉은 그녀의 엉덩이는 살찐 허벅지에 걸쳐져 있어서 더욱 제멋대로였고 탐스러웠다.
그때 그녀는 민트 화단에 오줌을 누었다. 길고 오랫동안 젖은 흙에 쏟아지는 오줌 소리는 아주 가까이서 지켜보는 그의 귀를 찢는 듯했다. 그녀는 혼자임을 확신했고 아주 편안한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마주치는 바쌈 부인의 모습이 결코 아니었다. 그날 밤 달빛 아래 바쌈 부인은…… 그랬다, 바로 여자였다! 쇼카트 씨가 그날 밤 본 것은 여인의 궁둥이였다! 여자의 엉덩이를 상상해보라!
그는 자신의 두 손으로 둥그스름한 모양을 만들어 손바닥을 움직이면서 크고 무겁고 꽉 찬 느낌의 엉덩이를 재현해 보였다. 그의 말을 듣느라고 머리를 맞댄 노인들은 거친 숨소리와 함께 몸을 뒤로 뺐다. 그들의 체온은 상승했다. 새로이 솟아난 정력으로 그들은 뭔가를 중얼거렸다. 파라즈 씨는 벌써 담배를 세 대나 피웠다. 리야드 씨는 분위기가 너무 뜨거우니 백가몬 주사위 놀이나 하자고 했다. 쇼카트 씨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고 했다. 세상에 어떻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렇게 앉아 있었단 말인가? 시계를 확인한 그들은 깜짝 놀랐다. 커피숍은 거의 텅텅 비었고 커피숍 보이는 빈 테이블의 의자들을 뒤집어서 올리고 있었다. 샤디 씨는 여자와 자본 지가 벌써 14년 하고도 칠 개월 째라고 크게 속삭였다. 하페즈 씨는 흥분한 나머지 테이블을 손으로 내려치면서 장담했다. “내일 당장 타마디르에게 청혼을 하겠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을 거야. 자식 놈들한테는 벽에다 머리나 찧으라고 해야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그의 얼굴에 시원한 밤공기가 흘렀다. 그의 뒤를 따르던 나머지 노인들은 그날 밤의 유쾌한 오락을 다시 한 번 복기했다. 키가 더 커지고 어깨가 더 넓어졌으며 잠시나마 달을 가려버릴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적어도 뒤에 남아 있던 쇼카트 씨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오래된 카세트 플레이어에 새 테이프를 넣고 난 다음 커피숍 보이가 비눗물로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커피숍 문에 공손하게 서 있던 쇼카트 씨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내일 만나주시겠어요?’라는 노래의 시작 부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후자마 하바이에브∙팔레스타인 작가로 쿠웨이트 생. 쿠웨이트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걸프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쿠웨이트에서 기자로 활동하였다. 걸프전 이후 요르단으로 이주하여 작가활동을 하고 있다. 1992년에 <반복되는 남자>라는 첫 단편집을 발간하였다. 그 이후 여러 권의 단편집을 낸 바 있으며 2011년에는 <왕비가 잠들기 전>이라는 장편소설을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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