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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겨울호)시깊이읽기/이은규/정지용 시인과 압천압천鴨川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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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308회 작성일 12-05-30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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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정지용 시인과 압천압천鴨川을 거닐다

 

압천鴨川

정지용

 

鴨川 十里ㅅ벌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날이 날마다 님 보내기

목이 자졌다…… 여울 물소리……

찬 모래알 쥐여 짜는 찬 사람의 마음,

쥐여 짜라. 바시여라. 시언치도 않어라.

역구풀 욱어진 보금자리

뜸북이 홀어멈 울음 울고,

제비 한쌍 떠ㅅ다,

비마지 춤을 추어.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시름.

鴨川 十里ㅅ벌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정지용 시인의 시 「鴨川」 전문이다. 이 작품은 1927년 6월 ≪학조≫ 2호에 「京都鴨川」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는데, 그는 당시 지면에 ‘1923. 7월 京都鴨川에서’라고 창작 시점을 표기해놓았다. 이후 1930년 3월 ≪시문학≫ 창간호에 재발표되는데 이는 잘 알려져 있듯 김영랑, 박용철과의 ‘시문학파’ 활동과 관련된다. 요컨대 발표와 재발표 당시의 제목은 「京都鴨川」이었고, 1935년 시문학사에서 출간된 <정지용시집>에는 「鴨川」으로 수록되었다는 것이다. 표기법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텍스트의 구성과 내용에는 변화가 없어 개작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또한 시의 전체적 줄거리는 그리 어렵지 않게 파악될 수 있는데, 간략하게 살펴보면 해가 저무는 압천에서 한 젊은 나그네가 날마다 님을 보내며 서러워한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정지용은 왜 「京都鴨川」의 제목을 「鴨川」으로 바꾸었을까.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 이 글은 ‘산문’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鴨川」 깊이 읽기를 시도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시인의 산문을 통한 시 읽기인데, 정지용 시인과 거니는 「鴨川」 이야기가 되겠다. 시 속으로 곧바로 가지 않고 산문으로 멀리 돌아서 가는 길이, 그가 즐겨했다는 긴 산보와 같은 시간이 되기를 기대하며.

1922년(21세) 휘문고보를 졸업한 정지용은 1923년(22세) 4월 일본 경도京都의 동지사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그는 4월에 유학 가서 7월에 시 「鴨川」을 창작한 것이다. 동지사 대학 캠퍼스 내 정지용 시비에 다름 아닌 이 시가 새겨져 있다.

먼저 제목에서 시의 중심적 공간으로 제시되고 있는 ‘鴨川’은 교토 시내를 흐르는 하천의 이름인 가모가와Kamogawa를 말한다. 길이가 약 31km로 강둑은 예나 지금이나 산책로로 주민 및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강의 깊이는 대부분 얕아서 1m도 안 되는 곳이 많지만, 장마철이 되면 물이 오솔길까지 넘치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鴨川’은 정지용의 일본 시기 창작과 관련하여 시적 산실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대학시절을 떠올리며 진행되고 있는 정지용의 산문 「鴨川 上流 (上)」를 함께 살펴 볼 때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산문 「鴨川 上流 (上)」의 서두를 살펴보자.

鴨川의 水源이 어딘지는 모르고 말었다. 애써 찾아가 본다든지 또는 문서를 참고한다든지 지리에 취미가 있는 사람이고 보면 마땅히 할 만한 일을 아니하고 여섯해를 지났다.

앞서 밝혔듯이 1923년(22세) 4월에 일본으로 유학 간 정지용은 7월에 시 「鴨川」을 창작했다. 위의 인용문은 “鴨川의 水源”을 찾지 못하고 “여섯해”가 “지났다”는 내용인데, 그렇다면 이 산문은 1929년(28세)때 썼다는 사실이 된다. 그는 1929년 3월 동지사 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9월에 그의 모교인 휘문고보 교사로 취임한다. 정리해보면 그는 산문 「鴨川 上流 (上)」를 졸업 직전 일본에서 썼거나, 귀국 후 회상의 형식으로 썼을 가능성이 높다. 흥미로운 것은 시 「鴨川」이 산문 「鴨川 上流 (上)」보다 몇 해나 앞서 창작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차에도 불구하고 동일하게 등장하는 이미지로 인해 시와 산문, 산문과 시의 인접성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자. 예컨대 산문 속의 “여름철이 되어야만 역구풀이 붉게 우거지고 밤으로 뜸부기도 울고”한다는 문장은 시 「鴨川」의 구절인 “역구풀 욱어진 고금자리/뜸북이 홀어멈 울음 울고”와 동일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역구풀”은 여뀌의 방언이다.

잠시 여담을 나누고 가자면, 시 「鴨川」을 읽은 여수麗水 박팔양이 정지용을 어색하게 만들었다는 산문의 한 대목에서 미소가 지어진다. 麗水가 정지용을 방문한 계절이 여름이 아니었던 모양인데, 장마철 이외의 기간에는 수심이 1m 미만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벌어진 에피소드일 것이다. 관련 대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여름철이 되어야만 역구풀이 붉게 우거지고 밤으로 뜸부기도 울고 하는 것을 한번은 그렇지 못한 때 지금 만주에 가 있는 麗水가 와보고, 그래 어디가 <역구풀 욱어진 보금자리/뜸북이 홀어멈 울음 우는 곳>이냐고 매우 시시하니 말을 하기에 변명하기에 좀 어색한 적도 있었으나 (…)

다시 돌아와 보면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정지용의 “노는 날이면 우리들의 산보터로 아주 호젓하고 좋은 곳이었다”는 산문 속 문장이다. 그는 자주 鴨川 주변을 산보하며 여러 풍경들을 마주했을 것이다. 나아가 다음 인용 구절들은 시 「鴨川」의 시적 주체인 “젊은 나그네의 시름”을 추측할 수 있도록 해준다.

거기서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 (…) 비예산 바루 밑에 널리어 있는 마을이 있는데 그 근처가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나 그때쯤만 해도 거기 하천공사가 벌어지고 비예산 케—불 카—가 놓이는 때라 조선노동자들이 굉장히 많이 쓰히었던 것이다.

이른 봄철부터 일철이 되고 보면 일판이 흥성스러워졌다. 석공일은 몇몇 중국사람들이 맡아 하고 그대신 日工값도 그 사람들은 훨석 비쌌고 坪뜨기 흙 져나르기 목도질 같은 일은 모두 조선토공들이 맡아 하였지만 삯전이 매우 헐하다는 것이다.

정지용은 일본 유학생 신분으로 그들은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들 앞에서 시인의 정체성은 “젊은 나그네”라는 시적주체와 닿아있다. 시의 표층적 층위에서 보면 그는 “날이 날마다 님 보내기”라는 행위로 인해 “시름”이 깊지만, 시인의 심층에는 유학생 신분으로 민족적 시름과 자의식 사이에 서성이는 발걸음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뒤에 이어지는 “목이 자졌다……/여울 물소리……”는 산문 속 “물이 말르고 보면 조약돌이 켜켜히 앙상하게 들어나 있어서 부실한 겨을해나 비치고 할 때는 여간 쓸쓸하지 않”은 날들의 기록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일하는 조선인 중에는 “상투를 그대로 달고온 사람들도 많았”고 “우리라야 알아듣는 왁살스런 사투리며 육자배기 산타령 아리랑 그러한 것들을 그대로 가지고”왔기 때문이다. 시의 첫 구절이자 마지막 구절인 “鴨川 十里ㅅ벌에/해는 저물어…… 저물어……”의 대기 속에 스며있는 것은, 정지용의 귀에만 들리던 그들의 목소리였을지 모른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면 정지용은 왜 「京都鴨川」을 「鴨川」으로 바꾸었을까.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지 몇 해가 지난 1935년의 시점을 생각해보자. 정지용의 마음속에서 「京都鴨川」은 경도라는 기표가 지워진 채 「鴨川」으로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산보는 여기서 마침.

 

이은규∙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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