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44호(겨울호)계간평/박찬일/망각, 물질, 멜랑콜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4,125회 작성일 12-05-30 20:42

본문

박찬일

망각, 물질, 멜랑콜리

 

 

∙강인한, 「폭포」(≪시와표현≫, 2011. 가을)

∙조하혜, 「떨림 0시 59초」(≪시와세계≫, 2011. 가을)

∙이승훈, 「취하라!」(≪시현실≫, 2011. 가을)

∙송명진, 「부엽腐葉(<착한 미소>, 2011. 9월)

∙허만하, 「물질은 이유를 초월한다」(≪시인수첩≫, 2011. 가을)

∙백인덕, 「사랑이 온다면」(≪리토피아≫, 2011. 가을)

∙우대식 「고아」(≪리토피아≫, 2011. 가을

 

 

가는실잠자리가 멸종되어도 인류가 완전 멸종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인류가 멸종되어도 가는실잠자리가 완전 멸종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대멸종’이 다시 닥친다 해도 인류 전부가 멸종되지는 않을 것이다. 인류들의 DNA에 차이가 있으니까 말이다. 인류들 간의 0.1% DNA 차이를 우습게 보지 말라는 것이다. 최승호의 다음 시를 ‘멸종’에 대한 알레고리로 보아도 무방하리라.

가는실잠자리, 노란실잠자리, 연분홍실잠자리, 큰청실잠자리, 왕실잠자리, 북방아시아실잠자리――――――이 잠자리들은 잘 끊어지지 않는 질긴 실처럼 몇 십년을 이어져왔다. 그것이 지금 거대한 오물덩어리인 나로 인해 끊어지는 중이다.

―「실잠자리」 전문, ≪현대문학≫, 2011. 10.

 

“가는실잠자리, 노란실잠자리, 연분홍실잠자리, 큰청실잠자리, 왕실잠자리, 북방아시아실잠자리”를 멸종시키는 것이 인류 중의 하나인 “나라고 밝힌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시는 인류중심주의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다시 말해보자. 가는실잠자리가 멸종되어도 인류가 완전 멸종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인류가 멸종되면 다른 ‘류’들은 의미가 없을 테니까. 인류가 있어야 다른 류들도 의미가 있을 테니까. 12개 이상의 종들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는-비록 소수라 할지라도-최악의 순간에도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지나간 모든 생명체에 역사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천제연에 갔다. MB 4년 3월 24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천제연

폭포는 간 데 없고 벼랑 아래 웅덩이만 푸르렀다

어떤 미친놈이 저 폭포를 바라바리 거두어 가져갔나,

후루룩 마셔버렸나.

폭포소리가 들린다

주야장천 열린 창문으로 폭포소리가 들린다

껍질을 벗기지 않은 털복숭이 폭포소리가

물 없는 천제연 폭포소리가, 강변북로

시속 백 킬로의 아스팔트에 밤낮으로 깔려있다.

―강인한, 「폭포」 전문, ≪시와표현≫, 2011. 가을.

 

“폭포”를 다 “마”시는 것보다 “폭포소리”를 “들”어주는 것이 쉽다, 그리고 쓸만하다. 그리고, 없는 폭포의 폭포소리를 들어주는 것이 더 쉽다, 그리고 더 쓸만하다. 청각적 이미지의 손을 들어준 것은 들뢰즈였다. 들뢰즈는 시각적 이미지(미각적 이미지가 아니라)보다 청각적 이미지가 ‘훨씬 더 잘’ 심층의식을 건드린다고 하였다. 그런데 칸트의 숭고미를 참조하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이구아수 폭포의 시각적 이미지가 이구아수 폭포의 청각적 이미지보다 효과면에서 더 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 강인한의 「폭포」가 의미 있는 것은 폭포가 끊긴 곳에서 폭포소리, 즉 청각적 이미지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의 균형’이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얼굴은 가물가물하지만 목소리는 그렇지 않다.’ 그 인류의 얼굴은 잊었지만 그 인류의 목소리가 기억나는 경우가 많다.

조하혜의 「떨림 0시 59초」도 청각적 이미지를 강조한 경우다.

 

목련이 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목련은 잎을 천천히 떨어내거나 벚꽃처럼 흩날리는 게

아니라 뭉텅뭉텅 온몸으로 저를 밀어내고 있었다

텅텅텅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목련이 온몸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떨림 0시 59초」 부분, ≪시와세계≫, 2011. 가을.

 

절창이다. 단순한 시각적 이미지 속에 엄청난 소리가 숨겨져 있다는 전언. “목련이 온몸으로/떨어지기 때문”에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 큰 소리, “온몸으로 소리를 비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죽는 소리는 너무 큰 소리이기 때문에 들리지 않는다.

망각의 중요성을 발설했던 자는 니체. 망각을 하나의 감각으로 올려놓은(?) 자는 이승훈. 망각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을까.

 

시인들은 쉴 새 없이 취해야 한다. 감각에 취하고, 황소 머리에 취하고, 비에 취하고, 오전에 내리는 눈에 취하고, 흐린 바람에 취하고, 괭이갈매기 칼새 애기풀 딱따구리 강아지풀 물총새에 취하고, 이미지에 취하고, 환상에 취하고, 병에 취해야 한다. 시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처량한 존재, 이런 측은지심 애이불상이 시를 낳는다. 물론 취생몽사도 좋지만 감각의 망각이 아니라 망각의 감각이 중요하다. 망각이 초월이고 도취가 각성이다. 취하라!

―이승훈, 「취하라!」 전문, ≪시현실≫, 2011. 가을.

 

이승훈의 시가 또 중요한 것은 ‘웅얼거림’ 때문이다. 웅얼거림의 시학을 온 몸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취해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해 놓고, 끝을 “취하라!”라고 끝내놓고선, 끝 바로 앞에서 “망각이 초월이고 도취가 각성이다”이라고 해놓고선(도취를 예찬해놓고선), 그 바로 앞에서는 “취생몽사도 좋지만 감각의 망각이 아니라 망각의 감각이 중요하다”고 했다. ‘감각의 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망각의 감각’이 중요하다고 한 것이다. 감각의 망각은 통사론적으로 볼 때 감각을 망각한다는 것이고(취했다는 것이고), 망각의 감각은 망각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다. 망각을 삶의 한 자세로 이해하는 것이다.

다음 시도 망각과 관계있다. 송명진 시인의 유고시집 <착한 미소>(2011. 9. 9.)에 실렸다. 서시이다.

 

섬유질 앙상한 상처만 남은 저더러 어찌 세월의 앙금을 지우라고만 하는지요 상처난 얼굴로 야위어 가는 저더러 왜 자꾸만 부서지라고만 하는지요 부서진 한쪽마저 버리고 조용히 떠나라고만 하는지요

그렇잖아도 혼자 바람 든 아픈 속을 다독이며

여기 나는 생전에 바람, 햇살에게 빌어먹다 비참하게 죽었다고

오늘, 단 한 번 정직한 묘비명을 썼는데

―송명진, 「부엽腐葉」 전문

 

“세월의 앙금을 지”우지 못하면, “부”수지 못하면 평생 ‘낙타 신세’로만 살아야 한다. “떠나”야 할 때 떠나지 못하면 평생 낙타 신세로만 살아야 한다. “나는 생전에 바람, 햇살에게 빌어먹다 비참하게 죽었다”는 묘비명을 미리 써두었다가 정말 비참하게 죽어주어야 ‘사자 신세’로 산 것이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어린이 신세’가 있다. 비참하게 죽는 것도 잊어주는 단계다. 과거를 잊어버리고, 미래를 잊어버리는 단계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망각 후에는 무엇이 남을까. 어린이 단계, ‘어린이 도사’까지 올라갔는데, 더 올라갈 데가 없는데. 이 질문에 허만하 시인이 답했다. 망각 후에 오는 것은 ‘물질’이라고 하였다.

 

물질은 흰 빙하처럼 직설적으로 순수한 것만이 아니다. 사막의 깊이가 저장하고 있는 검은 석유처럼 복합적으로 순수할 수도 있다. 물질은 이유를 초월한다. 일시에 쓰러진 초록색 양치류 숲과 매머드 무리의 마지막 은빛 울음소리가 범벅이 되어, 시간의 초원 안에서 석유가 되는 황홀한 물질의 변신을 보라.

- 허만하, 「물질은 이유를 초월한다」 부분, ≪시인수첩≫, 2011. 가을.

 

“물질”도 그냥 물질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순수”한 물질이라고 하였다. 물질은 순수하다, 그런데 순수에도 격이 있다는 것이다. 총체적 순수가 전통적 서정시의 가락이라면, 복합적 순수가 현대적 실험시의 가락이다. 현대적 실험시의 가락에는 “초록색 양치류 숲”이라는 식물계와 “매머드 무리”라는 동물계가 섞여 있다. 순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섞여야 오래 간다.’ 요즘 사회생물학계의 차분한 전언이다.

망각할 수 없는 것 중에 ‘소멸 사건’이 으뜸일 것이다. 자기 자신의 소멸의식이 으뜸일 것이다. 망각과 멜랑콜리는 대각선의 관계에 있다. 소멸의 멜랑콜리는 全자연사, 全인류사에 산재한다. 다시 강조하면, 멜랑콜리는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의 소멸과 관계있다.

 

초여름, 폭풍이 지나간 샛골목을 간다.

안팎을 잃어버린 문짝 하나, 누가 죽었는가?

사진은 없고 풀 자국만 선연한 앨범 한 장, 누가 죽었는가?

덧양말이 고스란히 끼어있는 운동화 한 짝, 누가 죽었는가?

알 없이 비틀려버린 갈색 안경테, 또 누가 죽었는가?

표지만 뜯긴 누런 시집 한 권,

누군가, 기어이 찬란한 죽음의 도열堵列에 뛰어든 그는?

―백인덕, 「사랑이 온다면」 부분, ≪리토피아≫, 2011. 가을.

 

백인덕의 내공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멜랑콜리가 존재자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것에 대한 알레고리다. 알레고리는 멜랑콜리다. 알레고리가 역사적 알레고리이기 때문이다. 일회성의 알레고리, 덧없는 알레고리이기 때문이다. “안팎을 잃어버린 문짝 하나”, “사진은 없고 풀 자국만 선연한 앨범 한 장”, “덧양말이 고스란히 끼어있는 운동화 한 짝”, “알 없이 비틀려버린 갈색 안경테”, “표지만 뜯긴 누런 시집 한 권”에서 웅대한 멜랑콜리, 웅대한 알레고리가 빛을 뿜어낸다. “누가 죽었는가?” 많이 죽었다. 많이많이 죽었다. “누군가, 기어이 찬란한 죽음의 도열堵列에 뛰어든 그는?” 아마도 화자의 소멸일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화자 자신의 소멸에 대한 알레고리, 그리고 멜랑콜리.

 

강원도 원성군 지정면 월송리

본적本籍

원주시 우산동 어느 점방

흔적痕迹

흰 빨래가 널린 원주 쌍다리 아래

출생出生

다리 아래서 주어왔다는

그 곳에는 쓸쓸한 내 부모가

말 안 듣는 어린 나를 아직 기다린다는

미국으로 이민 간 이모가 실실 웃으며 들려주던 이야기

겨울밤,

아라비아 사막 같은 꿈을 꾸던

그 때 사정을

대답해 줄 아무도 없는

이제는

외롭게 늙어가는

고아孤兒

―우대식 「고아」 전문, ≪리토피아≫, 2011. 가을.

 

고아 의식은 고향 상실 의식과 대체의 관계에 있다. 하이데거 용어를 빌려 말하면 존재자의 존재 상실 의식과 대체의 관계에 있다. 출구 없는 상황 의식과 대체의 관계에 있다. 우대식은 잃어버려도 많이 잃어 버렸다. “본적”을 잃어버렸고, 잠시 살았던 “원주시 우산동 어느 점방”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무엇 보다 “흰 빨래가 널린 원주 쌍다리 아래”의 “출생”지를 잃어버렸다.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던 “이모”는 “미국”으로 이민 가버렸다. “고아”라고 해도 살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정체성을 상실한 고아라고 해도 살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정체성 상실의식과 자아 소멸의식이 만나면 말이 달라진다. 자기 소멸의식이 멜랑콜리를 집행한다. “외롭게 늙어가”도록 내버려두지도 않는다.<?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

 

박찬일∙춘천 출생. 1993년 ≪현대시사상≫으로 데뷔. 시집 <화장실에서 욕하는 자들>, <나비를 보는 고통>,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모자나무>, <하느님과 함께 고릴라와 함께 삼손과 데릴라와 함께 나타샤와 함께>, 시론집 <해석은 발명이다>, <사랑, 혹은 에로티즘>, <근대: 이항대립체계의 실제>, <박찬일의 시간 있는 아침>, 연구서 <독일 대도시시 연구>, <시를 말하다>, <브레히트 시의 이해> 등. 박인환문학상, 젊은시인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추계예술대학교 교수.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