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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겨울호)서평/권경아/삶에 대한 두 가지 시선—박정규, 박선우 시집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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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178회 작성일 12-05-3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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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권경아

삶에 대한 두 가지 시선박정규, 박선우 시집 읽기

 

 

 

1. 고양이, 봄을 바라보다-박정규, <검은 땅을 꿈꾸다>

박정규는 <검은 땅을 꿈꾸다>에서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으로 포착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우주와 자연의 섭리에 순종하는 것이 진리”(<검은 땅을 꿈꾸다> 자서)라 말하고 있는 그가 바라보는 삶은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 그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인간들의 삶을 때로는 섬세하게 때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삶을 향한 섬세하고도 예민한 감각. 삶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고양이의 시선과 닮아있다.

 

야옹!

죽음의 금기에서 부는 살생부,

바람마저 옹벽에 마빡을 깨뜨리고

쓰러진 시간이 어스름 번진다.

여우비 속에서

사지가 튕겨진 도로 위의 주검,

똬리처럼 피어난 붉은 슬픔은

生의 껍질들. 

검은고양이 촉눈처럼 휘어진

논두렁에 굽은 늙은 농부의 달팽이관, 

노을의 타는 곡소리,

어린조카 생일 날 촛불 끄듯

후― 부는 미풍에도

난자되는 사지, 

아― 위태롭다. 야옹! 

生의 상처들.

―「고양이」 전문

 

도로 위에 고양이의 주검이 흩어져 있다. “바람마저 옹벽에 마빡을 깨뜨리고 쓰러진 시간이 어스름 번질”때 “사지가 튕겨진” 고양이의 주검을 보며 시인은 “똬리처럼 피어난 붉은 슬픔”이라 말하고 있다. “生의 껍질들”이라 말하고 있다. “어린조카의 생일 날 촛불 끄듯 후-부는 미풍에도 난자되는 사지”. 생은 이렇듯 여리고 여린 바람에도 쉽게 스러진다는 것. 도로 위에 난자된 고양이의 주검을 통해 시인은 인간의 삶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위태로운” “生의 상처들”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있는 시인의 시선은 날카롭고도 섬세한 고양이의 시선과 닮아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양이의 감각은 첫 시집 <탈춤추는 사람들>에서도 나타난다.

 

이웃 동수洞壽 노파 행랑채 토담 위

대파줄기 같은 긴 꼬리 하늘을 이고

나락 눈동자 고추 등처럼 번득이며 섰는

놈의 콧날 끝에 산등성 이웃 햇살이 걸려

텃밭 애기 시금치 입술 위로 떨어진다

섬뜩한 눈빛 조준이

깃털 세우며 발악하는 생쥐 목을 물고

토끼반도 위 탱자나무 가시덤불 안을 쏜다

콧수염 치켜세운 검은고양이 안경 너머

눈총 몰고 온 대문간 지킴이로

발가벗은 장두감나무 그림자가

툇마루 키만큼이나 길게 뻗어 진을 친다

반세기 한을 굽은 허리춤에 업은 노파의

돋보기 속에 아련히 돋아나는 보랏빛 진실이

휘청거리는 지팡이 발에 차여 돌부리에 걸린다

―「검은 고양이」 부분, <탈춤추는 사람들>

 

행랑채 토담 위에 “대파줄기 같은 긴 꼬리 하늘을 이고 나락 눈동자 고추 등처럼 번득이며” 검은고양이가 서있다. “놈의 콧날 끝에 산등성 이웃 햇살이 걸려”있다. “섬뜩한 눈빛 조준이 깃털 세우며 발악하는 생쥐 목을 물고 토끼반도 위 탱자나무 가시덤불 안을 쏘”는. 번득이는 눈빛, 섬뜩한 눈빛으로 생쥐를 노리는 검은고양이의 날카로운 시선. 그 곁을 “반세기 한을 굽은 허리춤에 업은 노파”가 지나가고 있다. 굽은 등으로 “휘청거리는 지팡이 발에 차여 돌부리에 걸리는” 그 노파. 시인은 이 노파를 보며 “돋보기 속에 아련히 돋아나는 보랏빛 진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검은고양이의 날카로운 시선과 휘청거리는 노파의 발걸음. 비록 검은고양이처럼 날렵하지는 않지만 노파에게서 돋아나는 보랏빛 진실. 시인은 검은고양이와 노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생의 한 순간을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다. 노파의 보랏빛 진실은 삶의 모든 기쁨과 슬픔을 지나온 생에 대한 시인의 믿음인 것이다. 시인은 고양이와 같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생의 한 순간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생의 진실, 곧 삶의 진실인 것이다.

 

일백을 열사흘 채우지 못하고 세상과 이별한

머리 위로 하얀 눈 수북히 쌓아

백발이 되셨다는 할머니가,

하늘땅 같은 밭에 동지섣달 혼을 심어

생을 마감하며 남긴 유품인 것이다.

 

동토의 바람이 들락거리던 브레지어 속에서

모세혈관의 싹이 움트며 감지된 설램으로

하늘의 먹구름이 계절의 울타리를 넘어

그 점령지를 떠난 자리에서 솟아나는 초유인 것이다.

 

투병하던 어머니 환부를 도려내어

속살이 돋아나듯, 고통과 슬픔의 긴긴 시간을

사랑으로 이겨낸 기다림이 안겨주는 해후인 것이다.

 

봄은,  

남녘 어느 무명시인의 치맛자락 속으로 오는

신생아의 첫 울음소리다.

―「봄」 전문

 

시인에게 생의 진실은 자연의 섭리와 맥이 닿아있다. 봄은 “세상과 이별한 머리 위로 하얀 눈 수북히 쌓아 백발이 되셨다는 할머니”의 유품이다. 봄은 “솟아나는 초유”이며 “고통과 긴긴 시간을 사랑으로 이겨낸 기다림이 안겨주는 해후”이다. 또한 봄은 “무명시인의 치맛자락 속으로 오는 신생아의 첫 울음소리”이다. 시인은 인간의 생에 떠오르는 아련한 진리의 모습을 봄의 이미지로 담아내며 자연과 중첩시키고 있다. 삶의 모든 것이 곧 자연의 섭리와 다르지 않고 이것이 곧 진리라는 시인의 시정신이 잘 드러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대의 짧은 생을 갈무리한다는 것은

또 다른 누군가의 생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단란한 생을 푸르게 피워 올렸을

세평의 공간에는

노숙 고양이 발자국을 따라

그대의 흔적들이 피어오른다.

 

기적소리 요란하게 흔들리던 그 날,

숨 막히게 눈물이 저려오던 그 날,

생의 이정표에 쓰러지던 그 날,

 

어둠은 호흡을 멎게 하고

바람은 밤새 새소리를 몰아와

미명 속 먼동을 틔웠다.

 

빗물이 구슬피 우는 날에는

삶과 죽음을 맞잡고

그대와 영원한 호흡을 하리.

―「젖은 폐가」 전문

 

이 시는 삶이 이어지지 않는 폐가를 보며 새로운 생의 흔적을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삶과 죽음이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짧은 생을 갈무리한다는 것”은 “또 다른 누군가의 생을 시작한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아무도 살지 않을 것만 같은 폐가에 “노숙 고양이의 발자국”이 흔적처럼 피어오른다. 밤새 새소리와 바람이 불어오고 어둠이 호흡을 멎게 해도 “미명 속 먼동”은 틔어오른다. “삶과 죽음을 맞잡고” “영원한 호흡”이 이어지는 곳. 시인은 삶과 죽음을 별개의 세계의 아닌 영원한 호흡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박정규는 삶에 대한 예리한 감각을 벼리고 있다. 이 감각이 바로 박정규의 시라 할 수 있다. 그에게 시는 “세상이라는 날개를 잡고 동반 낙하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가슴이 철커덩 내려앉는 소리를 듣고 소스라쳐 깨어나는 새벽, 놀란 마음 다독이는 진정제”(<탈춤추는 사람들> 시인의 말)인 것이다. 그는 고양이의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고 있다. 때로는 취한 듯, 때로는 예리한 고양이의 눈으로.

 

2. 벌, 꽃을 해킹하다-박선우, <홍도는 리얼리스트인가, 로맨티스트인가>

박선우는 “온몸을 후각으로 동원”하는 방식으로 삶의 다양성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시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세 번째 시집 <임자도엔 꽃 같은 사람만 가라>에서 삶의 진리를 자연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것과 같이 이번 시집에서도 삶과 자연의 소통은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꽃을 해킹”하듯 강렬하고 역동적이다.

 

몇 페이지의 텍스트를 저장하고 있는가에

벌들은 온몸으로 후각을 동원하고

페스워드를 찾느라 온종일 붕붕거린다

아무래도 대갓집 규수 같은 목단이라면

천개의 비밀을 보유하고 있지 않을까

몇 마일을 날아왔을 벌들이 꽃과 접속을 끝내고

꽃의 텍스트를 읽느라 정신이 없다

꽃에게도 이렇게 많은 공개할 수 없는

파일이 있다는 것, 그 파일 속에는

천기를 누설할 수 없는 꽃의 비밀들이

문서화된 텍스트를 읽어내느라

텍스트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안이 궁금해 기다리는 바람

세상이 시끄러울 것 같은 예감으로

제각기 촉각을 세우고 있는 새들

밖이 시끄럽든 말든

무차별 꽃을 해킹하고 있다

―「꽃의 파일을 해킹하다」 전문

 

삶은 “대갓집 규수 같은 목단”처럼 “천개의 비밀을 보유”하고 있다. 이 삶을 읽어내기 위해 시인은 “온몸을 후각으로 동원”한다. “꽃의 텍스트를 읽”어내는 것, 이것은 시인이 삶을 읽어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꽃에게도 이렇게 많은 공개할 수 없는 파일이 있다는 것”, “그 파일 속에는 천기를 누설할 수 없는 꽃의 비밀들”이 가득하다는 것. 꽃의 수많은 비밀, 그것은 공개할 수 없는 삶의 비밀들이며 알 수 없는 삶의 비밀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삶은 곧 텍스트와 같은 것이다. 이 텍스트를 읽어내는 작업. 이것이 시인의 시임은 물론이다. 꽃을 향한 무차별 해킹. 그것은 삶을 향한 시인의 치열한 몸짓이라 할 수 있다.

 

장전된 총구이다

탕― 탕― 탕―

백 미터 반경에서도

조준은 오차가 없다

봉인된 꽃들이 침묵을

깨고 옹알이를 한다

새들이 해독을 하느라

세상은 온통 시끄럽고

꽃들은 주변을 인식하느라

빠르게 세상과 접속한다

접속을 끝낸 꽃들은

봄날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팽팽한 대치로 4월은

연일 유혈사태다

―「4월」 전문

 

4월을 표현하는 시인의 어조가 사뭇 강렬하다. 장전된 총구로 꽃들의 침묵을 쏜다. 조준은 오차가 없고 드디어 “봉인된 꽃들이 침묵을 깨고 옹알이를 한다”. 새들 또한 꽃들을 해독하느라 세상은 온통 시끄럽다. 다양한 시도에 “빠르게 세상과 접속”하는 꽃들. 꽃들과 봄날은 서로를 읽어내기 위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그들의 “팽팽한 대치” 그것이 바로 4월이다. 시인은 무수히 피어나는 4월 봄날의 꽃들과 생명들의 역동성을 선명하게 부각시키며 삶의 역동성으로 그려내고 있다. 온몸으로 삶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동백꽃보다

홍주를 파는

객주의 입술보다

선혈처럼 낭자한 노을 앞에

홍도는 스스로 경악한다

낭자한 노을의 익사체 한 구

바다에 떠오르면

낮보다 점등하는

별빛이 아름다운 섬

홍주 한 사발에 웃음 한 사발

홍도는 리얼리스트인가

로맨티스트인가

―「홍도는 리얼리스트인가, 로맨티스트인가·1」 전문

 

홍도는 리얼리스트인가? 아니면 로맨티시트인가? “선혈처럼 낭자한 노을 앞에” 홍도는 경악한다. “낭자한 노을의 익사체” 그것은 아름다움이며 또한 잔인한 현실이다. 어둠이 찾아오면 낮보다도 아름답게 떠오르는 별빛. 그 “별빛이 아름다운 섬”. 그 섬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홍도가 살고 있다. 그러나 홍도는 “홍주 한 사발에 웃음 한 사발” 흘려야 하는 사람. 그가 흘리는 웃음은 웃음이며 동시에 눈물이고, 고통이며 환멸이다. 이러한 홍도가 “선혈처럼 낭자한 노을”을 보며 웃고 있다. 아니 울고 있다. 고통과 아름다움이 교차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홍도는 리얼리스트인가, 아니면 로맨티스트인가. 노을에서 낭자한 선혈을 보는 홍도는 리얼리스트이다. 또한 “별빛이 아름다운 섬”을 바라보고 있는 홍도는 로맨티스트이다. 고통과 희열은 삶 속에 뒤엉켜 녹아 있다는 것. 홍도가 리얼리스트이기도 하며 동시에 로맨티스트이기도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홍도는

붉은 제국이다

고래 뱃속 같은 둥지가 좋아

이곳이 전부인 사람들

자기 몸을 꺾은 공양으로

해탈한 해송들

갖가지 형상으로 문신을 새기고

온갖 풍상을 이겨낸 바위들

바다의 비늘이 밀려오면

뭍의 사람들은 바다를 주워

햇볕에 말리고

말린 바다는

자기의 지문을 지우며

또 다른 생을 꿈꾼다

―「홍도는 리얼리스트인가, 로맨티스트인가·2」 전문

 

삶의 고통과 상처에서 또 다른 생이 피어난다. “해탈한 해송들”은 “자기 몸을 꺾은 공양으로” 해탈에 이른 것이며 “갖가지 형상으로 문신을 새기고” 난 후에야 “온갖 풍상을 이겨낸 바위”가 될 수 있다. 고통과 상처인 비늘이 바다에서 밀려오면 그 고통과 상처를 “주워 햇볕에 말리”는 사람들. 그 말린 바다는 인간의 온갖 풍상을 지우며 인간은 “또 다른 생”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삶은 때로는 고통으로 상처로 다가와 인간을 리얼리스트가 되게 한다. 그러나 삶은 동시에 아름다움과 희열을 가져다준다는 것. 인간이 또한 로맨티스트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선우는 삶의 이러한 극단의 이면을 주목하고 있다. 그의 시가 자연을 배경으로 부드럽게 떠오르는 것과 함께 선혈이 낭자한 강렬함으로 다가오는 것은 삶의 다양성을 담아내고자 하는 그의 시정신과 관련이 있는 것이 할 수 있다.

 

권경아∙2003년 ≪시와 세계≫로 등단. ≪시현실≫, ≪리토피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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