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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겨울호)미니서사/박금산/강물처럼 흐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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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012회 작성일 12-05-30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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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서사/박금산

강물처럼 흐르는 사람

 

 

 

아내는 강물 속에 커다란 문이 있다고 유언했다. 남자는 아내가 빠르게 흘러가는 강줄기를 떠올리면서 말한다고 믿었다. 남자는 ‘그 문에 손잡이가 달려 있니?’라고 묻고 싶었다. 그런데 아내의 손을 잡고 있는 장소가 병실이라는 사실이 새삼 낯설었다. 남자는 속으로 말했다. ‘네가 원기를 찾으면 그때 강물 속의 문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림으로 그려 줘.’ 아내가 팔을 벌렸다. 남자는 허리를 굽히고 상체를 숙였다. 아내가 남편을 품에 넣고 등을 쓰다듬었다.

남자는 집으로 돌아갔다. 거실에 불을 켰다. 유리에 거실이 비쳤다. 남자는 아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쓰던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남자는 꿈에 우물을 보았다. 둥그런 우물이었다. 남자는 난간에 손을 올린 채 허리를 굽히고 상체를 숙여 물에 얼굴을 비췄다. 우물에서는 남자의 얼굴이 아닌 아내의 얼굴이 나타났다. 수면이 잔잔하게 흔들렸다. 남자의 이마에서 땀이 한 방울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잠에서 깨었다. 거울로 달려가 얼굴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자기가 표정 없이 딱딱한 얼굴로 서 있었다. 남자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사흘 후, 남자는 장례식에 지쳐 집으로 돌아갔다. 베란다에 서자 강이 내려다보였다.

밤이었다. 땅에서 개 짖는 소리가 올라왔다. 남자는 개소리에 아파트 공기가 뒤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남자는 창문을 열었다. 달이 밝았다. 개는 계속 짖었다. 남자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개는 달을 향해 짖고 있었다. 남자는 생각했다. 저 개는 달 속에 무엇이 들어 있다고 상상하면서 짖는 것일까. 남자는 홍수에 쓸려간 아이를 생각했다. 아내의 말에 따르자면 강물 속에는 커다란 문이 있었다. 남자는 강이 보이는, 반대쪽 베란다로 나갔다. 어둠 속에 커다란 문이 있었다. 강물 속에는 커다란 문이 있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박금산∙1972년 여수 출생. 2001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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