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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겨울호)독자시읽기/양보람/박은 못, 빠진 못-김종철, 「고백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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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시읽기/양보람
박은 못, 빠진 못-김종철, 「고백성사」
고백성사
ㅡ못에 관한 명상․1
김종철
오늘도 못을 뽑습니다
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못이 뽑혀져 나온 자리는
여간 흉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성당에서
아내와 함께 고백성사를 하였습니다
못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
아내는 못 본 체하였습니다
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아직도 뽑아내지 않은 못 하나가
정말 어쩔 수 없이 숨겨둔 못대가리 하나가
쏘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일만큼 부끄럽고 고생스러운 일이 어디 있을까. 가려져 있던 포장지를 벗겨내고 오롯한 자기 자신을 꺼내어 보이는 것은 그 무엇보다 끔찍한 일이다. 그럴싸한 변명의 유혹을 뿌리치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캐물어야 한다. 다시는 같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반성도 하여야 한다. 나쁜 일을 저지르더라도 갖가지 이유를 들며 합리화를 하려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괴로운 진실을 마주하는 것보다 보기 좋은 거짓을 마주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화자는 오늘도 ‘못’을 뽑는다. 어제 박았던, 일 년 전에 박았던, 나도 모르게 박았던 못을 뽑고 있다. 단단히 박힌 못을 뽑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 더더군다나 어려운 일이다. ‘고백성사’라는 제목에서 연유해 보았을 때 ‘못’은 화자가 지은 죄를 의미하며, 못을 뽑는 행위는 참회에 해당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간 어렵지 않은” 일을 화자는 “오늘도 성당에서 아내와 함께 고백성사”를 통해 하고 있다.
‘못’은 뽑혀져 나와도 그 자리가 남는다. ‘못’은 사라질지언정 그것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뽑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못이 뽑힌 자리에 생겨난 흉터를 바라보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못자국은 흉하게 남아 끊임없이 그를 괴롭힌다. 못을 뽑는 행위만이 전부가 아니다. 못자국을 떠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지난 세월에 대한 끊임없는 참회와 반성을 요구한다. 그래서 못을 뽑는 행위가 녹록치 않은 일인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거짓말을 하고, 스스로의 욕심을 이기지 못하기도 한다. 때로는 본인도 감당치 못할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못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은 욕망과 본능, 그리고 참회와 양심 속에서 뒤섞여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못을 박고, 또 그 못을 뽑으며 살아가는 보편적 인간의 형상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공감이 되었던 부분이 시의 말미이다. “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아직도 뽑아내지 않은 못 하나가/정말 어쩔 수 없이 숨겨둔 못대가리 하나가/쏘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 깊이 숨겨 둔 비밀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욕망은 잠시라도 경계를 늦추면 쾌락과 본능을 쫓으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죄를 짓고, 다시 참회를 하고, 또 실수를 하는 일이 반복된다. 회개를 하는 순간에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쾌락과 충동을 갈구하는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갖는 한계이자 비극이다.
한편, 아내는 “못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 “못 본 체”하고 있다. 아내의 ‘못 본 척’은 상대의 상처를 보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부끄러움과 아픔으로 숭숭 뚫려 버린 남편의 가슴을 사랑과 용서로써 덮어주고 있는 것이며 이를 못 본 체함으로써 남편의 치부를 건드리려 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허물도 감싸 안아주는 것, 진정한 사랑의 미덕이 이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이를 만났기에 화자는 상처로 뒤덮인 가슴을 안고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휘어지고 구부러지고 녹슬고 병들어도 서로 보듬고 이해하는 존재가 있어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못’을 박으며 살아간다. 어쩌면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이 ‘못’을 박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를 사랑하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후회할 일을 저지르는 모든 일이 ‘못’으로 귀결될 수 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박은 ‘못’은 원래대로 돌이키고자 하여도 그 흔적이 남는다. ‘못’을 힘차게 뽑아낼 수는 있겠지만 그 상처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오늘도 ‘못’을 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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