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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봄호)특집/김구용문학제/이성혁/김구용론/김구용 초기시와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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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봄호)특집/김구용문학제
이성혁
김구용론/김구용 초기시와 한국전쟁
알다시피 한국 전쟁은 한국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끝난 후 한국인들은 ‘해방공간’에서 자유롭고 정의로운 민족국가 건설을 꿈꿨다. 하지만 이러한 꿈은 얼마 가지 않아 산산이 부서졌다. 자력으로 이끌어내지 못한 해방은 해방이 아니었다. 한국의 운명은 또 다른 외세에 의해 결정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 운명은 분단으로 나타났다. 북에서는 스탈린주의 소련의 전체주의 체제가 이식되었으며 남에는 미국 자본주의 이식과 함께 친일파가 다시 권세를 잡게 되었다. 남북에 상반된 체제가 이식되고 세계는 냉전체제로 돌아서면서 통일은 점차 요원해져만 갔다. 남북 체제의 충돌은 더욱 격심해졌으며 결국 민족상잔의 비극을 불러일으킬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전쟁은 순식간에 한반도를 살육의 장으로 변화시켰다. 평범한 사람들에겐 생존이 전부였다.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해야 했고,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생존한 이들은 어떤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만 했다. 이 상처는 너무나 깊고 두려운 것이라서, 한쪽의 이데올로기를 주창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전쟁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말하길 누구나 꺼려했다. 전쟁 직후의 한국시 역시 전쟁의 상처를 드러내는 데 주저했다고 판단된다. 전쟁의 경험으로 인한 내면적 상처를 절실하게 드러낸 시인은 많지 않았다. 그러한 면에서 전쟁 발발 직후, 전쟁체험의 비참을 내면화 하여 절실하게 표현한 김구용의 시는 한국시사에서 독특하고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고 하겠다.
전쟁 당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겨우 부산으로 피난했던 김구용은 전쟁의 상처를 깊이 흡수한 시편들을 시작詩作 했다. 살육의 장을 통과해온 체험이 한국전쟁 시기 김구용의 시에 밑바탕이 되었다. 그의 전쟁 이전 시와 전쟁 직후 시 사이엔 내용과 형식 모두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데에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김구용 자신도 6·25가 터진 “그 무렵 난리와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선배들의 글에 회의를 느꼈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코앞에 있는데, 앉아서 산천초목과 자연만 노래하고 있으니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지요.”라고 말하고 있다.
전쟁 이전 김구용은 ≪문장≫이 표방했던 동양의 고전적인 시학을 시작 바탕으로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고전적인 시학은 주로 산천초목의 아름다움이나 옛 조선 유품에 감응한 시인의 서정을 단아하게 조탁하여 보여주는 것에 시적 가치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김구용은 전쟁 직후 자신이 따르던 시학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고, 전쟁의 체험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격심한 고통을 시에 내면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내면화의 표현은 산문시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서는 시인 스스로 “6·25 사변중에 산문시를 많이 썼는데 그것은 그 당시 복잡한 시대적 어지러움 속에서 산문시로밖엔 나를 소화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구용 시인은 전쟁 체험을 어떻게 시에 표현하고 있는가? 우선,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전쟁 이전의 김구용 시의 경향에 대해 간략하나마 살펴보기로 한다. <김구용 전집․1>을 보면, 김구용 시인이 남긴 시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1936년에 쓴 「회고」라는 시다. 1936년이면 시인이 15세 때인데도 불구하고, 「회고」는 상당히 안정된 구성에 언어도 잘 조탁되어 있다. 이에서 시인이 무척 조숙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시의 내용은 시적 화자가 개성을 방문하고 제목에서처럼 무너진 왕조-고려-에 대해 회고하는 것이다. 직접 인용해보면, “충성의 어린 피가 풍상風霜을 겪어도/선죽교善竹橋는 변함이 없건만/무심한 구름은 오락가락/만월대滿月臺는 잡초만 우거졌구나.”(2연)와 같은 식이다. 이 시의 형식적 안정성은 시조와 한시의 형식을 차용하는 데에서 오고 있고, 내용 역시 그렇다.
이를 보면 시인이 어려서부터 동양의 고전 시가에 대한 수양을 깊이 해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전쟁 이전에 쓴 시들은 이러한 수양을 바탕으로 써진 것들이라고 판단된다. 특히 전집에는 1943년에 쓴 시가 비교적 많이 실려 있는데, 그 시편들에서 청년 시절 김구용 시인의 시적 지향이 전통적인 시학에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시인의 회고에 따르면, 1943년이라면 징용을 피해 동학사로 숨어 들어가 책만 읽고 있었을 시기다. 시인은 그때부터 불안과 공포를 이기기 위해서 불경과 동양고전을 읽었다고 한다. 당시에 쓴 아래의 시는 시인의 고전미에 대한 지향을 잘 보여준다.
영겁永劫의 꿈을 실은 네 숨결이 정다워라.
정성을 다하옵던 그 모습이 피에 스며
외로운 님의 얼만 불멸하고 타오르니
아득한 꿈이런가 문득 깨쳐 이제인 듯
하늘의 정적이여 진사辰砂빛 젖 꽃판을
듣는 바 없으면서도 너에게서 듣노라.
―「고려자기부高麗磁器賦」 2~3연
제목에 부賦라는 한문학 장르 명칭을 붙여놓았지만, 이 시는 연시조라고 할 수 있겠다. 3장 6구 4음보 운율의 형식에 맞추어 쓴 시이지만, 시인은 고려자기를 보고 떠오르는 생각을 시와 산문 사이에 놓인 장르인 ‘부’에서처럼 자유롭게 전개하려고 했을 것이다. 2연에서는 자기를 만들었을 도공의 “영겁의 꿈”을 상상해서 쓴 것이고, 3연은 고려자기의 “진사빛 젖 꽃판”의 모습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고 있는 시인 자신의 감응을 쓴 것이다. 매끄럽고 깔끔하게 조탁된 시조이긴 하지만, 한편으로 어디서 많이 본 듯해서 개성을 느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전적인 안정성은 근대적인 개성을 중시하지 않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전적인 단아함이 해방 이전 김구용 시의 특성이었다면, 해방 직후엔 김구용 시인은 정형시보다는 산문시를 더 많이 쓰고 있긴 하다. 해방 직후의 사회적 혼란상이 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되는데, 허나 1948년이 되면 김구용의 시는 고전적인 차분함과 안정적인 미감을 회복하고 있다. 가령, 1948년에 쓴 “용트림진 고매古梅 등걸이 밤에 눈을 맞더니/이끼를 툴툴 털고 하늘로 날아올라/먼 새벽의 향기인가, 꽃이 하마 피었네.”(「동冬」 전문)와 같은 구절을 보면, 이 시인이 고전적인 시학과 세계관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해방 직후의 어지러운 상황도 김구용 시에 근본적인 지각변동을 가져오지는 못했음을 알려준다. 이렇게 그가 상황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1948년 작作인 「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이 시의 처음 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인용해본다.
난리 이야기가 미닫이에 타오른다.
서재에 돌아와 신간新刊을 펴다.
말쑥하게 꾸민 꼭두환幻들이 놀아난다.
마지막 장이 끝나기도 전에
훅, 등잔불을 꺼버렸다.
(중략)
태고太古를 찢는 총소리
아우성소리는 밀어닥친다.
무기도 없는 밤
어둠 속에서 노리는 눈을
내가 감으면
비로소 흐르는 산속 물소리.
세상은 ‘난리 이야기’로 타오르고 있다. 시인은 피곤하다. 서재에 돌아와서 책을 읽으려고 한다. 서재에서 “신간을 펴”지만, 그 책에는 오직 말쑥한 감언이설만이 전개되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새로운 것, 또는 당대성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시인의 고전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겠다. 환幻에 불과한 이 ‘새로운 것’에 시적 화자는 짜증이 난다. 그는 등잔불을 꺼버리고 잠을 청한다. 하지만 잠을 잘 수 없다. 밖에서 “태고를 찢는 총소리”와 “아우성소리”가 시인의 방 안으로 밀어닥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소리는 시인의 생활을 “어둠 속에서 노리는 눈”과 같다. 아니 “어둠 속에서 노리는 눈”은 시인의 눈일 수도 있다. 그 눈은 아우성소리에 곤두선 시인의 신경을 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시인은 이 난리판 세상과 밀려들어오는 아우성으로부터 떨어져 있고 싶어 한다. 그래서 “노리는 눈을” 스스로 감는다. 그러자 “산속 물소리”가 흐르기 시작한다. 이 “산속 물소리”는 시인이 징용을 피해 숨어들어간 산에서 항시 들었던 소리일 것이다. 시인은 현실을 외면하고 자연의 단순하면서도 청아한 세계,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안착되어 있는 세계로의 회귀를 꿈꾼다. 「동冬」에서의 매화 향기, 즉 “새벽의 향기”를 퍼뜨리는 저 겨울 매화의 개화가 바로 이 꿈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나서도, 시인은 계속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죽음 직전까지 이르는 공포에 떨어야 했고 지인들이 송장이 되는 충격을 겪어야 했던 시인으로서는, 더 이상 눈을 감고 매화 향기를 상상할 수 없었다. 이 충격적인 상황에 맞닥뜨린 시인의 반응은 우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놀람의 표명이다.
잎들은 저리도 우거졌는데
집들은 하나하나 터만 남고
꽃들은 이리도 만발한데
송장들이 어디서나 썩는 냄새
알 수 없는 일이다.
모를 일이다.
―「잎은 우거졌는데」 전문
매화 향기를 상상했던 시인이 이제 실제로 맞닥뜨린 것은 진동하는 송장 썩는 냄새다. 매화 향기는 그 송장 냄새를 없애지 못한다. 송장 냄새는 저기 실제로 만발한 꽃의 냄새마저 없애버리고 있는 것이다. 폭격으로 집들은 터만 남고 사라져버렸다. 이러한 충격적인 ‘실재’에 마주친 시인은 솔직하게 이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표명한다. 알 수 없다고, 모를 일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실재로부터 시인은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여기에서 김구용 시인의 시적 용기가 발휘된다. 그는 이 실재와 그 실재를 보면서 경악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동시에 포착하고 탐구한다. 저 처참한 실재는 무엇이며, 그것을 보고 있는 자신은 어떤 존재란 말인가? 저 실재와 자신은 어떠한 관계에 있는 것인가?
커튼을 떨리는 손으로 걷는다. 도시가 들어찬 유리창에 전투기는 검은 배를 노박 드러내며 넘어간다. 안개를 흔드는 저승의 아우성 소리, 망령亡靈처럼 선 고층高層들은 소스라쳐 놀라, 눈마다 불을 껐다. 그도 불을 죽였다. 창이 먼 포砲소리에 떨린다. 마음속까지 진동한다. (중략) 그는 미래의 위치에 서서 빛도 냄새도 소리도 맛도 없는 유리창을 내다본다. 비가 두 눈에서 내린다.//밤이 내린다. 얼굴은 액연額椽 속의 나라 없던 백성, 비가 죽죽 흘러내릴 때마다 유리창 안의 그는 계속 무너진다. 바깥도 어둠에 가려 쓰러진다. 포소리가 연신 날아온다. 백골들이 유리창에 늘어선다.
―「유리창」 부분
시인은 유리창을 통해 도시를 바라보고 있다. 유리창 바깥에는 공습이 이루어지고 있다. 폭탄이 떨어지고 대공포가 불을 뿜는다. 시인에게는 그 폭발 소리가 “저승의 아우성 소리”로 들린다. 그것은 환상이 아니라 실재다. 저 폭발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타 죽고 있을 것인가? 고층빌딩들은 전폭기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눈마다 불을” 끄고 있다. 그 역시 눈의 불을 죽인다. 하지만 눈을 감아도 이젠 더 이상 산속 물소리가 들리진 않는다. 먼 포 소리가, 그 아우성 소리가 유리창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유리창이 흔들리면서 그의 마음속도 역시 진동하기 때문이다. 세계와 시인 사이에 놓인 유리창은 세계를 받아들이는 시인의 마음의 눈이기도 했던 것, 그리하여 유리창에 비치는 저 참혹한 도시와 살육의 현장은 바로 시인의 마음이 된다.
그런데 지금 비가 내리고 있다. 내리는 비는 유리창에 부딪쳐 흘러내린다. 즉 비는 시인의 마음의 눈에서 흘러내린다. 그래서 “비가 두 눈에서 내린다”는 시인의 진술이 이해된다. 이때 유리창은 방 안에서 방 밖의 폭격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시인의 모습도 비추고 있다. 즉 마음의 눈은 시인의 모습도 비추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유리창에 “죽죽 흘러내”리는 비가 마음의 눈에 비추어진 시인을 지운다. 달리 말하면 “그는 계속 무너진다.” 그와 동시에“연신 날아”오는 ‘포소리’-저승의 아우성 소리-에 실려 온 불타죽은 자들의 “백골들이 유리창에 늘어”서기 시작한다. 시인의 모습을 지우며 유리창에 붙어 흘러내리고 있는 비는 바로 저 백골들이었던 것이다. 시인의 마음에 들어찬 저승의 아우성은 시인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
그리하여 마음의 창-유리창-은 백골들이 아우성치는 세계와 그 아우성으로 무너지고 있는 시인 자신을 동시에 비추고 있다. 그 유리창에 비친 형상들이 바로 시인의 시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위의 시는, 저 참혹하고 폭력적인 세계, 그 알 수 없는 세계의 충격에 맞서, 김구용 시인은 유리창에 비친 저 세계와 자신을 증언해야 한다는 시인으로서의 의무감을 표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구용의 초현실주의적인 시작詩作으로의 전환은, 이 증언에의 의무감에서 출발하게 되는 것 아닐까? 세계를 비추는 창이자 자신을 비추는 창인 유리창의 2중적인 성격은 붕괴되는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세계의 비참함을 표현하고 세계의 비참함을 표현함으로써 자기의 붕괴를 표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렇듯 세계의 붕괴와 자기 자신의 붕괴가 서로 흡수되고 뒤섞이면서, 김구용 시에서 세계와 자기 사이의 경계는 모호하게 된다.
김구용 시인으로서는, 세계의 비참함을 드러내는 자기의 붕괴를 표현하기 위해서 초현실주의를 요청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김구용의 초현실주의 시는 현실의 실재를 잃지 않는다. 무너지는 자기를 표현하기 위한 초현실주의 시 쓰기는 참혹한 현실의 실재를 드러내는 작업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김구용의 초현실주의가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세계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에 정직하게 응전한다는 시적인 윤리에서 비롯된 것임을 말해주며, 서구의 한 사조의 모방으로서가 아니라 그가 직접 겪은 고통으로부터 산출된 그만의 것임을 말해준다. 김구용 시인 자신이 자신의 초현실주의적인 시 쓰기가 가지는 성격을 다음과 같이 암시해주고 있다.
현실의 그림자는 내 외로운 시각 안에서 결정한다. 눈은 헛된 꿈의 각도를 통하여 내다본다. 바람에 흩어지는 매연이 내 칠색七色의 애정을 지워버린 지 오래였다. 저기에는 비애도 없이 독사가 똬리를 튼다. 아니, 방심한 톱니바퀴가 돌아간다. 얼마나 매혹적으로 흘러내리는 피가 꽃처럼 만발하느뇨. 몸은 비를 노박 맞는다. 더러운 절벽切壁에 침투한 내 골육의 그림자는 관념의 환광幻光으로 나타났을까. 나의 안계眼界는 짜디짠 눈물에서 암흑으로 용해한다. 거기에는 하나의 태양과 수면睡眠도 없다.
―「시각視覺의 결정結晶」 전문
김구용 시인은 “나는 이 유리창이 생각한다”면서 “유리창이 맑음을 잃고 추위에 복잡한 꽃무늬로 동결凍結한 모양이 내 아름다운 슬픔의 형상”(「유리창을 나라고 생각한다」)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유리창에 비친 저 성에꽃의 세계, 추위에 얼어붙은 세계는 곧 나의 슬픈 형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나의 슬픈 형상-유리창-에 비친 현실은 성에꽃으로 결정結晶된다. 위의 시를 통해서 보면, 그 성에꽃은 그러니까 “내 외로운 시각 안에서 결정”된 “현실의 그림자”다. 나의 “외로운 시각”인 “헛된 꿈의 각도”가 “내 골육의 그림자”라고 한다면, 시에 현상된 현실의 그림자는 나의 그림자와 현실의 용해에서 산출된 것이다. 그 용해는 “비애도 없이 독사가 똬리를 튼”, “더러운 절벽”의 ‘저기’ 현실에 “나의 골육의 그림자”-외로운 시각-가 침투하면서 이루어진다. 현실에 침투한 “내 골육의 그림자는 관념의 환광으로 나타”날 것이며, 그 환광 속에서 “나의 안계는”, “암흑으로 용해”할 것이다. 암흑 속의 환광, 그 현실의 그림자에는 “하나의 태양과 수면도 없”는 곳이 된다. 허나 한편으로 암흑으로 용해된 현실, 즉 현실의 그림자는 시에서 성에꽃처럼 결정될 것이다. 그 결정은 “헛된 꿈의 각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현실의 ‘추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일은 어디서 시작하여, 끝날지 모르는 심서心緖를 한 형상으로 만들기까지의 삭제이다. 점토에서도 공간을 발견한다. 변화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 침묵이 지적하는 판자집들은 무슨 뜻인가. 언덕을 쏘는 초점, 시체들은 어쩌라는 것인가. 전폭全幅의 배경인 주황빛 달이 휙휙 돌면서 녹아 흐르는 산협山峽은 어떤 결정을 촉구하는가 관찰은 갈피를 잃어 난선亂線으로 뒤엉킨다. 그 하나하나를 긁고 끊고 뜯어내어 살려야 한다. 잉크는 백지에서 날마다 피투성이였다.
―「생명의 능각稜角」 전문
이 시는 김구용의 시작 과정을 알려준다. 시 쓰기는 ‘심서’, 즉 마음속의 생각이나 느낌을 형상으로 결정하는 과정이며, 그 결정을 위해 무엇인가 삭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심서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점토에서도 공간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현실의 “변화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생겨난다. 현실을 미세하게 관찰하는 이 과정은, 대상 현실을 장악하여 파악하는 근대적 주체의 시선을 산출하지 않는다. 도리어 현실이 바라보는 주체를 응시한다. “언덕을 쏘는 초점”이 있는 것이다. 그 초점은 바라보는 주체에 의해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산협’에 누워 있는 시체들에 의해 설정된다. 그래서 “관찰은 갈피를 잃고 난선으로 뒤엉”켜 시인을 혼란의 ‘심서’에 빠뜨리게 될 것이다. 그 초점, “주황빛 달이 휙휙 돌면서 녹아 흐르는 산협”이 바로 “어떤 결정을 촉구”할 것이며, 시인은 이 촉구에 떠밀려 혼란스러워진 ‘심서’를 형상으로 결정하고자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시인은 ‘심서’의 ‘뒤엉킨’ ‘난선’ “하나하나를 긁고 끊고 뜯어내어” 형상을 살려내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김구용 시인에게 시 쓰기는 주체의 폐쇄적이고 관념적인 환광을 펼쳐낸다기보다는, 시체들이 널린 참혹한 현실의 충격이 심서에 각인되면서 형성된 환광의 난선을 형상의 결정을 위해 “긁고 끊고 뜯어내”는 삭제의 과정, 그리하여 “잉크는 백지에서 날마다 피투성이”가 되는 과정이다. 왜 피투성이가 되는가? 바로 저 ‘심서’의 환광으로 전환된 현실은 시인 자신의 내면이 되었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각인된 피투성이 현실은 환광이 되어 시인에게 내면화된다. 그 환광은 바로 2중적인 유리창에 비친 현실이어서, ‘유리창인 나’의 내면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 피투성이 현실의 환광을 뜯어내는 작업은 한편으로 시인 자신의 내면을 뜯어내는, 2중의 피투성이 작업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매우 고통스러운 작업일 것이다. 시인이 관찰하고 있는 현실에 의해 시인의 내면은 상처를 입게 된다. 김구용 시인은 폭력적인 현실이 자신의 내면에 깊이 파고 들어옴으로써 입은 상처를 어떤 무엇으로 덮으려고 하지 않는다. 즉 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처가 그냥 아물게 놔두지 않는다. 그는 고통을 주는 상처를 드러내고 “긁고 끊고 뜯어내”서 더욱 고통스러워한다. 그것이 김구용 시인의 시 쓰기이자 시의 윤리다. 그렇다면 시인은 왜 이러한 작업을 하고자 하는가? 보통 우리는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기를 원한다. 어떤 시인은 그러한 심리적 도피처를 제공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고통에 직면하고, 고통을 살아내며, 고통을 사유하는, 고통스러운 작업을 선택하는 시인도 있는 것이다. 김구용 시인은 이러한 길을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고통은 삶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고통을 감내하고 이에 응전하는 자는, 좀 더 강인한 주체로서 자신을 형성하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통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이겨내고자 하는 자는, 자기 자신에 내재해 있는 존재론적인 힘을 활성화하게 된다. 그렇기에 고통에 대한 감성은 존재론적인 힘의 강화에 필수적이다. 자신만의 고통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감응할 수 있을 때, 삶은 더욱 강렬하게 되고 폭력적인 세계와 응전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 김구용 시인 역시 초현실주의적인 방향의 시작詩作을 통해 전쟁 상황에 처절하게 대응하면서 고통스러운 상황을 돌파하고, 삶의 의미를 새로이 발견하고 주체성을 새로이 형성하고자 한 것 아니겠는가. 이러한 추측이 근거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시인 자신이 다음과 같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상흔은 장밋빛으로 살아난다. 너는 지상에 흩어진 별星이다. 내 가슴에서 겨울바람이 분다. 나는 나의 그림자를 안고 쓰러진다. 널 뚜껑은 우리 위로 덮인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내일이 날마다 우리에게서 태어남을.
―「내일」 마지막 연
시인은 지상의 현실에 의해 입은 ‘상흔’이 삶을 다시 “장밋빛으로 살아”날 수 있게 할 것임을 믿는다. 그 살아난 상흔은 ‘천상의 별’과 같이 먼 나라에 있는 희망이 아니다. 상흔은 지금 살아가고 있는-또는 죽어 있는-사람들이 존재하는 “지상에 흩어”져 있는 것이다. 이 상흔을 입은 존재의 그림자를 시인은 외면하지 않는다. 그는 우선 자신의 “그림자를 안고 쓰러”지는 것이다. 이때 ‘우리’가 탄생한다. 왜냐하면 “나의 그림자를 안고 쓰러”지는 행위는 지상에 흩어진 별들, 그 상흔들과 함께 있고자 하는 행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에게서 너를 찾”는 행위이기도 하며 더 나아가 “너의 울음은 서로의 아픔임을 알”(「양지陽地」)고자 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상흔으로 지상에 쓰러진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우리 위로 덮”이는 널 뚜껑, 즉 관 뚜껑이다. 시인은 이제 “시체들만이 만나서 양지에 다정히 누워 있”(「양지陽地」)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상흔과 죽음을 공유하고 있는 상황은 상흔이 “장밋빛으로 살아”나서 “내일이 날마다 우리에게서 태어”난다는 전망을 열어놓는다. 우리는 주체가 되어 새로운 내일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고통은 주체의 존재론적인 힘을 북돋기 때문에. 그리고 죽음의 고통 속에서 형성된 ‘우리’는 그러한 존재론적인 힘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그렇기에 고통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이를 시로 표현하여 타인들과 고통을 공유하도록 하는 시인은, 사람들이 ‘우리’를 형성케 하면서 자신들의 존재론적 힘을 강화시키게 만드는 자이다. 여기에 시인의 사회적 존재로서의 의의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김구용 시인은 “나의 그림자를 안고 쓰러”지는 행위인 ‘시 쓰기’를 통해 “서로의 아픔”을 알고자 했고, 또한 그렇게 창작된 시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에 고통스럽게 공감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집단적인 심성을 구축하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의 산물인 김구용의 ‘초현실주의’적인 시편들은, 그리하여 보편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이성혁
서울 출생. 2003년 ≪대한매일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저서 <불꽃과 트임>, <불화의 상상력과 기억의 시학>, <서정시와 실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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