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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봄호)특집/김구용문학제/김이강/김구용시읽기/삶을 찾는 더욱 단단한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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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봄호)특집/김구용문학제
김이강
김구용시읽기/삶을 찾는 더욱 단단한 절망
피난지
김구용
목숨을 찾아 해안선까지 쫓겨왔다. 눈바람으로 울부짖는 집들은 폐선廢船 냄새가 났다. 파도를 남루로 가렸다. 폐벽肺壁은 무너지며, 지난날의 꽃잎들로 날았다. 어디로 들어가든지 들어가면 무덤들은 골목을 바다로 열었다. 찾아도 나는 없었다. 등불들이 곰팡난 육신들에서 깜박이었다. 이야말로 기적이었다.(1951)
전쟁이 발발하고 피난처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듬해에 부산으로 향했다. 1950년, 김구용의 연보는 이렇게 기록된다. “6·25 발발, 전쟁의 와중에 비명횡사를 면하고 구사일생하였으나 천애고아가 되다. 시인의 ‘부산 시절’이 시작되다.”
이 짧은 몇 줄로부터 얻은 정보로 그가 부산으로 ‘쫓겨온’ 정황을 다 알 수야 없지만, 어찌 되었든 그가 부산에 도착했을 때의 그 절망감은 감히 헤아려 볼 수도 있겠다. 생사의 문턱을 넘어, 늘상 병을 안고 살았던 허약한 몸만큼이나 위태롭게, 그는 부산의 어느 해안가에 도착한 것이다. 그는 쓴다. “목숨을 찾아 해안선까지 쫓겨왔다.” 이 시의 첫 구절은 충격적이고 아름답다. ‘목숨을 찾아’라는 표현 때문에 충격적이고, 그냥 ‘바다’가 아니라 땅이 끝나고 바다와 만나는 그 위태로운 접점인 ‘해안선까지’ 쫓겨 왔다는 표현 때문에 절망적이다. 그러나 ‘죽음에 쫓겨’ 왔다는 표현이 아니라서, 아름답다.
목숨을 찾아 온 그곳, 그 바닷가에서 보이는 것은 모두 죽음의 흔적을 안고 있다. 폐선 냄새가 나는 집들, 곧 파도에 휩쓸릴 것만 같은 남루함, 폐벽마저 곧 무너질 것처럼 숨이 막히는 죽음 근처다. 바다 앞에 선 한 사나이의 고독하고 절망적인 모습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시 한 편을 떠올리게 한다.
광복동에서 만난 이중섭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길 위에
발자욱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는 또
남포동 어느 찻집에서
이중섭을 보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김춘수, 「내가 만난 이중섭」, <南天>, 근역서제, 1977
역시 부산의 어느 바닷가다. 김춘수가 바라본 한 쓸쓸한 화가 역시 전쟁 통에 ‘목숨을 찾아’ 해안선까지 밀려왔을 것이다. 동경으로 건너간 부인과 아들들은 바다 너머 멀리에 있다. 이 홀로 남은 화가의 그리움은,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이곳 부산으로 밀려온 시인의 절망감과 어디인지 모르게 닮아 있다. 집들은 울고, 폐선냄새가 났을 것이다.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릴 것 같던, 그리움의 바다에 삼켜져버릴 것 같던 화가는 어느 날 찻집에 앉아 바다를 한 뼘 한 뼘 지운다. 그것은 그리움을 지우고 극복했다는 뜻이 아니라 더한 절망감의 표현일 것이다.
시인 구용 역시 쓴다. 폐선 냄새 나는 그곳이지만, 어디로 들어가든 무덤을 따라가면 그 끝에는 모든 길이 바다로 열린다는 것, 빛을 깜빡이는 곳은 다른 어떤 곳도 아닌 ‘곰팡난 육신들’이라는 것, 그리하여 그 무수한 알 수 없는 죽음들이 바로 ‘기적’과 같은 삶을 가리키더라는 것. 그러나 이 경우 역시, 절망을 기적으로 바꾸어 내었다는 것에 이 시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찾는 더욱 단단한 절망이 아닐까. 무덤들을 따라가야만 열리는 곳, 등불을 찾기 위해 곰팡난 육신들을 응시해야만 하는 세계. 이 단단한 고독과 절망은 ‘기적’이라는 표현보다 더한 마력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이 단단한 고독의 발성법은 외침이나 절규가 아니라 차분하고 고요한 토로다. “찾아도 나는 없었다”라는 고요한 구절에는 어떤 죽음도 타당하게 설명되지 않는 전쟁을 통과해 온 시인의 실존적 물음이 담겨 있다. 그러나 쉽게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 “등불들이 곰팡난 육신들에서 깜박이었다”라는 이 표현은 어떤가. 마치 기나긴 침묵 속에서 응시한 것들이 시인의 눈에서 그대로 인화되는 것 같다. 발성보다는 침묵에 가깝고, 입보다는 눈에 가까운 것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표현과 닮아 있는 어떤 시를 알고 있다.
나를 벗으려고 하면 몸에서 자꾸 이상한 물이 흘러나왔다 리코더가 화살촉에 박힌 통증 같아서 어린 나는 불지 못하고 교실에 혼자 남아 있곤 했다 뼈가 땅속을 밝히고 있었다
―최정진, 「펭귄과 달의 난방기」 부분, <동경>, 창비, 2011
교실에 홀로 남은 아이의 이 외로움은 ‘이상한 물’과 침묵으로 채워질 뿐이다. 리코더 소리마저 발성할 수 없을 만큼의 고요 속에서. 그리고 시인은 쓴다. “뼈가 땅속을 밝히고 있었다”라고. 이 표현에는 마치 뼈가 녹아버릴 것 같은 외로움이 있다. 그리하여 땅속으로 스며든 하얀 뼈가 깜빡이고 있을 것 같은 천진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곰팡난 육신을 밝히는 빛처럼 아름답고 절망적이게 말이다.
김구용은 피난지 부산에서 기자 생활과 교사 생활을 거치며 시를 쓰고 생활을 이어갔다. 그런 그가 ‘기적’이라 노래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계속될 수밖에 없으며, 계속되어야만 하는 삶 자체였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작품 「피난지」는 당시의 피난지 부산을 둘러싼 정황과 내면을 증언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한 편의 시가 거느리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넘치고 넘어서지 않던가. 피난지를 떠나와도, 전쟁을 지나와도, 이 작품은 오래도록 다른 누군가의 시들을 불러내고, 어떤 독자들을 멈추게 만든다. 그들은 매번 쓸쓸한 바닷가 앞에 설 것이다. 어쩌면 ‘광복동’쯤에서.
김이강
2006년 ≪시와세계≫로 등단. 한양대학교 국문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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