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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봄호)특집/김구용문학제/남태식/몽상가들의 마을 외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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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067회 작성일 12-06-2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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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식

몽상가들의 마을 외 5편

 

 

몽상가들의 마을에서는 몽상이 비처럼 음악처럼 또 신화처럼 흐른다.

 

신화는 데카메론의 시절 수 세기 동안 내와 강과 바다를 넘나들며, 빈번한 급사 객사 과로사로 한 대륙을 휩쓸어 인적 드문 마을로 새판 짜던 토스트.

 

도시에서 세차게 일어난 신화는 하수구를 거쳐 운하를 타고 시골과 숲과 사막까지 걷잡을 수 없이 퍼진다.

 

신화에 자발적으로 감염된 몽상가들, 쥐 먹은 토스트를 삼키고 미처 봄 오기도 전에 공든 탑 부수고 나가 봄날 꽃노래에 취한다.

 

신화는 이제 몽상가들 마을의 최선의 주식.

 

신화에 얹는 아빠의 손맛으로는 부자와 성공이 단연 으뜸.

 

몽상가들은 부자와 성공을 곁들인 신화 식탁으로 온몸 다 밀어 한껏 줄기를 뻗는다.

 

가난의 맵고 쓴 맛 씹든 씹지 않든 신화 토스트 전염에 적극 자원한 광신화 바퀴들, 부자와 성공의 광고판을 높이 달고 이리저리 행을 걸치며 우물우물 빠르게 말 굴리며 달리는 밤.

 

신화 토스트 뼈 속속 침투시킨 몽상가들, 봄여름가을 부지런히 잎 주고

꽃 주고 열매 주고도 깊은 잠에 드는 겨울마저 깨워 쉴 사이를 잊는다.

 

온 줄기에 주렁주렁 살과 피를 태우는 조팝꽃등 달고, 슬쩍 연을 걸친 부자와 성공의 신화 문장 틈에서 덧쌓이는 피로 맨몸으로 견디며 억억, 틔는 열꽃 밤새 터뜨린다.

 

 

 

 

양치기

 

 

이 양치기는

 

아흔아홉 마리 양들을 들판 가운데 버려두고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는

착한 양치기

 

붉은 안개를 몰고 다니는

노을을 등진 늙은 양치기

 

(근대화양치기친일양치기 반공양치기 사대주의양치기 신자유주의양치기 시장만능싹쓸이양치기 자유민주주의양치기 역사망각노예육성양치기……)

 

수시로 붉은 안개 속에 얼굴을 감추고

이념의 모자를 바꾸어 써도

모자 아래의 이마는 늘 탐욕으로 번지러워

근본은 전혀 바뀌지 않는

 

1%

 

기득권자

 

들판 가운데 버려둔 아흔아홉 마리 양들의 둘레에 울타리를 치고

잃었다는 한 마리의 양까지 끝끝내 찾아서 가두네

 

 

 

 

복제

 

 

이 강에서 투전을 벌여 보물을 낚은 자들은

다 먹튀다

 

먹튀들이 낚시를 던지고 있다

장미꽃잎들을 흩뿌리며 투전판을 늘리고 있다

애초의 속셈대로다

 

저 장미꽃잎들!

어김없다

낚싯밥이다

 

늘린 투전판에서 보물을 낚는 자들도

여전하다 언제나

그 먹튀다

 

남은 것은 모두

무덤이다

 

생명의 물을 정화하다 투전으로 밀려난

강모래들로 쌓아올린 모래무덤이다

속이 빈 깡통 같은, 그런,

 

무덤이다

 

 

 

 

아니오

 

 

무덤의 나라에는 아니오가 없다

 

아니오가 없는 무덤이

허물고 쌓고 허물고 쌓는 것들은

모두 무덤

 

무덤들 위에 새로 피우고 돋우는

꽃들도 무덤

풀들도 무덤

 

무덤이 된

꽃들이 슬프다

풀들이 슬프다

 

아니오가 없으면

아니오가 없는 나라도 무덤

그 나라의 산천이 모두 무덤

 

아니오가 없는 무덤이 슬프다

아니오가 없는 나라가 슬프다

그 나라의 산천이 모두 아프다

 

 

 

 

벗다

 

 

무덤에 안 드니 경칩 지난 눈바람도 무지 매섭다. 골골 휘저으며 눈발로 등성이를 내리 뭉개니 시려 가슴을 웅크려 오므린다. 눈밭에 몸을 숨기니 겨울은 아무래도 못 건넌다.

 

무덤에 드니 한겨울의 칼바람도 다소곳하다. 찬 기운 오래 일도록 밤새 빚은 눈의 뼈 굳히지 않고, 잠깐 든 햇살에도 모두 삭힌다. 무덤에 몸을 묻으니 겨울은 아무튼지 건넌다.

 

무덤에 들어 겨울을 건너니 느닷없는 봄이 오고, 드디어 무덤마저 다 벗는다.

 

 

 

 

오늘은

 

 

오늘은 꿈이 자살처럼 솟는 날이다

오늘은 꽃이 기절처럼 터지는 날이다

오늘은 봄이 비명처럼 틔는 날이다

오늘은 저 먼 길의 끝을 당겨

 

우뚝, 절벽을 세운 날이다

짧고 뜨거운 봄 여름 가을 꿈결인 듯 지나쳐

차고 거친 긴 겨울을 문득, 덥석, 안은 날이다

돈에 휩쓸려 애써 잊은 만성두통을 찾은 날이다

 

우리 미처 잠을 다 깨지 않은 날이다

우리 미처 봉오리를 다 빚지 않은 날이다

우리 미처 화음을 다 맞추지 않은 날이다

당긴다고 당겨온 길의 끝이 벼락처럼 꺼져

오가는 길 모두 돈처럼 가르는 날이다

 

오늘은 잠도 꿈도 아닌 잠에서 깨어

다시 깊은 잠을 자는 날이다

올곧은 꿈을 꾸는 날이다

사철 숨과 숨을 이어 환하게 터지는 꽃

다시 씨앗을 뿌리는 날이다

오래 함께 환호하며 부를 봄노래

다시 목청을 가다듬는 날이다

 

꿈이 이미 자살처럼은 솟지 않는 날이다

꽃이 이미 기절처럼은 터지지 않는 날이다

봄이 이미 비명처럼은 틔지 않는 날이다

돈으로 일찍 늙힌 민주 회춘하여

오늘은 굽은 머리카락 허리 펴는 날이다 이런,

생각을 자꾸 해보는 날이다

 

 

 

 

심사평

리토피아를 지탱하는 나무

 

남태식 시인은 리토피아 창간 시절에서부터 리토피아를 지켜온 시인이다. 리토피아가 특별한 문예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그가 나와의 개인적인 인연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가 이제 리토피아를 지탱하는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 그는 변함없는 심성과는 달리 시에 있어서는 끊임없이 변화를 보여주는 시인이며, 이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정도의 탄탄한 경지에 이르러 있다. 작품 활동 역시 휴식기 없이 왕성하게 지속하고 있으며, 지난 2011년에도 그는 적지 않은 작품을 발표했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타작이 없다. 비록 리토피아문학상이 그에게 별다른 힘을 실어주거나 격려가 되어주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이제 리토피아문학상 수상과 함께 그가 한국시단의 거목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심사위원 고명철, 장종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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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무덤의 시를 씁니다

 

오랫동안 무덤가를 서성이고 있습니다. 무덤가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하고, 꿈을 꾸고, 시를 씁니다. 애써 무덤가를 떠나라, 떠나라, 언제나 속삭이는 삶을 위하여 언제나 무덤가를 떠나지만, 또 번번이 다시 무덤가로 돌아와 술을 마시고, 노래를 하고, 꿈을 꾸고, 시를 씁니다. 느껴서 떠나고 돌아오기

도 하지만, 모르는 사이 떠났다가 돌아오기도 합니다. 이 무덤가에서 마시는 술은 무덤의 술입니다. 이 무덤가에서 부르는 노래는 무덤의 노래입니다. 이 무덤가에서 꾸는 꿈은 무덤의 꿈입니다. 해서 이 무덤가에서 쓰는 시는 당연 무덤의 시입니다.

언제부터 이 무덤가에 머물렀을까, 언제부터 이 무덤가를 떠났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을까, 생각해봅니다. 두 번째 시집인 <내 슬픈 전설의 그 뱀>을 내고 난 뒤인 것 같기도 하고, 그 이전 내기로 결정한 때쯤인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님, 어쩌면 처음부터 이 무덤가에서 태어나, 한 번도 이 무덤가를 떠나 본 적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 이전 무덤가에 대한 기억과 반복해서 무덤가를 떠나고 돌아온 기억이 없는 것은, 애초부터 없는 기억이 아니라 애써 지운 기억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지운 기억은 지운 기억일 뿐 어떠한 경우에도 없는 기억은 아닙니다.

오늘도 무덤가를 서성이고 있습니다. 서성이며 시를 씁니다. 몸은 때로 이 무덤가를 착각처럼 떠나 바쁘게 세상을 휘젓고 다니는 시간에도, 시만은 고집스럽게 이 무덤가를 서성이게 하고 시를 씁니다. 무덤의 술을 마시며, 무덤의 노래를 하며, 무덤의 꿈을 꾸며, 시를 씁니다. 당연 무덤의 시를 씁니다. 무덤의 꿈이 되는, 무덤의 노래가 되는, 무덤의 술이 되는, 무덤의 시입니다. 이 무덤가에서는 무덤의 술이 진정입니다. 이 무덤가에서는 무덤의 노래가 진정입니다. 이 무덤가에서는 무덤의 꿈이 진정입니다. 해서 이 무덤가에서는 당연 무덤의 시가 진정입니다.

10여년이 넘는 문학판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을 리토피아와 함께 했습니다. 상을 준다기에 누가 염치를 이야기해도 모른 체 하기로 하고 덥석 받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로 받습니다. 앞으로의 길을 계속 더 함께 가자는 악수로 받습니다. 고맙습니다./수상자 남태식

 

남태식

2003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속살 드러낸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내 슬픈 전설의 그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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