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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봄호)오늘의시인/유병근/통영벅수 외 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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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4,255회 작성일 12-06-22 15:44

본문

유병근 대표시

통영벅수 외 9편

 

 

생각에도 줄기가 있다

엇갈린 다음에 간추려본다

거두절미한다는 말

군더더기란 말, 함부로 주절댄

엉클어진 말의 실타래

갈증에 타는 목이 컬컬하다

햇볕에도 컬컬한 소리가 있다

비와 바람에도 있는 소리를

뒤엉킨 생각으로는 풀 수 없다

처음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질긴 목숨의 길이 자꾸 헷갈린다

길에도 뿌리가 있다는 말

오늘만은 아니다 꾸불꾸불한

덧없는 헷갈림은 좀 지루하다

충무김밥을 찾아가는

선창 길목에 우두커니 선다

 

 

 

 

대표시

요즘은

 

 

쥐똥나무가 낯가림을 한다

하얀 쥐똥꽃이 까만 쥐똥이 되는

허기진 흑백논리

빈 하늘을 구름처럼 머리에 인

저문 고갯길이 멀리 보였다

아무것도 실속 없는 어제 오늘

갈림길에서 어리둥절한 쥐똥나무

허기에도 고만고만한 무게가 있다

혼자 중얼거리다가 돌아갔다

 

 

 

 

대표시

휴일

 

 

화분을 새로 들여 놓는다

낯가림을 한다 할 수 없이 그냥

또 다른 화분을 들여 놓는다

낯을 가리지 않을 때까지

바다라는 이름의 그림을 들여 놓는다

떠나는 물새와 물새의 하늘과

구름은 어디론지 날아가고 없는

낯가림을 하던 것이 보이지 않는

동화책 속의 옛이야기를 들여 놓는다

바닷가 모래밭에 소년이 앉아 있다

구름 한 자락 불러들인다

화분 위에 구름을 꽃처럼 매단다

구름을 따라온 햇볕을 매단다

턱을 괴고 앉아 춘분 가까이

동화책의 소년 속으로 들어간다

 

 

 

 

대표시

떡고물

 

 

내가 건넨 바통은

바닥에 싱겁게 굴러 떨어졌다

굴러가는 바통을 찾아

허리를 굽혔다 바통을 따라

바닥에 굴렀다 흙이 묻은

바통을 집어 들었다

흙이 고물이다 떡고물이다

바통이 굴러 떨어진 자리에

바통고물이 있다는 말이 유효하다

길바닥에 떠도는 시간에게는

길바닥고물이 그럴싸하다

누구도 모르고 나만 아는

아니 나만 모르고 누구나 다 아는

쉬쉬하는 귀엣말이다

바통을 놓친 지난겨울의

눈사람을 안다 떼굴떼굴

눈길을 굴러갈수록 몸 부푸는 덩치

부화뇌동하던 콧수염이었다

 

 

 

 

대표시

까치똥

 

 

책갈피를 넘기는

이 페이지와 저 페이지 사이

나비가 엎드려 있다

드라이풀라워도 아닌 나비의

어수선한 주검 나부랭이

미처 벗어나지 못하고 우물쭈물한

나무 우듬지에 걸린 연을 보았다

발 묶이고 날개 망가진 가오리연의

풍장을 보는 날도 있다

살은 다 뭉그러지고 뼈만 앙상한

나무 우듬지의 상엿집 같은

까치둥지, 책갈피를 넘기는 손에

미라가 된 나비의 몸에서

까치똥 냄새가 나는 날도 있다

 

 

 

 

신작시

기차 발자국

 

 

신문에도 기차가 지나간다

나는 한 장 한 장 기차를 넘긴다

좀처럼 넘어가지 않는 그를

업어치기 한 판으로 끝내는 씨름판을

신문 한 쪽 지면에서 보았다

깨끗했다 불꽃처럼 튀는

모래판 속에서 부딪쳐 깨지는

파도, 태풍이 쓸어간 고요를

손가락에 침 바르며 넘겼다

지나가는 기차 너머로 씨름선수가

왕년의 백두장사가 푸시시 쓰러지고

한 아름을 훨씬 넘는 나무 한 그루

뿌리 채 뽑힌 자리를

기차 발자국처럼 보고 있다

 

 

 

 

신작시

반구대 암각화

 

 

비가 그쳤다 고래는 사라지고 바다 그림자도 좀 드물다 새들이 날아간 언덕이 등을 구부린다 궁금한 기척을 찾아 뒤꿈치를 세운다 고래 몇 마리 저쪽에서 오고 있다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 세 마리가 파도를 밀고 온다 작살에 찍힌 물새울음이 갈앉는다 갈앉는 것과 갈앉지 않는 것 사이를 본다 어제 날아간 물수제비를 본다 이상한 깃털 하나 바다 저쪽에서 오고 있다

 

 

 

 

신작시

어제는 서쪽

 

 

구름은 어쩌다

옛날에 사라진 길목입니다

 

제일 깊은 구름은

제일 깊은 추억의 흔적입니다

 

미처 이름 부르지 못한

옛날은 옛날의 아지랑이입니다

 

모르는 얼굴은

까마득히 스쳐간 표정입니다

 

어제는 바람, 어제는 비, 어제는 서쪽

젖은 해거름에 아득합니다

 

 

 

 

신작시

스틸녹스*

 

 

저수지에 뜬

어둠에 젖은 별을 건진다

건지는 순간 별은 사라지고

어느 틈에서인지

저녁새가 운다

젖은 바람 속에서

오두막을 짓고 있는 내가 보인다

짓다가 도로 무너뜨리는 나

다시 지을 오두막 청사진을 그린다

한 밤중에 잠 뒤척이며

무너뜨린 오두막의 벽 틈서리에서

허깨비 같은

짓무른 눈알을 본다

눈알 속에 잠긴 나를 본다

저수지에 갇힌 어둠은 물새처럼

날개를 털며 떠오른다

스틸녹스 한 알 챙긴다

 

*스틸녹스는 불면증 해소제임.

 

 

 

 

신작시

연주회

 

 

바순과 바순 사이에 북이 끼어든다 크게 숨 돌려보자고 크게 사방을 돌아보자고 심장 깊은 데까지 물갈이해 보자고 북은 바순소리를 조금 더 낯설게 마름질 한다 삼현육각을 마름질 한다 바순소리가 허리를 편다 흩어졌던 소리들이 허리를 편다 뒤늦게 구르는 소리도 있다 턱에 손을 괴고 구석지로 가서 앉는 소리도 있다 소리의 조각을 가만 긁어모은다 뼈를 맞춘 소리는 사부작거리는 그림자를 끌고 온다 끌고 오다가 놓쳐버린다 어쩌나, 나는 길을 잃어버린다

 

 

 

 

산문

적막에도 촉수가 있다

 

 

겨울 숲은 한가하다. 거추장스런 잎과 열매를 다 벗어놓고 비로소 편안한 잠에 들 수 있는 숲은 망중한을 즐기는 은퇴자 같다.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어가는 등에서는 지난 세월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한 단계를 마감하고 새로운 단계에로 뛰어 넘으려는 의지가 보이기도 한다. 천천히 걷는 걸음에는 사색하는 여유가 있다. 겨울 숲은 그것을 은근히 말해 준다.

편안한 잠이라고는 하지만 나무는 다시 계절을 맞이할 요량으로 내부충전을 시도하고 있을 것이다. 그걸 절망이라고 슬쩍 말을 바꾸어 본다. 절망은 새로운 삶으로 지향하는 디딤돌이기 때문이다. 디딤돌 하나를 딛을 때마다 그 디딤돌을 타고 넘어야 하는 고비가 알게 모르게 절망처럼 깔린다.

시를 하면서 시는 하나하나의 디딤돌이라는 생각을 하는 때가 수시로 고개를 든다. 한 편의 시는 하나의 디딤돌이다. 디딤돌은 그 모양과 놓이는 자리가 서로 다르다. 어떤 것은 모가 나고 어떤 것은 둥굴넓쩍한 조형물이다. 어떤 것은 파래를 끼고 있고 어떤 것은 맹숭맹숭한 것이 물을 흘려보내고 있다.

시는 같은 디딤돌을 두 번 밟으려 하지 않는 옹고집으로 찬다. 하기에 시인은 어제의 것은 오늘이 아니라는 완고한 생각으로 시라는 디딤돌을 밟고 시의 경계를 건너 오간다. 그 속에 고뇌가 있고 절망이 있고 새로운 희망이랄까 그런 것 또한 함축된다.

겨울 숲이라고 말할 때 겨울 숲은 이미 사라진다. 새로운 숲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선다. 어제는 미세한 가지 하나가 망가지고 오늘은 그 옆의 가지가 바람을 타고 있다. 얼음장 같은 하늘을 받든 가지 사이로 새들이 날아간다. 숲의 일기가 나날이 달라지듯 숲을 보는 시인의 감각도 나날이 변용의 모습을 띠게 된다.

변화를 아는 숲은 변화를 아는 시학이다.

시는 입으로 쓰는 것이 아닌 눈과 귀로 쓴다고 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다. 눈 속에 오늘의 소재가 모습을 드러내고 귀 속에 오늘의 소리가 끼어든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눈으로 보는 것, 귀에 들리는 것이 아닌 귀로 듣는 것이 시의 길이라고 한다. 함으로 눈과 귀는 시의 길에서 시각과 청각이미지 탐색을 위한 절실한 내시경이 된다.

그렇다고 입과 코를 소홀하게 할 수 없다. 그것은 눈과 귀가 보다 더 원활하고 예민하게 보고 듣는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도우는 일을 한다. 하기에 시의 경우 입과 코는 면상의 가장 밑자리에서 눈과 귀를 위한 일종의 도우미 구실을 한다.

이렇게 얼굴을 뜯어보는 일도 그렇게 무리한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시에 매달리는 경우 시인은 먼지 한 올에서도 시의 줄기를 캐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가시적인 것이다. 이미 상식적인 어투이지만 세계를 깊이 읽으려 하는 시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다. 여느 사람이 놓치고 가는 사물, 여느 사람이 듣지 못한 소리를 듣는 눈과 귀를 갖는다. 시인은 예민한 오감이라는 촉수를 갖는 행운을 누린다.

행운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찾아야 했다. 그런 치열한 노력 끝에 비로소 행운의 열쇠는 손에 닿는다. 겨울 나무숲에서 보고 듣는 소리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짚어보아야 했다.

시가 쉽게 나올 때는 뭔가 불안하다. 그것은 시의 원천이랄까 바탕이랄까 하는 것이 지나치게 얕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쉽게 나온 시는 외면하고 싶다. 시의 아이디어가 쉽게 나온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다. 시는 쉬우면서도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말에 끌려 그냥 쉽게만 쓰고자 했을까. 쉬우면서 감동을 주는 시를 쓰고 싶으면서도 쓰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현대시에는 그런 좋은 작품이 있어 독자들의 총애를 받는다.

현대시라고 말할 때 그것은 현대에 쓴 시라는 말은 아니다. 시의 역사상 가장 오래 남을 수 있는 시가 현대시 아니겠는가. 가령 1930년대의 시가 오늘 현재 가장 입에 오르내린다면 그것은 현대시다. 즉 시공을 초월하는 시가 현대시인 셈이다. 그럼에도 현대시로 인정 받을 수 없는 시를 하고 있는 처지가 절로 난감하고 서글프다.

시의 업을 등에 지고 가는 자가 시인일진대 시에 보다 더 치열해야 했다. 그럼에도 어제 한 발언을 오늘 또 하고 내일도 할 궁색한 일만 저지르고 있으니 따분한 일이다. 보다 더 과감하게 저항하면서 언어를 찾아내고 깨트리고 새롭게 구축할 길을 찾아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시 한 줄이라도 엮을 수 있을 것이다.

시는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을 보고 듣는 새로운 세계탐색이라는 점에서 그 보람을 찾을 수 있다. 더불어 불가능에서 가능성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전제 또한 내세울 수도 있다. 가능성을 찾아가는 길이 시에 내재된 의미라고 볼 때 무릇 시인은 미지의 세계를 찾으려 하는 어기찬 노력가인 셈이다. 개척정신에 의한 산물이 시가 되지 않겠는가. 함으로 시인은 안일을 버려야했다. 고난의 길을 넘고 넘어가는 길에 시가 있고 그 시를 뛰어넘는 곳에 또 다른 시의 세계가 눈을 뜰 것이다.

아직은 미명이다. 미명인 어둠에 매달리는 나를 본다. 어둠은 어둠만이 아니다. 그것은 어둠 너머의 세계를 찾아가는 밝음에의 길이기 때문이다. 하기에 시인은 어둠의 길에서 새로운 어둠을 찾아 촉수를 세우는 탐정가다. 그 촉수에 눈이 있고 그 촉수에 귀가 있다.

허공에 뜬 커다란 적막을 보고 있다. 적막 속에서 적막의 부스러기가 풀려나온다. 기다란 끄나풀이 된 부스러기는 이윽고 나를 낚아챈다. 적막에 먹힌 나는 덩달아 적막이 된다. 적막의 눈, 적막의 귀라고 되풀이해 본다. 적막에도 있음직한 형태를 생각해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적막이 된 내가 어설픈 촉수를 세우고 있다.

벗은 겨울 숲도 예민한 촉수를 세우고 있지 않던가. 그 촉수로 바람을 찾아내고 산새를 찾아내고 구름을 찾아낸다. 겨울 숲은 예민한 시인이다.

 

유병근

197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절차 마침. 시집 <까치똥>, <엔지세상> 외. 최계락문학상, 부산시문화상(문학)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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