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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봄호)미니서사/박금산/그 교사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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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3,224회 작성일 12-11-0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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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산|그 교사는 알고 있다

 

 

1반 담임 교사가 말한다. 여러분은 이제 정상에 오르는 길이 남았습니다. 일찍 일어난 새가 모이를 잡는다고 했습니다. 남들보다 발 빠르게 움직이는 놈이 살아남습니다. 자, 공부들 하십시다.

2반 담임 교사가 말한다. 비오는 날 나비는 어디에 있을까? 날개가 젖으면 어떻게 될까? 너희들은 비오는 날의 나비이다. 나비는 비가 오면 나뭇잎 뒷면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린다. 왜? 날개가 젖으면 날지 못하니까. 남들 모르는 사이에, 숨어서 공부들 많이 하기 바란다.

3반 교생 실습생이 말한다. 오늘 새벽, 잠에서 일찍 깼습니다. 무심코 학교로 나왔습니다. 화단에는 이슬이 내려 있었습니다. 이슬 맞고 방황했을 거리의 친구들, 그 청소년들의 불행을 생각했습니다. 장미 넝쿨 속에서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소나무 가지 사이로 햇살이 비쳐들었습니다. 아침 새들이 땅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새들은 잔디 사이를 부리로 콕콕 찍으면서 자기 깃을 다듬듯 잔디밭을 쓰다듬었습니다. 잠시 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새들의 아침식사였습니다. 부리로 벌레를 집어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벌레에게 조금 미안했습니다. 새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새들이 날아간 자리에 벌레들이 있었습니다. 손을 뻗었더니 그 작은 날벌레들, 도망가지 못했습니다. 이슬에 젖어 날지 못했습니다. 일찍 일어난 새가 모이를 잡는다는 말, 그건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벌레들이 이슬에 갇혀 움직이지 못할 때 사냥을 한다는 요령의 문제였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이유, 여러분들이 짐작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여러분이 주인입니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교사가 말한다. 제군들, 너희는 이제 정상에 오르는 길을 남겨두고 있다. 일찍 일어난 새가 모이를 잡는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나는 너희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높이 날기 바란다. 우리 모두 정상에서 만나자. 교사는 실습생 시절 보았던 화단의 아침을 떠올린다. 그 아침의 감흥을 잊은 것이 아니다. 다만 그는 요령을 터득했을 뿐이고 세월의 이슬에 날개가 젖었을 뿐이다. 사람이 새처럼 살 수 없음을 그는 이제 알고 있다. 시간도 요령의 한 부분이다.

 

박금산∙1972년 여수 출생. 2001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생일선물>,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 연작소설 >바디페인팅> 등. ≪문학웹진ㆍ뿔≫에 장편소설 >고원을 달리는 비행기> 연재. 서울산업대 문예창작학과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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