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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겨울호)권두칼럼/시의 감동/고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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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041회 작성일 12-03-0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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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외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여전히 고달프다. 뉴욕 월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점령occupy 시위에서 한 철학자는 “우리는 ‘높은 수준’의 생활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수준’의 생활을 원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구촌 곳곳에서 변화에의 열망이 물결치고 있다. 기성 권위에 대한 불신을 시발점으로 사회 각 영역에서 혁신의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다.

새삼 문학의 본질을 곱씹어본다. 문학은 ‘현실 속에서 현실 너머’를 꿈꾼다. 문학 작품 속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물론,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는 풍요로운 상상력이 투영되어 있다. 문학은 이 ‘현실과 현실 너머’의 경계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건강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특히, 시는 우리 사회의 ‘맨얼굴’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일상적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새로운 시적 공간을 타진하고 있는 시에서부터, 소비사회의 황량함을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통해 주조鑄造하고 있는 작품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소외된 현실을 독특한 방식으로 포착하는 서정에 이르기까지 그 변주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문제는 행복한 삶을 위협하는 은폐된 요소들을 탐색하고, 고통스럽지만 그 조건들을 끊임없이 환기하는 시적 긴장을 얼마만큼 감당하고 있느냐이다. 개인의 내밀한 욕망의 세계로 침잠하여 좀처럼 외부 세계로 길을 내려하지 않는 우리 시의 일면을 보며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자본의 논리가 우리의 삶을 노골적으로 침윤하는 현실에서, 시인들은 현실/환상, 이성/감성, 생성/소멸, 신념/의혹 등의 틈새에서 흔들리는 정체성을 탐색하고 있다. 이는 자아와 세계, 과거와 현재, 환상과 현실, 욕망과 결핍, 모방과 창조 등의 경계가 무너지는 미지의 영역에 자신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시의 존재조건을 함축하고 있으며,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응전과 더불어 스스로에 대한 비판의 시선 또한 날카롭게 벼려야 한다는 우리 시대 서정의 이중적 과제에 직면케 한다.

시인이 수놓은 마음의 지도는 시적 자아와 세계가 길항拮抗하는 치열한 전장戰場의 기록이다. 시를 감상하는 즐거움은 시인이 그려내는 내면 풍경의 지형도를 전용appropriation하여, 자신의 삶에 포개놓는 내밀한 행위에서 발원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시인과 독자의 지도는 혼종hybrid된다. 이 혼종의 지점이야말로 끝과 시작, 해체와 재구성, 지우기와 쓰기 등이 스미고 짜여 몸을 바꾸는, 서정의 심연을 응시하는 통과제의의 공간인데, 시인과 독자가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역동적인 교감을 갖는 ‘감동’의 장소이다.

이번 호의 기획 특집은 우리 시의 ‘감동’의 문제이다. 특집의 필자들은 “절망을 절망하고 반성을 반성하고 배반을 배반하는” 우리 시의 ‘끊임없는 자기갱신’ 속에서, ‘감동’이 희귀해진 시대의 ‘감동’을 문제 삼고 있다.

떨어질 줄 알면서도 바위를 굴려 올리는 ‘시지포스’의 형벌처럼 무의미해 보이는 행위지만, 이를 기꺼이 감수하며, ‘지금 여기’의 삶을 비추고 불투명한 미래를 밝히는 등불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 시가 있기에, 우리의 삶은 조금씩 풍요로워지는 것이리라. 쓸모없어 보이는 시의 ‘사회적 쓸모’, 그리고 이로 인한 시의 ‘감동’은 그래서 여전히 진행형이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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