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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겨울호)신작시/김상미/해피 버스 데이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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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827회 작성일 12-04-1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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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

해피 버스 데이 외 1편



무엇을 할까? 생일날 아침

미역국을 끓였지만 누구와 먹을까?

어젯밤 처음으로 사온 생일 케이크는 뜯지도 않은 채

대자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왜 나는 다섯 개의 초에 불을 붙이지 못하는가

왜 나는 열정이 샘솟지 않고 탐욕이 들끓지 않는가

적나라하게 케이크 위에 나를 펼쳐놓고

그 위에 뜨겁게 도약의 피를 쏟지 못하는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망망대해

아버지를 어머니를 형제들을 밤새 기다린 아이처럼

춥고 무섭고 막막하고 외로운 생일날 아침

장화 신은 귀여운 고양이는 이런 날 왜 내게로 오지 않고

해피 버스 데이♬~

그 흔한 노래 한 곡 불러주지 않는가


사유의 식욕을 채우듯 후루룩 미역국을 목으로 넘기며

아무 맛도 아무 냄새도 없는 내 시린 뼈를 안고

나는 내가 태어난 날을 달군다


시곗바늘이 나를 재촉하고

나는 혹시나 뒤처질까 앞으로 달려간다

속도를 달리해 달리는 자전거처럼 그 푸른 자전거 바퀴들처럼

더 빨리 더 빠르게 늙어버린 한 아이가 되어

그저 계속되고 계속되는 해피 버스 데이,

그 마지막 봄날의 아지랑이 속으로 





백색 글쓰기



몇 번이나 고쳐 쓴 시

그 사이 비바람은 그치고

나는 다시금 언어에게 언어를 구걸한다


그냥 쓰면 될 것을

인정받고 싶다는 그 잔혹서를 다시 써내려 간다

무엇을 위해?

그 누구를 위해?


시간을 지우고 공간을 지우고 나를 지우고

마치 보이지 않는 시가 나를 두드려 팬 것처럼

온몸에 난 핏자국

언어만 남긴다


진실은 언제나 말이 없고

쉴 새 없이 신음을 토해내는 거짓

아무런 다툼도 주고받는 말도 없이

어떤 식으로든 무한정 고칠 수 있는

너와 나의 관계


가슴 가득 칭얼대는 독버섯을 넣고

흔적 없이 지나치는 유행처럼

몇 번이나 고쳐 쓰고 또 고쳐 쓰는

온몸에 난 핏자국


너무 이르거나 혹은 때 늦은 백색 글쓰기

인정받는다는 것은 냉혹한 것이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진실도

비바람이 불면 붉은 먼지가 되어 일어나듯이



김상미∙부산 출생, 1990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 떼>, <잡히지 않는 나비>. 박인환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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