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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겨울호)신작시/문정영/방심方心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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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036회 작성일 12-04-10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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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영

방심方心 외 1편



아흔 한 살 해녀의 방, 방심方心이란 글귀를 써놓고 그녀는 둥근 마음이라 읽고 있다. 그녀의 살아온 날들이 둥글게 말려간다. 거친 호흡으로 물밑을 헤엄치며 둥근 마음 안으로 들어선다.

그녀는 바다에 묻은 두 아들의 기억을 지우느라 방심하며 산다. 마당에 널어놓은 미역줄기만 십오 년 전 격랑처럼 파삭거린다.

방심이란 실수로 길을 잘못 드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촘촘한 그물 치는 대신 풀어 놓고 사는 법을 그녀는 진즉 안 것이다. 한껏 방심에 들어야만 모든 것이 풀린다. 아무 생각 없어야 저 뜻으로 살까.

방심放心을 방심方心으로 잘못 쓴 한자어도 둥근 마음에서는 같은 비유어이리라.





열흘 나비



내가 알지 못한 생을 살았다는 이유로 나의 별에서 추방당했다.


사흘은 저장된 양분으로 별의 가장자리를 날곤 했다.


처음 날아본 하늘은 제비꽃 냄새가 났다.


서투른 날갯짓이 개여울 울음소리 같았다.


내 날개에 언뜻 핏자국이 보이다가 사라졌다.


다시 선명한 대동맥 같은 날갯짓 소리.


나는 칠월의 토마토처럼 햇빛에 터져버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 이미 날개 한 쪽은 기능하지 못하였고, 칠일을 버틴다는 것은 무리였다.


하늘에서 레몬에 담근 각설탕 태운 냄새가 났다.


책을 읽으면 그 책의 빛을 가져오고 싶은 때가 있었다.


그 빛이 사람의 그림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나비는 죽기 전에 날개를 모은다.


날아보지 못한 세상을 그 안에 담는다.


내가 살다간 열흘은 그 별에는 기록되지 않았다.


아무 냄새도 없었다.




문정영∙1997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외. 계간 ≪시산맥≫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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