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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겨울호)신작시/이정/젊은 햇볕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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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
젊은 햇볕 외 1편
(……가는 생가지 끝에 앉은 당신 누구요? 오솔길 깊은 쪽에서 어렴풋이 소리가 들려왔다 새에게 하는 소린가? 바람의 말인가 나 말이오? 예 있소! 나 아직 늙지 않았소! 하며 늙은 나를 외면하는 그에게 동문서답, 언젠가, 사십은 좋이 되었음직한 여인이라 번역한 문장이 주체할 수 없이 우습던 그 때가 생각나는, 오늘)
…… 젊으나 젊은 햇볕은 내 앞에서 충만하다 생각지 못한 그가 찾아오다니, 낯설어 반가워할 수도 없이 엉거주춤 이거 참, 오랜만이오 하며 악수 한 번 청해보지 못한 소심쟁이가
……올 것이 드디어 왔는가 때가 되면 오겠다던 그. ‘우물쭈물하다 내 이리 될 줄 알았다’는 어느 극작가의 묘비명처럼
……혼자 식사를 하는데 수저의 움직임이 묘지까지 이어지는 것이었다 묘 속의 내가 찾아 온 이를 반기며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사는 일 바쁠 터인데 예까지 와주어서 고맙다”고
사마귀 한 끼 식사
메뚜기가 늙으면 송장메뚜기 된다지요
가을이 담벼락 햇볕 쬐고 있는 때
보았지요 누렇게 익은 만삭의 몸
송장사마귀를
―나를 다치지 마시오!
건들면 죽어!
무장도 방어도 다 풀어 두고
턱주가리 돌려 메뚜기 한 마리 야금야금
갉아 치우는 것을
그 때,
그 눈의 창유리 밖에 어둠만 떨고 있었는데,
그 날, 한 늙은텡이
슬픔을 배불리고 있었는데,
이정∙2003년 ≪시와 정신≫으로 등단. 시집 <누가 내 식탁들을 흔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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