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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겨울호)신작시/이진희/어디나 천사*들이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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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4,131회 작성일 12-04-10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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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

어디나 천사*들이 외 1편



한 천사가 허공에 떠 있다

날개 없이 여백 없이 몇 백 일째


이상한 빛깔의 봄 여름 가을이 가고

겨울의 싸늘한 혀가 그의 발등을 덮으려 한다

그들의 싸늘한 손이

그와 그의 이웃들의 존재를 덮으려 한다


지치고 피로한 노동자들과 사랑에 빠지라*

머리가 세고 밤이 새도록

사다리를 치우고

그는 이미 지독한 사랑에 빠져 있으니

영혼이 수은거울처럼 창백한 이들, 그들이 내쫓은 사람들과

보일러처럼 켜지 않은 보일러처럼 뜨겁게

파랗지만 뜨겁게


그렇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를 통해 전달된 메시지는

사랑


스스로에게 좌절하지 않은 이가

캄캄한 허공으로부터 한 계단 두 계단 마침내 내려올 때

우리와 부지런하고 정직한 이웃의

기쁨은 물론

슬픔과 고통이 더욱 거세어질 것이다

미래이기에 현재이며 복잡하지만 고귀한 감정들

스스로를 올바로 사랑하고

모든 이웃을 오래 위로하는

어려운 일


어디나 천사들이 살고 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영혼을 파괴하고 혹사하려는 그들과 함께

투박하고 거친 손, 노동을 사랑하는 천사들

살아 있다



*앙겔로스angelos, 전달자.

*2011년 10월 9일 뉴욕 주코티 공원, S. 지젝의 연설문 중에서.






적과 친구



마법의 두꺼비가 피 묻은 단도를 물고는

펑, 하고 사라져 버리길


저의 죽음이 예고된 봉인 편지를

제 발로 신속하게 전달하게 하는 일


증오에서 뽑아낸 피의 잔을 어처구니없이 엎지르고 나서

훔친 보석을 선물하곤 답례를 기다리는 일


한 손으로는 유리공처럼 텅 빈 구원을

나머지 손으로는 돌멩이 같은 단단한 파멸을 바라면서도

기도의 내용을 감추는 일

그를 위해 기도했다고만 알리는 일


서리 낀 창가에 서서

봄이 막 도착한 정원을 파헤치라고 명령하는 일


스스로 고통스러워하는 당신을 모욕하고는

그걸 견디는 당신이라야만 사랑하겠다고

맹세하는 일



이진희∙2006년 ≪문학수첩≫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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