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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겨울호)신작시/박정이/구름의 시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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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820회 작성일 12-04-10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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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이

구름의 시간 외 1편



닫힌 마음을 활짝 열어젖히며

눈부신 햇빛으로

엉겨 붙은 그녀의 어둔 세포를 닦아낸다

그녀의 등허리에 뒤채이던 어스름한 회색 빛깔

공해처럼 매달리던 매연을 동강난 뿌연 거울조각으로

투정 섞어 날려 보내지만

그녀는 허공만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며 더듬어 가고 있다

그래도 웅크린 침묵은 좀처럼 꼼짝하려 하지 않았다

햇빛의 몸을 이끌어 내어 바람의 숨소리를 불어 넣었지만

이미 부서져버린 그녀는 소리를 지를 뿐

낡은 사진을 꺼내보듯 머리만 만지작거리며

무성영화의 그것과 엇부비었다.

그녀는 뇌의 층계를 다시 밟아가고 있다

잘린 상처 때문일까

바람은 절벽의 등을 안쓰럽게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아득한 먼 추억은 기억하면서도

현실에서 가까운 것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바람의 극성스런 것들은 할퀴고 간

뇌성의 소리마저 삼켜버리고

우물가에 있는 그것은 숨 배어있었다

모두들 유연한 생각으로 침묵을 떨쳐 버리려는

방법을 배우려고

산의 목덜미에서 꿈틀거리고 있을 때

숨을 쉬는 자유의 바람결이 출렁이고 있었다

답답하고 응축된 마음도 조금씩 일렁이고

그녀는 어느새 생동감으로 걸음마를 하고 있었다.






태초의 무대, 1막1장



내 몸속의 최초의 파동은

자궁 속에 있는 어두운 강에서 시작되었다

오랜 기다림으로 키워온 말들

그 속에서 바람의 태동으로 빛이 없는

무언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하늘은 늘 거울도 없이

이상한 분장을 하고 검게 멍들어 있었다

소리 없는 것들은

무대의 깊숙한 곳에서 적막을 가르고

작은 생명체의 둘레에서

가녀린 춤사위로 이따금 꿈틀거렸다

나는 허물어진 심장에서

기어오르는 소리만 낼뿐

고통과 두려움, 그 끝에 서 있었다

가슴을 덥히고 마음의 근육을 만들고

잉태의 환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 천상의 신비로 장식할 새로움을

제 1막1장의 무대에 올렸다 



박정이∙2009년 <경남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파도는 죽었어도> 외. 수필집 <가을 구름새>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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