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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겨울호)신작시/임서령/억새꽃 피었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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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934회 작성일 12-04-10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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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서령

억새꽃 피었다 외 1편



지금 부평역사 광장은 억새밭이다

 

오전 열한 시

구수한 밥내가 역 광장에 내려앉으면

지하도 계단 빼곡히

하얗게 머리가 센 억새꽃 남실댄다

 

나무뿌리처럼 불거진 힘줄

거무죽죽 갈퀴 같은,

한때 저 억센 손으로 세상을 감아

쥐고 흔들던 때가 있었건만

 

바람에 대책 없이 흔들리던

빈 대궁을 돌아나오는 외로움이

급하게 식판을 삼킨다

 

먹어도 먹어도 헛헛한

저 질긴 꽃

밥으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억새의 하얀 빛깔에는

왈칵 솟구치는 허기가 있다






은혼銀婚이 지나는 동안

 

 

홈플러스에서 장을 본다.

구매 금액에 따라 주는 스티커를

종이판에 붙여 오면 수입 냄비나 프라이팬을 준단다

 

수저 두 벌, 공기 대접 두 벌,

밥솥 하나 국솥 하나가 전부였던 신혼

고등어지짐을 좋아하는 각시는 날마다 김치찌개를 끓였다

하나 밖에 없는 국솥은 언제나 신랑이 좋아하는 찌개를 담고 보글거렸다

닷새를 콩나물국으로 때우고서야 석유곤로 위에 올라앉은 

반짝반짝 빛나는 천 원짜리 양은냄비

어린 각시는 묵은지 넣고 푹 지진 고등어지짐 한 냄비를 맛나게 해치웠다

아랫배가 도도록 불러오고, 식구가 늘어났고, 집의 평수가 늘었다

크고 작은 냄비도 여덟 개로 늘었다

 

사이좋게 이마를 맞대고 스티커를 한 장씩 붙인다

“젤로 좋은 냄비를 타 와서 거기엔 당신이 먹고 싶은 것만 끓여 먹구려

나도 아이들도 말고 당신만을 위한 걸로”

 

귀밑머리 희어진 신랑

‘참 잘 했어요’ 도장 찍듯, 스티커를 꾸욱 눌러 붙인다



임서령∙2010년 ≪시와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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