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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겨울호)신작시/황인찬/입장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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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7,305회 작성일 12-04-10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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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입장 외 1편



물 위의 빙판이 좁아지려고 한다


어느 오후의 실내 수영장, 차례로 줄지어 입수하는 남자애들의 끝에 내가 있었다 잔뜩 긴장해서, 앙상한 몸을 겨우 진정시키며, 하나하나 물속으로 사라지는 남자애들을 보는 내가 있었다


목숨에 직결되는 일이니까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는 선생님과 추위 탓에 보랏빛이 도는 남자애들의 젖꼭지가 따로 놀았고 그때는 거기에 합류하지 못하는 내가 있었다


또 어느 오후엔 이런 일도 있었다 전력으로 헤엄치다 얼굴이 창백해진 남자애들이 있고, 그 중 하나가 무심코 위를 올려보다 혼절하여 실려 간 일을 다음 주에나 듣게 되는 내가 있었던


나는 보라색 꽃이라곤 제비꽃 밖에 몰랐다

그런데 남자애 하나가 보라색 꽃을 들어 보이며 이게 뭐냐고 묻던 오후도 있었다 거기에 제비꽃이라 답하는 내가 있었고,


남자애들이 돌아오지 않고, 앙상함이 돌아오지 않고, 보랏빛이 돌아오지 않는 그런 오후의 내가 있었다


어느 오후의 실내 수영장, 도무지 사라지지 않고 혼자 회전하면서 서서히 좁아지는 오후도 있었다 






혼자서 본 영화



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그와 영화를 봤다


그건 일상의 슬픔과 고독에 대한 영화였고,

가는 비가 내리는 장면이 너무 많았다


지나치게 절제된 배우의 연기가 계속되었다 그건

내 인생을 베낀 각본에 의한 것이었다

파르르 떨리는 배우의 눈썹이 화면을 가득 채웠고


영화가 끝나자 스탭롤이 올라갔다 그는 죽어가는

군인이 휘파람을 불 때 조금 울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영화에는 그런 장면이 없었고,

내가 말해도 그는 믿지 않았다


그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저 멀리서

비옷을 입은 아이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황인찬∙안양 출생. 201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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