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43호(가을호)책 크리틱/동행의 미학/김승기 시집 '역'/진순애
페이지 정보

본문
43호(가을호)책 크리틱/동행의 미학/김승기 시집 '역'/진순애
1. 낯선 시간 속에서 꿈꾸는 동행의 밀어
김승기의 최근 시집 역(2011. 6)은 삶이 낯선 시간, 낯선 길 위에 내던져진 채 누군가와 함께 혹은 무엇인가와 함께 그 낯선 것들을 녹여가는 동행의 과정이라는 것을 은밀히 표상하고 있다. 김승기의 시적 발현은 이와 같은 그의 삶에 대한 태도에서 혹은 이와 같은 그의 체험에서 비롯되고 있어서, 단지 시를 위한 상상력을 넘어서 그의 실제가 구축한 상상력이라는 점이 돋보인다. 그의 ‘역’은 삶이라는 낯선 시간 중의 지점들일 수도 있겠고, 낯선 길 위의 상처와 고통과 슬픔들일 수도 있겠다. 낯선 누군가와의 만남이 ‘역’으로 은유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며, 낯선 세상의 모든 것이 낯설면서도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는 ‘역’으로 이중적 혹은 다중적인 은유로 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낯선 세상의 모든 역은 시간과의 만남, 인식의 만남 속에서 동행의 밀어로 채워지며 김승기 시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어서 그의 시학을 다채롭게 한다. 삶이란 혹은 존재하는 것이란 만남에서 출발한다는 동행의 시학이다. 누군들 이와 같은 만남의 삶과 무관할 수는 없을 것이나 동행의 시학이 김승기만의 시적 표상성으로 특징적인 까닭은 포착된 모든 것을, 그리고 헐벗고 추락하며 상처를 내는 실제를 그가 포용하는 데 있다. 호불호에 따라 취사선택한 대상이 아닌 것이다. 때문에 동행의식은 그의 과거와 현재, 너와 나를 이어주는 가교이며 현재를 극복하고 미래 또한 꿈꾸게 하는 은밀한 가교라는 데 김승기의 시적 특장으로 작용하는 까닭이 있다. 김승기의 동행의식은 외적인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안과 밖이 교류하며 어둠과 빛이 교류하고 과거, 현재, 미래가 교류하는 그의 실존적 면모이자 어둠과 상처와 남루함을 포용하는 그의 세계관을 은유한다. 이는 고통스런 삶의 철책들을 뚫고 나오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며 어둠 속에서 빛의 길에 이르도록 인도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표내지 않는 은밀한 힘이다.
나목裸木이
무너지듯 기댄다
옆에 있던 헐벗음이
그 무게를 온전히 받는다
자신도 고개 떨구고
못내 같이 기댄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서로의 상처를 핥고
그렇게 겨우
새살 돋은 아침
자신의 무게를 빼내어 절룩절룩
다시 세우는 길
그래그래, 뒤돌아보지 않기
자꾸 돌아보며 울지 않기
―「동행」 전문
‘무너지는 나목’과 ‘헐벗음’이 서로를 기대는 ‘동행’은 일견 너와 나인 두 사람 간의 만남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멀리 벗어나고 있어서 낯선 시간을 건너는 김승기 시의 신선한 시야를 대변한다. 나목은 무너지고 무너지는 나목을 온전히 받아주는 것은 헐벗음뿐이라는 동병상련 같은 삶의 좌표에 김승기의 시선이 이르는 까닭은 ‘서로의 상처’에 있으며, 이와 같은 동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외적 만남을 넘어 내적 만남으로 확장하는 데 있다. ‘둘은 서로의 상처를 핥고, 그렇게 새살 돋은 아침에 다시 새우는 길’을 위하여 ‘무너지는 나목’과 그를 온전히 받는 ‘헐벗음’이 동행하며, 더욱이 ‘그러해야 한다’는 김승기의 무언의 신념이 견고하게 뒷받침되고 있다. 그것은 낯선 시간의 역을 건너는 친밀하고 은밀한 동행의 길이자 궁극에는 상처의 치유에 이른다는 메시지를 동반한다.
내가 추락할 때는 항상 네가 있었어. 너를 본 적은 없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을 만큼에서 늘 나를 받아주었어. 언제나 미안하고 고마웠는데, 오늘 보니 너는 바로 나였어. 나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느라고 움푹 파인 곳. 나보다 먼저 겁에 질리고, 나보다 먼저 일어나고, 나 보다 먼저 달려갔을, 그 가파름이 기둥 되기까지, 튼튼한 마루 되기까지.
그 시간을 쓰다듬네. 파인 곳 다시 아파서 자꾸만 자꾸만 쓰다듬네.
―「바닥」 전문
김승기에게 낯선 것은 낯설지 않다. 그것은 ‘너를 본 적은 없지만, 내가 추락할 때는 항상 네가 있었기’ 때문이고, ‘다시 일어날 수 있을 만큼에서 늘 나를 받아주었기’ 때문이라는 동행의식에서 비롯된다. ‘바닥’이라는 ‘너’는 바로 ‘나’의 다른 모습이며 그것은 상처의 다른 얼굴이다. 그러나 그 상처는 상처에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기둥 되고 튼튼한 마루가 되어서 그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근원’으로써 극복의 힘으로 탈바꿈한다. 어둠이 빛의 근원인 것처럼 존재란 변신이고, 변화하며 동행하는 까닭이다.
이처럼 김승기에게 낯선 것이 낯설지 않은 까닭은 “나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느라고 움푹 파인 곳. 나보다 먼저 겁에 질리고, 나보다 먼저 일어나고, 나 보다 먼저 달려갔을 그 가파름”이라는 동행의식에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돌아오는 것은 영원한 추락일 것이라는 신념의 버팀목이다. 그러므로 ‘파인 곳 다시 아파서 자꾸만 쓰다듬는다’는 그의 밀어는 고통과 희망이 교류하며 빚어진다. 고통스런 바닥인 낯선 역은 오히려 꿈조차 꾸게 하는 고통의 동행을 은유한다.
2. 희망과 동행하는 낯선 시간
잎사귀 하나가
가지를 놓는다
한 세월 그냥 버티다보면
덩달아 뿌리 내려
나무가 될 줄 알았다
기적이 운다
꿈속까지 따라와 서성댄다
세상은 다시 모두 역일 뿐이다
희미한 불빛 아래
비껴가는 차창을 바라보다가
가파른 속도에 지친 눈길
겨우 기댄다
잎사귀 하나가
기어이 또
가지를 놓는다
―「역驛」 전문
‘기댄다’는 기호는 김승기의 포용의 세계관을 은유하면서 동행의 시학을 대변하는 기표다. 나목이 헐벗음에 기대고 둘은 서로의 상처에 기대고 추락과 바닥이 기대고 가파름이 기둥과 기대듯이 잎사귀는 나뭇가지에 기댄다. 아니 그렇게 ‘기대야만’ 하는 것이 존재의 근원적 원리라는 깨달음을 김승기 시는 희망의 동행으로 은밀히 표상한다. ‘나뭇가지는 잎사귀 하나에서 비롯되며, 한 세월 버티게 하는 근원이고, 궁극에는 뿌리내려 나무가 된다’는 신선한 상상력이다.
흔히 나무의 근원이 뿌리에 있다는 인식을 뒤집고 ‘잎사귀 하나’에 있다는 신선함은 낯선 시간의 역 위에 걸린 희망의 잎사귀를 꿰뚫는다. 희망의 잎사귀가 있어서 가지도 뿌리도 궁극에는 나무도 가능하다는 것은 ‘꿈속까지 따라와 서성대며 우는 기적’과 같다는 인식이며 존재한다는 일은 희망의 잎사귀에 내재된 기적과 같은 일이라는 김승기만의 남다른 인식이다. 그래서 낯선 시간의 역 위에서 서성이며 지친 시인의 시선도 지친 시선을 내려놓고 고된 시간의 철로 상에서 짧은 안식에 이를 수 있다.
막다른 골목에 서면 세상은 언제나 신기루 같은 길 하나 열어 놓더라. 약시弱視의 내 손에 낭만의 크레파스 한 통 강제로 들려주더라.
일단 붉은 양귀비즙에 취한 듯 하늘은 넓고 푸르게, 될 수 있으면 포복해 있는 어둠은 숨기고 살모사 같은 원색으로, 희미해지는 시야는 굵은 선으로, 길 끝에는 무지개를 세워두는 거야.
까치발 같은 이 마지막 방어선이 허물어지면 낯선 하루가 서 있곤 하더라.
―「희망이라는 것」 전문
삶은 '막다른 골목'과 마주하고 있는 것과 같은 때를 자주 만나게 한다. 이때야말로 낯선 시간의 낯섦이 더욱더 깊어지고 깊어지리라. 그러나 그 막다른 골목에서 ‘신기루 같은 길 하나’ 열려있다는 희망의 동행은 ‘약시의 손에 낭만의 크레파스 한 통 강제로 들려주는 것’과 같은 힘으로 작용한다. 비록 강제로 들려진 ‘낭만의 크레파스 한 통’일지라도, 그리고 ‘까치발 같은 마지막 방어선’일지라도 이와 같은 희망의 동행이 있어서 ‘하늘은 넓고 푸르며 길 끝에는 무지개’를 세워둘 수도 있고 낯설면서도 꿈이 익어가는 낯익은 시간이 열린다. 그렇지 않고서야 삶은 낯익은 시간조차 낯선 시간이 되게 하는 끝없는 절망의 역일 것이라는 역설을 읽는다.
3. 사랑이라는 적극적 동행
사랑이란
골백번 사랑한다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쓸쓸한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그곳에 욕심 없는 작은 집을 짓고
서로를 향해 한껏 크고 겸손한 창窓을 다는 것이다
항시 불이 켜져 너무 환한 그 집
마침내 그렇게 서로의 밝은 언어가 되는 것이다
그 언어로 꿈을 꾸고 맑은 생각이 되고
온전히 그렇게 누구의
미래가 되는 것이다
―「밀어密語」 전문
“사랑이란 그 사람의 쓸쓸한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그곳에 욕심 없는 작은 집을 짓고 서로를 향해 한껏 크고 겸손한 창을 다는 것, 서로의 밝은 언어가 되는 것, 그 언어로 꿈을 꾸고 맑은 생각이 되고 온전히 그렇게 서로의 미래가 되는 것”이라는 사랑에 대한 정의에서 ‘기댄다’는 기표 외에 ‘사랑’이라는 또 다른 김승기의 동행의 기표를 만난다.
사랑은 ‘골백번 사랑한다 말하는 것’을 초월하는 은밀한 힘에 있다는 김승기의 지적은 그의 포용의 세계관에 대한 또 다른 은유이자 ‘기댄다’를 확장한다. 적극적 동행은 ‘그 사람의 쓸쓸한 시간’ 속으로 적극적으로 걸어 들어가야 비로소 열리는 길이며 낯선 시간을 극복하는 ‘나와의 동행’을 넘어서 누군가의 낯선 시간 속으로 찾아들어가 그 누군가를 위해 동행이 ‘되어주는’ 실천이다. 이때에야 보다 적극적 동행에 이른다. 사랑이라는 적극적 동행은 ‘나’를 극복하는 동행을 넘어 ‘너의 쓸쓸함’을 찾아가는 실천이고 포용이다.
마흔 살,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나이
대책 없이 운다
얼마 전에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십 년 된 강아지마저 죽었다고
이별을 운다
저 울음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단 말인가
앞으로도 울 날이 많을 텐데
종국엔 자신도 누구의 울음이 되고 말 텐데
울음엔 항상 속수무책이다
휴지를 빼준다
휴지나
빼준다
―「휴지 빼주는 남자-진료일 일지」 전문
사랑하는 대상이 누군가에 따라서 김승기의 적극적 동행은 여러 갈래로 나눌 수 있으리라. 가령 ‘누군가의 울음을 위해 무엇을 해 주어야 한다’처럼 치료를 위한 의무가 동반된 사랑도 있다. 비록 사랑할 수 있는 일이 ‘휴지나 빼주는 일’밖에 없을지라도, 그것 또한 적극적 동행인 사랑의 실천이다. 서로를 향한 쌍방 간의 사랑이 아니라 일방적인 관계로 형성된 사랑일지라도 이 또한 ‘그 사람의 쓸쓸한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은 사랑이며, ‘그 사람의 밝은 언어가 되는 것’과 같은 사랑이고, ‘그 사람의 미래가 되는 것’과 같은 사랑이다. 적극적 동행인 사랑의 실천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낯선 시간 속에 내던져진 우리에게, 더욱이 진료실을 찾아든 상처입은 영혼에게 사랑의 동행이야말로 희망을 안고 꿈을 찾아가게 하는 적극적 치료이다.
‘나의 상처와의 동행’이 ‘너의 상처와도 동행해야 한다’로 확장되는 김승기의 동행의 시학에서 시를 통해서만이 그 시인의 본연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신선한 감동을 새삼 확인한다. 낯선 시간의 역에서 빚어지는 상처의 만남이 아니고서야 낯선 시간을 건널 수 없다는 김승기의 무언의 신념은 낯선 역에서 맞닥뜨린 쓸쓸한 두려움을 걷어가는 은밀한 힘이다.
- 이전글43호(가을호)책 크리틱/사랑의 소모성, 표상공간 구축 반복(충동) 전말/유형진시집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장이지 11.12.31
- 다음글43호(가을호)흐름 진단/특이점과 영겁회귀/박찬일 11.12.3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