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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가을호)미니서사/살려는 본능과 의지에 대하여/박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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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116회 작성일 11-12-31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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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서사/살려는 본능과 의지에 대하여/박금산

 

 

차가 횡단보도 정지선 앞에 멈춰 선다. 직선 도로는 비어 있다. 노란 신호등이 운전수의 발을 브레이크 페달로 옮기게 만들었다. 운전수는 바로 앞의 신호기를 바라보다가 다음번에 지나쳐야 하는 먼 곳의 신호기 쪽으로 눈길을 옮긴다. 그의 턱이 약간 올라간다. 일종의 버릇이다. 먼 곳을 쳐다보려 할 때면 그의 눈길에 비탈진 경사로가 생긴다.

가까운 신호기와 먼 신호기 둘 다에서 노란 등이 꺼지고 붉은 등이 살아난다. 버스는 45인승. 승객들은 퇴근중이다. 빌딩은 들쭉날쭉하다. 어떤 것은 네모난 식빵, 어떤 것은 끝이 뾰족한 칼을 닮았다. 도로는 빌딩 사이에 갇혀 가지런하다. 신호기는 허공에 부양浮揚한 채 빛으로 차들을 걸러낸다.


운전수는 신에게 요구하듯 신호기를 향해 존댓말을 보낸다. 내가 아는 것 중에서 가장 멋진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이 없으면 나는 계속 달려야 할 겁니다. 그러다 터져버리겠죠. 엔진과 함께 말입니다. 그렇

게 달리는 것은 제 꿈이 아닙니다. 운전수는 보온병 뚜껑을 연다. 집에서 담아온 액체를 마신다. 투명하고 냄새 없는 독주이다.

그는 세상이 멈추기를 바란다. 하지만 붉은 등을 바라보고 서 있자면 언제나 푸른 등에 빛이 들어올 순간이 기다려진다. 달리다 보면 멈추고 싶고 멈춰 있으면 변하고 싶다. 운전수는 죽은 사람의 몸을 떠올린다. 붉은 피를 토하고 죽은 몸에 푸른 멍이 속으로부터 솟아오르면 온몸은 검게 변한다. 그는 믿고 있다. 삶이 바뀌면 죽음도 바뀔 것이라고. 죽음이 바뀌면 삶 역시 지금처럼 억지스럽지는 않게 될 것이라고.

하나를 바꾸면 모두가 달라진다. 삶은 언제쯤 바뀔 것인가. 그러므로, 그러므로, 그는 죽음을 바꾸기로 한다. 그는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버스가 나와 당신의 머릿속으로 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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