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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가을호)윤의섭의 포에티카/시의 끝맺음에 대하여/윤의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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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의섭의 포에티카/시의 끝맺음에 대하여/윤의섭
한 행으로 이루어진 시라 하더라도 그 한 행이 곧 시의 처음이자 끝 부분이 되는 것이다. 시의 끝맺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시를 제대로 끝맺기 위해 고민하던 경험이 다른 무엇보다 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시를 제대로 끝맺는다는 것은 시의 완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과정이므로 결코 개인적인 관심사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시의 끝맺음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편의상 조금은 딱딱한 용어겠지만 시를 끝맺는 방식을 ‘시의 종결 방식’이라고 지칭하기로 한다.
시를 종결짓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능에 있어서는 대개의 경우 전개되던 시상을 집약하고 시 전체의 의미와 의도를 고양시키려는 데 있다. 그 결과 시의 완결성, 안정성, 결정성 등이 획득될 수 있다. 또한 시를 한 편의 존재론적 사건으로 규정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므로 시의 예술성, 심미성, 독자성, 존재성 등이 종결 행위에 따라 부여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시의 종결은 곧 시를 마주하는 독자의 지평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시를 읽다 종결 부분에 도달한 독자는 시의 의미와 의도가 누적된 종결부를 통해 한 편의 완결된 시의 존재를 의식하게 된다. 독자가 최종적으로, 그리고 시 전체의 지향성을 인식하게 되는 것은 시의 마지막 한 글자를 읽고 나서부터이다. 그러므로 시의 의미 지평과 독자의 인식 지평이 만나는 최초의 지점 역시 시의 종결부이다. 이처럼 시의 종결 행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시의 종결 방식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까. 대표적인 종결 방식으로 우리는 수미상관 방식을 들 수 있다. 시의 처음 부분과 끝 부분이 완전히 같거나 비슷하게 구성되어 있는 이 방식은 많은 시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수미상관 방식은 시의 안정성과 반복으로 인한 의미 강조의 효과를 가져온다. 이때 종결부가 아무리 처음 부분과 똑같이 구성되어 있다하더라도 종결부의 의미나 시적 기능이 같지 않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시의 전개 과정에서 시적 의미와 의도가 누적되어 온 상태에서 독자가 갖는 기대 지평과 맞물려, 그리고 시를 한 편의 작품으로 완결 짓는 역할에 의하여 내적 의미와 기능성이 포괄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미상관 방식 외에 시를 종결짓는 방식은 시인마다, 시 한 편마다 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지만, 그래서 그 유형을 파악하기는 그리 쉽지 않지만 각 시마다 고유한 특징을 보이며 나타나고 있다. 어떠한 시든 예로 들 수 있겠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좀 오래된 시를 예로 들어보기로 한다.
伐木丁丁 이랬거니 아람도리 큰솔이 베혀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멩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좃지 않고 뫼ㅅ새도 울지 않어 깊은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달려 흰 뜻은 한밤 이골을 걸음이랸다? 웃절 중이 여섯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 간뒤 조찰히 늙은 사나히의 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듸랸다 차고 几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 長壽山속 겨울 한밤내―
―정지용, 「長壽山·1」 전문
위 시는 모두 여덟 개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장은 보통 서술어로 끝을 맺는 단위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오오 견듸랸다 차고 几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 長壽山속 겨울 한밤내―’ 부분은 도치법이 적용된 한 개의 문장으로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우리가 유심히 살펴볼 곳도 바로 이 부분이다. 시는 ‘장수산’의 고요한 풍경을 일곱 개의 문장으로 열거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문장 서술 방식, 즉 서술어로 끝을 맺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시의 마지막 부분은 ‘차고 几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 長壽山속 겨울 한밤내―’로 끝을 맺고 있어 명사형으로 마무리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이전까지의 문장 형태와는 다른 것이다. 더구나 ‘오오 견듸랸다’를 앞에 놓아 도치된 형태를 보이고 있어 앞부분의 문장 형식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말하자면 이 시의 종결부라고 할 수 있는 ‘오오 견듸랸다’부터는 시인의 의도에 의해, 그리고 시적 종결의 필연성에 의해 의도적으로 문장 배열 형식이 바뀌어 쓰인 것이고 이는 시를 마무리 하고 고요한 겨울산을 견디고자 하는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적용된 종결 방식인 것이다. 종결부에서 시적 의미와 의도가 적층되어 고양된 상태로 나타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런 점에서 이 시의 종결부는 확연히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정지용의 다음 시도 마찬가지 양상을 보인다.
풀도 떨지 않는 돌산이오 돌도 한덩이로 열두골을 고비고비 돌았세라 찬 하늘이 골마다 따로 씨우었고 어름이 굳이 얼어 드딤돌이 믿음즉 하이 꿩이 긔고 곰이 밟은 자욱에 나의 발도 노히노니 물소리 귀또리처럼 喞喞하놋다 피락 마락하는 해ㅅ살에 눈우에 눈이 가리어 앉다 흰시울 알에 흰시울이 눌리워 숨쉬는다 온산중 나려앉는 휙진 시울들이 다치지 안히! 나도 내던져 앉다 일즉이 진달레 꽃그림자에 붉었던 絶壁 보이한 자리 우에!
―정지용, 「長壽山·2」 전문
이 시 역시 앞의 시와 거의 비슷한 구성 형식을 보이고 있다. 이 시에서는 ‘나도 내던져 앉다 일즉이 진달레 꽃그림자에 붉었던 絶壁 보이한 자리 우에!’ 부분이 종결부라고 할 수 있는데 역시 앞부분과는 다르게 도치된 문장 형식이 나타나고 있으며 서술어로 끝을 맺고 있지 않는다는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또한 앞에 인용한 시의 ‘오오 견듸랸다’와 마찬가지로 화자의 행동적 의지와 시적 의도가 중점적으로 드러나는 문장으로 ‘나도 내던져 앉다’가 종결부에 쓰이고 있어 이 부분에 시의 전체적 의도와 주제가 집약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종결 방식은 시인마다 개성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대개의 공통적인 특징은 종결부가 시의 끝자락에 위치한다는 위치성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 외에도 시적 구조의 필연성에 의해 종결부 이전과는 구분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멫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멫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츰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백석, 「여우난골族」 부분
위 시는 인용하지 않은 앞부분부터 연결 어미 ‘고’로 계속 이어지다가 ‘잠이 든다’로 문장이 마무리된다. 이후 ‘그래서는’부터는 한 문장으로 시가 종결되는 방식을 보인다. 그러므로 위 시의 종결부는 ‘그래서는’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종결부는 그 이전까지와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차이를 드러내며 나타나고 있다. 종결부는 시의 마무리, 시적 의도와 의미의 확산, 시의 완성 및 무게감 형성 등에 기여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시의 종결 방식이 어떠한가에 따라 이러한 역할들이 제대로 나타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런데 한 가지 우리가 관심을 가질 부분은 시가 종결부로 넘어서는 단계에 이르러 어떠한 방식으로든 시의 종결부임을 알 수 있게 하는 표지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렇게 종결부로 들어선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단계를 ‘종결 예비 단계’라고 이름할 수 있겠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 종결 예비 단계에 이르러 어느 정도 시가 이제 막바지로 치닫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입장에서 보면 시를 쓸 때 의식적으로 종결 예비 단계를 설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종결부의 종결 방식으로 특정 방식을 계획적으로 하는 경우도 많지 않을 것이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연스럽게 도출된 방식이어야 보다 효과적일 수 있으므로 시인의 입장에서는 종결 예비 단계의 표지를 의식적으로 넣었다기보다는 시의 내적 구조의 필연적 전개 과정에 의해 그것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내ㅅ사 애달픈 꿈꾸는 사람
내ㅅ사 어리석은 꿈꾸는 사람
밤마다 홀로
눈물로 가는 바위가 있기로
기인 한밤을
눈물로 가는 바위가 있기로
어느날에사
어둡고 아득한 바위에
절로 임과 하늘이 비치리오
―박목월, 「임」 전문
위 시의 1연 두 행은 같은 문장 형식이 반복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2연과 3연 역시 각각 같은 율격을 보이면서 같은 문장 형식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4연은 앞의 연들과 문장 형식에 있어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즉 서술어로 매듭을 짓는 문장 형식이면서 반복적 구성이 아닌 점이 그렇다. 따라서 위 시의 종결부는 4연 전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4연이 앞부분의 내용을 집약하고 있으면서 시적 의도와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명시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위 시의 종결 방식은 앞부분의 내용인 1연 규정, 2, 3연 가정 등의 과정을 안타까움과 단호함으로 매듭지어 주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종결부를 알 수 있는 종결 예비 단계의 표지는 ‘어느날에사’이다. 독자는 이 부분에 이르러 시가 종결되고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이 시의 종결부는 앞부분과는 다른 시적 패턴으로 문장을 시작하고 있다. 또한 두 음수에서 세 음수까지 나타나던 다른 어절과는 다르게 ‘어느날에사’는 다섯 음수가 한 행을 차지하는 운율적 파격을 보인다. 따라서 독자는 다른 부분들과는 특별한 차이를 드러내는 ‘어느날에사’에 이르러 무의식적으로나마 이제 종결부가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동시에 시의 종결을 심적으로 예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시를 끝맺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그 양상은 어떤 것인지를 시의 종결 방식이라는 개념에 의해 살펴보았다. 시의 어떤 부분이든 고심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은 없다. 우리가 시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에 대해 고심하면 고심할수록 시의 완결성과 예술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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