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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겨울호)신작시/이경림/돈가스를 먹으며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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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림
돈가스를 먹으며 외 1편
돈가스 같은
연애를 생각한다 돈가스를 먹으며
튀김가루에 뒤덮여 노릇노릇 튀겨진 돈의
살을 먹으며 돈의 울음을 먹으며 돈의
낄낄거림을 먹으며 돈의 비명을 먹으며
밤마다 교교히 달빛 내리는 이승에서
아아, 돈가스를 먹으며
옆집
옆집이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고 있어
옆집의 문이 덜컹 닫히고 있어
옆집의 속이 쿵쾅거려
옆집이 찢어지는 소리로 울고 있어
옆집이 찢어지나 봐
이따금 악취가 진동하는 음식 쓰레기를 들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던 옆집이 이따금
은은한 향수와 우아한 화장에 싸여 웃을 듯 말 듯 보던 옆집이
키가 작달막하고 얼굴이 동그스름하던 그 옆집이
남편은 안방 장롱 뒤에도 옆집이 있다고
매일 드릴을 벽 속에 들이미는 옆집이 있다고
툭하면 망치로 못을 박는 옆집이 있다고 말하지만
아아 늙은 장롱은 노파처럼 완강하고
그 뒤, 벽은 搖之不動이야
키가 작달막하고 얼굴이 동그스름한 옆집과
形容을 알 수 없는 저 장롱 뒤 옆집 사이
미세한 크레바스에서 옆집들의 옆집으로 세 들어 있는
나는
이경림∙1989년 ≪문학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 <토씨찾기> 외. 시산문집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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