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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가을호)/신작시/이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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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외 1편
너는 고래를 찾으러 떠나고 나는 담배를 사러 간다, 너는 고래를 찾으러 떠나고 나는 고대로 축구 보러 간다, 너는 고래를 찾아 떠나고, 나는 배가 고프다, 너는 불혹이니 불혹일 것이고 나는 불혹이니 불안하다, 너는 좋다, 너는 훌륭하다, 너는 아름답다, 너의 좋고 아름답고, 훌륭함에는 고객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너는 세상을 떠도는 너다, 세상은 이미 너의 편이 아니다, 너는 고래를 찾아, 찾아, 찾아, 찾아, 찾아, 찾아, 찾아, 떠난다, 너는 고래를 찾아 울산으로 가 트롤선을 탈 수도 있고, 트롤선의 번역어인 저인망선에 탈 수도 있고 잘 찾아보면 저인망선을 부르는 다른 아름다운 이름이 있을 것이다, 그건 네가 찾아라, 난 바쁘다, 난 미치느라 바쁘다, 내가 안 미치면 누가 좋은가, 나는 나를 위해 미친다, 내가 미치면 좋아할 사람도 조금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너는 외로운가, 나는 외롭지 않다, 너는 쓸쓸한가, 나는 쓸쓸하지 않다, 트롤리, 트롬빈, 트로츠키, 트로트, 트로키, 트림, 트집, 가재, 가제, 가위, 가상, 가상디, 가물치, 양아치, 누루하치, 김치, 하치, 상치, 의치, 버들치, 쥐치, 복, 황복, 참복, 참나무, 참새, 참나물, 무랑루즈, 즈봉, 스봉, 봉봉, 봉산, 탈춤, 너는 탈을 쓰고, 파열의 문장을 중얼거리며, 고래를 찾아 떠났다, 석탈해, 꽥, 너는 고래를 찾아 떠났다, 멍청한 노래를 부르며, 가려거든 혼자서 가라, 책은 두고 가라, 돈도 두고 가라, 옷도 두고 가라, 다 두고 떠나거나 말거나, 아비, 아가씨, 애새끼, 아침, 점심, 저녁, 너는 고래를 찾으러 떠난다, 바리데기처럼, 또는 다른 떠도는 연놈처럼, 너는 고래를 찾으러 떠났고, 나는 너의 지도를 작성한다, 거짓말을 섞으며, 엉터리에 엉터리에 엉터리를 더하는 무거운 엉덩이가 되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불알을 움켜쥐고 절규하며, 하나의 확산하는 과장이 되어, 아름다움은 자네가 가지고, 나에겐 시를, 나에겐 오로지 시를, 나에겐 오로지 시를, 조금 더 멍청하고 조금 더 숭고한, 시를.
이발
걸어간다, 경비실을 지나, 상수리나무숲을 지나, 까치와 고양이의 계곡을 지나, 걸어간다, 생각을 지우며, 재규어를 지나, 리트리버를 지나, 파출소를 지나, 버스 정류소를 지나, 아까시나무숲을 지나, 너의 화단을 지나, 횡단보도를 지나, 걸어간다, 생각을 골똘히 지우며, 뛰어간다, 걷다가 뛰고 뛰다가 걷는다, 잊히는 것들, 잊히는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들, 쇼윈도들을 지나, 사거리를 지나, 언덕을 오른다, 언덕의 상부에서, 흔들리며 내려오는 것들, 다양한 동물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들, 가령, 낙타, 변소, 철수, 영희, 목덜미, 종아리, 팽이, 커피, 레닌, 동전, 동정, 티벳, 아돌프, 추사, 칸딘스키, 이승만, 도베르만, 에티카, 스트레칭, 요가, 카발라, 미래도시, 지각, 현상, 팽창, 백자, 아그배나무, 식은 커피, 논리, 철학, 논고, 캡슐, 정자, 난자, 보 꼼므, 보 꼼므, 보 꼼므, 사슴벌레 들이 내려오고 있다, 그래, 중공군처럼, 그래, 중공군의 털모자 위에 내리는 눈처럼, 그들은 군대인가, 그들은 균열인가, 그들은 모닥불인가, 그들은 아무쪼록 모름지기 내려오는 그들인가, 걸어간다, 뛰어간다, 다시 언덕을 내려간다, 건너간다, 두 마리의 잔인을 스쳐 지나가며, 세 마리의 잔혹을 스쳐가며, 이발소로 들어가, 머리를 깎고, 오, 머리를 깎고, 맥주를 마시지 않고, 다시 걷고, 뛰고, 걷고, 뛰어, 돌아간다, 너는 이발소에 다녀왔고,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달을 보았다, 대보름, 토끼 하나, 두꺼비 하나, 절구 하나, 탭댄스 하나, 탭댄스 둘, 볼룸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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