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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가을호)/신작시/박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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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바비 외 1편
봉고차는 저기압골을 지나고 있다
온난전선과 한랭전선이 피뢰침을 가지고 노는
차 안에서 비명은 귀여운 피어싱,
차적 조회도 되지 않는 시간이
돈이 되기를 기다리는 바비인형의 몸이
조립되고 있다 긴 팔과 긴 다리를 돌려 끼우고
성대는 치맛단처럼 찢어버리고
신음 소리가 녹음된 배꼽을 흉터 없이 이식한다
일수 도장이 지워진 하늘은
가려진 커튼 너머에서 짜고치는 고스톱처럼
무채색 패를 보여주고 있다
러브호텔의 흔들리는 키를 구름 속에 넣고 돌리면
쏟아져 내리는
샤워기,
아름다운 굴곡이 있어 더 아름다운 물줄기를
대포폰이 벨소리로 재생해 내면
돌려막기 하고 있는 얼굴을 저당 잡히고
인형은 끝내 젖지 않는다
씨름판
길은 발가락 사이에서 생겨난다
돌보지 않아도 깎이고 깎인 상처의 알갱이
머리채를 흔드는 버드나무
바람막이 비닐처럼 모래판을 주시하고 있다
석양의 꼬리가 자꾸 강물을 불리듯 모래는
모든 걸 다 받아들인다
돌에 붙어 목숨을 부지하는 다슬기
발밑 모래 속에 길을 내고 있는가 보다
바람이 고른 모래판 샅바싸움 한창이다
여섯 번째 발자국이 찍히고 열두 번째
발자국이 찍힌다 지구의 노동 부산물인 알갱이에
새로운 발자국 연신 찍힌다
들면 돌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모래판
본시 모래판엔 똑같은 길은 없다
어둑발에 다슬기 또 다른 길을 끝없는 길을 낸다
발가락이 뽑아낸 길이란 누구나 갈아엎을 수 있다
중심 잃은 여섯 번째 발자국을
들배지기로 뽑아들은 열두 번째 발자국이
덧칠한다
꼼지락거린다 온몸 할퀴운 비릿한 다슬기가
거품으로 승부를 알려온다
지문처럼 똑같은 판은 없고 암매장 된 자국마다
잃어버리기 위해 상처의 길 흥건히 열린다
길의 끝자락엔
늘 수상한 벽이 주심처럼 버티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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